[서양의 불교] 출트림 알리오니(Tsultrim Allione)

서양의 불교

2007-10-06     관리자

이태리 출생의 미국 최초의 티벳불교 비구니가 된 출트림 알리오니는 1986년 ‘지혜로운 여성들(Women of Wisdom)’이란 책을 내놓아 불교의 전통에도 도를 닦고 수행을 하고 사람들을 해탈로 이끌었던 여성들이 있었음을 세상에 알렸다. 여성 수행자로서 본보기로 삼을 수 있는 역할모델이 전혀 없는 것에 안타까워했던 그녀는 불교 역사 속에 잊혀졌던 여성의 얼굴을 찾아주려는 운동을 한 시조 중 한 사람이다. 이 책에서 그녀는 여섯 명의 역사적인 티벳불교 여성의 깨달음의 여정을 담았다. 그녀는 현대문명의 극단적인 이성적 접근문화는 티벳불교의 신비한 영적 전통에서 배울 게 많다고 말한다.

티벳불교에서 여성의 원리는 프라즈냐 즉 반야의 지혜이고, 남성의 원리는 방편 즉 방법과 기술이다. 그러므로 남성과 여성 수행자는 각자 가진 깨달음의 기술을 닦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즉 여성의 경우는 자연으로부터 부여받은 성향을 보완하려면 방편을 닦는 데 더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뉴잉글랜드에서 자라던 그녀는 열다섯 살 때 할머니에게서 불교에 관한 책을 선물받았다. 이후 인도 캘커타에서 테레사 수녀의 구호 활동에 동참했던 그녀는 1967년 네팔에 갔다가 망명 중인 티벳스님들을 만나 깊은 감명을 받고 불교공부를 시작했다. 1970년 칼마파에게 사미니계를 받고 이후 달라이 라마, 칼루 린포체, 쵸감 트룽파 린포체를 스승으로 모시고 공부했다. 특히 그녀는 쵸감 트룽파 린포체를 처음으로 만나 아무런 말없이 45분간 함께 했던 시간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처음엔 당황스런 마음으로 트룽파가 말을 시작하기를 기다렸다. 그러다가 무언가 평소와는 아주 다른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느낌이 왔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한참이나 지난 후에야 깨달았다.

“그것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해준 전수였다. 하지만 당시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어떤 말이나 형상도 완전히 벗어난 경험이었다는 것뿐이었다. 그것은 허공이 어떤 준거점도 없이 팽창한 느낌이었다. 그 허공은 빛이 가득했고 축복의 장이었으며 무언가가 방출되는 느낌이었다. 그것은 오르가즘과 매우 비슷했지만 그것을 초월한 곳에 있는 그런 해방의 느낌이었다.”

수년간 비구니로 살았던 그녀는 환속하여 결혼을 하고 세 자녀의 어머니가 되었다. 이때 그녀는 어머니 역할과 명상을 통합해보려는 다각적인 시도를 했다. 한편 안티오크 대학에서 불교학과 여성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후 하버드를 비롯한 다수의 대학에서 불교 강의를 하고 있다.

그녀는 1993년 미국 콜로라도주 남서부 샌후안 산맥 깊은 곳에 여성의 원리를 담고 있는 타라 보살의 이름을 딴 수행센터 타라 만달라(Tara Mandala)를 세웠다. 해발 7400피트의 고지에 600에이커의 너른 땅에 위치한 타라 만달라는 현상계를 자비의 만달라로 보자는 의미이며 그녀가 히말라야에서 수련하던 시절부터 가졌던 꿈을 실현한 곳이다.

빼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산봉우리와 강과 계곡과 깊은 문화적 역사를 가진 타라 만달라의 경관 중 중심을 이루는 것은 4개의 계곡에 둘러싸인, 여성의 젖가슴처럼 생긴 산봉우리이다. 깊은 고요함과 사방이 트인 전망을 자랑하며 시시각각 변화하는 빛과 빈번히 나타나는 무지개롤 보노라면 공(空)과 광휘를 절로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인디언의 성지와 이웃하고 있고, 진귀한 약초가 많이 난다는 이 곳에서 독거수련을 할 때 병이 나면 주변에서 약초를 캐먹으며 치료를 했다. “자비로운 약초들이 꼭 필요한 사람의 곁으로 와서 자라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타라 만달라에서는 명상, 설법, 불교 공부 등의 불교 프로그램 외에도 심층생태학, 초개인심리학, 자연의학, 인디언 가르침, 종교간 대화, 성스러운 여성원리와 남성원리를 탐구하는 프로그램 등을 진행한다.

서구에서는 외면의 기술이 발달하는 동안 티벳불교에서는 내면의 기술을 발전시켰으므로 이곳에서는 그런 평화의 기술을 전수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깊은 명상의 단계에 도달한 사람은 인류에게 깊은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그룹명상지도를 하는 동시에 독거명상 시설도 제공하고 있다. 파노라마 같은 경관이 펼쳐지는 깊은 산 속에서 홀로 하는 명상은 좀더 쉽게 내면에 도달하게 해준다고 한다.

이 곳에 왔었던 불교 지도자 새론 잘츠버그는 “이 곳은 그저 주변을 둘러보며 긴장을 풀기만 하면 자신의 내면을 발견할 수 있는 아주 드물고 특별한 곳”이라 말했고 이 곳의 수련회에 참석했던 한 사람은 “침묵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산의 아름다움이 나의 존재를 꿰뚫고 들어왔다”고 소감을 말했다.

출트림 알리오니는 1960년대에 하버드대학 교수이며 명상 지도자 램 다스와 함께 스마일리 이벤트(Smiley Event)와 수련회를 함께 이끌며 우정을 쌓았다. 1967년 네팔에 친구와 함께 ‘신비로운 동양’을 탐사하러 도착했던 램 다스는 거기서 알리오니를 만난 것이다. 후에 알리오니는 램 다스 및 앨런 긴즈버그와 함께 미국 유일의 티벳불교 비구니로서 미국을 여행했다. 그녀는 또 긴즈버그의 명상 스승이다. 그런 램 다스가 타라 만달라에 명상을 지도하러 올 것이라 한다.

알리오니는 2002년 부탄에 갔다가 타고 있던 짚차가 계곡으로 굴러떨어지는 치명적인 사고를 당했다. 차가 저 아래 허공과 나무 사이로 떨어지며 처박히는 그 짧고도 영원했던 순간을 그녀는 지금도 기억한다. 그 사고에서 운전사와 그녀 두 사람 다 별로 다친 데 없이 살아난 이후 그녀는 가슴 속에 깊은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죽음의 순간이라고 생각한 때에도 그녀를 보호해주는 보이지 않는 손길이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세상을 지켜주는 불보살의 존재를 더욱 확실히 각인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나서 그녀는 1년 간의 독거명상에 들어갔다. 가까운 사람이 하나둘씩 잘 있으라는 인사와 함께 사라지고 독거명상을 축복해주러 왔던 큰스님도 가고 나자 약간의 슬픔과 공허함이 밀려왔다. “죽음의 순간에도 이렇겠구나. 사랑하는 사람과 작별을 하고 저 미지의 땅을 나 혼자 어떻게든 가야하는 그 길!”

그녀는 그저 자신의 몸을 믿고 몸이 원하는 대로 따르며 쉬고 명상했다. 배가 고프지 않을 때는 며칠을 먹지 않았고 배가 고플 때만 먹었다. 주변의 약초도 캐서 먹었다. 그리고 머지 않아 그녀는 건강을 회복했다. 그 곳에는 전기도 수도도 시계도 전화도 없었다. 그녀는 다만 달을 보며 시간을 짐작했다.

서양여성들은 중동의 여인들을 보면서 ‘참 안 됐다. 우리는 그런 베일을 안 쓰고 사는데…’하고 생각하지만 실은 서양여성들도 베일로 자신을 가리고 산다고 그녀는 말한다. 보이지 않는 베일 속에 그들은 자신이 받는 억압, 가부장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무의식적 욕구를 가리고 산다는 것이다.

따라서 존재의 원초적 장으로 돌아올 때까지 여성의 고통은 계속된다. 세상에는 양(남성)의 원리와 음(여성)의 원리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아프가니스탄과 티벳의 사태는 다 그런 균형의 필요성에 주목하지 않은 문화의 산물이다. 우리는 생각과 행동을 전환시켜 이 세상과 인류에게 조화를 가져올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타라 만달라는 그런 남성과 여성의 동반자적 모델을 싹티우고 키워내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