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태분식(一太分食)

함께 사는 세상 이렇게 일굽시다

2007-10-06     관리자

일태 (一太)도 분식(分食), 우리가 어렸을 때 자주 듣고 쓰던 말이다. 즉, 콩 한 쪽도 나눈다는 의미로 초근목피(草根木皮)의 그 어려웠던 시절에도 나눔의 소중함, 베풂의 필요성을 대변했던 얘기로 기억된다. 매년 반복되는 보릿고개를 넘기 위해 풀뿌리와 나무껍질로 연명하면서도 자기보다 더 어려운 이웃들에게 적으면 적은 대로 많으면 많은 대로 나눔을 실천했던 우리의 조상님들.
그 덕택인지 이제는 선진국대열에 들어섰는데, IMF 때보다 더 어렵다고 입을 모으던 올 여름 피서지에는 예년에 볼 수 없는 인파로 피서전쟁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고,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외국으로 나가는 초등학생 해외연수에서부터 골프여행, 심지어 애완견 동반 해외여행자까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연일 매스컴을 통해 오르내리는 경기침체와 터널 속 경제전망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최근 늘어나고 있는 결식아동과 개인 파산자들의 급증, 눈에 띄게 힘든 체감경기를 보면 매스컴의 보도가 맞는 말인데 하는 생각이 들고, 우리 나라에도 부익부(富益富) 빈익빈(貧益貧) 즉 빈부의 차가 커지고 있음을 절감하게 된다.
그리고 솔직한 심정으로 오늘의 우리의 현실을 살펴보자. 인정은 갈수록 메마르고 이기주의(利己主義)가 팽배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어제의 동지에게 미련 없이 등을 돌려 적이 되고, 인명경시(人命輕視) 풍조의 만연으로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쯤으로 생각하고, 나만 잘 살면 되지 남이야 죽든 말든 상관없다는 사고방식이 만연되고 있지 않나 하는 슬픈 걱정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 세상에 독불장군(獨不將軍)은 없는 법이다. 만약 무인도에 나 혼자 있다고 생각해보자. 글쎄 요즘처럼 복잡하고 답답한 세상에 살다 무인도에서 혼자 지낸다면 며칠 동안은 호젓함과 편안함, 자유로움을 만끽할는지 모르지만 얼마 가지 않아 외롭고 쓸쓸하고 무료해서 결국 우울증에 걸리고 아마도 생존의 어려움까지 겪게 되지 않을까! 각종 공해로 인해 오존층이 파괴되고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기상변화가 예고된 가운데 특히 올 여름은 지겹게도 더웠다. 그러나 무덥고 지겨웠던 여름이 있었기에 높고 푸른 아름다운 쪽빛하늘과 살갗을 애무하는 가을의 미풍(美風)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 풍성한 결실의 계절을 맞아 우리는 새로운 각오로 이 가을을 맞을 채비를 해야 할 것이다. 먼저 나만 생각했던 마음가짐을 ‘우리’로 바꾸는 것이다.
지금은 어떨지 몰라도 훗날 나에게 위로가 되고 소중한 친구가 될 ‘너와 네’가 바로 ‘우리’이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만남에 대해 동체대비, 동시적 인연을 강조한 동종선근설(同種善根說)에 의하면 한 나라에서 태어난 인연은 적어도 천 겁(劫) 이상의 선근(善根)을 함께 쌓았기 때문이고, 한 마을 같은 동(洞)에 태어난 인연은 적어도 5천 겁 동안 선근을 함께 쌓았기 때문이고, 한 가문의 같은 피붙이, 즉 친형제자매를 제외한 권속들은 7천 겁, 부부는 8천 겁, 형제는 9천 겁, 부모와 자식, 스승과 제자의 인연은 무려 만 겁의 선근을 쌓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전을 보면 1겁(劫)은 천지가 한 번 개벽한 후 다음 개벽할 때까지의 기간이라고 돼 있다. 1겁이 이렇듯 긴 세월인데 대한민국의 국적을 갖고 사는 한 우리는 천 겁의 세월 동안 선근(善根)을 쌓은 인연으로 한나라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할 때 얼마나 소중하고 또 소중한 우리들인가!
다음은 100개 중 51개는 주고 49개를 취한다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나눔의 소중함을 맛보라는 얘기다. ‘요즘같이 각박한 세상에 나눔이라니?’ 할는지 모르지만 내가 아무리 많은 재화(財貨)와 권력(權力)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내 것이 아닐진대 나도 모르는 새 하나, 둘씩 다 없어져 빈털터리가 되고 반대로 나의 재화가 남에게 가 있다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에게로 돌아오는 것을 경험한 이들이 많을 것이다.
51개와 49개의 차이는 2개다. 숫자상의 2개는 별것이 아니지만 요즘은 반(半) 개, 아니 1/3개 때문에 오랜 우정을 깨버리고, 형제간에 의가 갈라지고, 간혹 그것 때문에 사람을 죽이는 일도 있다.
하지만 앞서 말한 의미를 이해한다면 2개에 그리 목맬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이왕 내 것이 아닌데…’ 하는 생각으로 남에게 베풀며 산다면 누가 나에게 나쁜 사람이라고 손가락질을 하겠는가.
마지막으로 매사에 감사하라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는 감사와 칭찬에 인색하다. 세상을 살다보면 내 입맛에 맞는 일보다 맞지 않는 일이 더 많게 된다. 그러다 보니 감사하는 기회가 적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떤 상황에 처해서든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분명 나보다 더 나쁜 상황에 처한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때 우리는 감사해야 한다. 흔히 ‘감사’ 하면 종교적인 생각을 하게 되는데 부처님께든, 예수님께든, 아니면 조상님께든 감사하는 마음을 생활화해야 할 것이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에게 감사할 일이 생긴다고 했지 않는가.
흔히 외국을 다녀와야 조국의 소중함과 고마움을 느낀다고들 한다. 처음에야 외국에 나왔다는 설레임과 기대 속에 들뜨고 즐겁기 마련이지만 언어가 통하지 않고 생활습관과 식문화가 다른 외국에서의 생활이 길어진다면 고국의 아름다움과 편안함을 그리워하듯 자칫 개인주의의 팽배가 습관이 된다면 어느 한 순간 자신이 무인도에 고립돼 있는 것 같은 생각 속에 괴로워할 것이다.
또한 ‘세상 사는 맛’이란 얘기를 자주 하는데 진정한 세상살이의 참맛은 여러 사람들이 각자 자기의 본분을 다하며 서로 위로하고 걱정하며 사는 것이다. 수많은 톱니를 가진 톱니바퀴가 서로 맞물려 돌아야 제몫을 다하듯 우리 인간도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결국은 사회적 구성원으로 동화돼 자신의 몫을 다하며 살아갈 때,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즐거우면 즐거운 대로의 참 맛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각박한 세상이라도 내가 먼저 우리로 동화되고, 남에게 베풀고, 감사할 줄 안다면 더불어 사는 이 세상은 삭막하고 각박하기보다 윤택하고 삶의 참 맛이 나는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이다.
자! 한여름의 폭염을 잠재운 이 아름다운 계절 가을에 우리 모두 콩 한 쪽도 나누는 베풂의 마음과 감사의 마음으로 정말로 살맛 나는, 신바람 나는 세상 만들기에 각자의 소임을 맡은 톱니가 되어 힘차고 활기 있고 신나게 상생(相生)의 톱니바퀴를 돌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