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서울 시장

2005-09-19     관리자

[이명박 서울 시장]



지난 번 서울 봉헌 발언을 빚기도 한 독실한 개신교 신자이신 이 명박 서울 시장께서,
총무원장 스님의 열반에 깊은 애도를 표하셨다고 합니다.

기사가 전하는 이 명박 시장의 애도는 이러합니다.

-이 시장은 조사에서 “법장 큰 스님께서는 제 삶의 스승이자 상담자이며 동갑내기 벗이기도 했다”며 “입적 소식을 듣고 제게 밀려온 슬픔과 허망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이 시장은 “특히 종교가 다른 저를 대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진정한 종교인의 자세를 배웠다”며 “스님께서는 서울의 환경 보전과 청계천 복원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조언해 주셨고 어려움을 겪을 때 마치 자신의 일처럼 앞장서 도와주셨다”고 말했다.

-이 시장은 이어 “지난주 몽골로 떠나기 전 스님께서 조계사의 조경도 아름답게 가꿔지고 새로 준공이 되면 세계적인 명소가 될 것이라고 기뻐하시면서 귀국하면 꼭 함께 식사를 하자고 하셨는데 그 통화가 마지막이 될 줄은 정녕 몰랐다”고 했다.

-이 시장은 “올 추석은 참 쓸쓸하게 보내야만 할 것 같다”며
'부디 서방정토에서 극락왕생하기시를 기원한다“고 축원했다.
이 시장은 2002년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지인의 소개로 법장 스님을 처음 앓았으며
‘봉헌 발언’ 때는 스님에게 격려를 받고 더 가까워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명박 시장의 이런 발언을 놓고 불자님들 중 어떤 분은 진심으로 받아들이기도 하고
또 어떤 분은 정치인의 정치성 발언이 아닌가 의심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물론 정치인으로서의 계산도 있겠지만, 제가 보기엔 진실성쪽이 좀더 가까운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 이유는 이러합니다.


첫째, 카톨릭은 모르지만, 개신교인으로서 타 종교인을 인정하는 발언을 하는 것은,
아무리 정치성이 있다 하더라도 제가 알기로는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것은 개신교의 깊은 선민의식, 배타성,
그리고 우상 숭배를 금지하는 엄격한 계율 때문입니다.


불교인들은 흔히 나는 "예수님(또 하나님)을 존경합니다"하는 말을 할 수 있어도,
제가 알기로 개신교인들은 결코 "부처님을 존경합니다"라는 말을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우상 숭배'를 금지하는 모세의 십계명에 바로 저촉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일은 그 즉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일이 되므로
거짓으로라도 할 수 없는 일인 것입니다.



이것은 개신교 분들이 불교 행사에 참석할 때 타 종교 분들과 달리,
쉽게 불교적 인사나 격식을 따라하지 않는 이유도 됩니다.
그러므로 비록 정치적 목적이 있다 하더라도 영결식에 참석해서 일상적 조사는 할지언정,
기사에 나오는 그런 말씀은 개신교 입장에서는 쉽게 용납되는 일이 아닌 것입니다.
(예전에 조 용기 목사님이 동국대에 초청되어 불교를 인정하는 듯한 말씀을 하셨다가
그 후 교인들로부터 큰 곤욕을 치른 일이 있으시지요)


둘째 이 명박 시장의 개인적 진실성입니다.
한번도 개인적으로 이 명박 시장을 만난 적이 없는 저로서는, 사실 봉헌 발언이 있었을 때
기독교인들의 짙은 배타성과 선민 의식에 나름대로 통탄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때 우연히 방송에 출연한 이 명박 시장의 모습을 보고
선입관을 조금 달리하게 되었는데, 이번 기사를 보고는
그 때 느낌이 크게 틀리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더욱 하게 되었습니다.


정목스님의 방송(bbsfm, 101.9 MHz, 마음으로 듣는 음악)으로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된 어떤 개신교 신자님이 지적하셨듯
(이 분은 이 명박 시장과 함께 근무하신 적도 있다 합니다),
많은 타 종교 신자 분들이 불교를 접하면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가르침에 마음이 열리고
불교의 깊은 지혜와 자비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일이 잦다는데,
이 시장 역시 일방적인 추측만 하던 불교 수행자를 직접 만난 후
마음의 변화를 느꼈을지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개신교 신자로서,
특히 정치인으로서 기사에 난 것과 같은 언급을 하는 것은,
조 용기 목사님의 사례에서 보듯 본인으로서는 대단한 손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말씀을 영결식장에서 드린 것은
대단한 용기요 정치적 계산을 뛰어넘은 결단인데,
이것은 이 명박 시장 개인의 성품에도 상당 부분 기인하리라 봅니다.


이 명박 시장께서는 대단히 용기 있고 겸허하며 솔직, 담백한 분으로 보입니다.
물론 젊은 날 삶을 사는 과정에서 다소 남과 자신을 속인 일은 있을지 몰라도,
이제 삶의 후반부로 접어드는 작금에 나름대로 많은 것을 느끼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 법장 스님을 만난 것으로 생각됩니다.
또한 믿음도 대단한데, 이것은 기독교를 믿어 대단한 믿음을 가졌다기보다,
이 시장 본래 성품이 믿음이 강한 분 같습니다.
이런 분이 기독교가 아닌 불교를 만나셨다면
그야말로 전법 의지 가득찬, 믿음 깊은 불자가 되시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저는 이번 일에서, 근래 우리 불교의 많은 아쉬움을 느낍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리고 지금은 한결 나아졌지만,
그동안 우리 불교계는 자신의 견성 문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모습을 보인 것이 사실일 것입니다.
중생이 따로 없고 나의 견성이 일체 중생의 견성 성불로 바로 이어진다는
지극히 원론적인 논리로, 사회 문제나 일반인들의 고통에는 큰 관심없이 오직
자신의 수행에만 매진해 온 것이 과거 우리 불교의 모습이라면 너무 지나친 말이 될까요?


한 사람 한 사람 각자가 서로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고 받는 법.
만약 우리들이 좀더 적극적인 전법 의지와
중생 공양의 서원을 가지고 이웃들을 대했더라면,
부처님 가르침이 좀더 일찍,
그리고 좀더 넓게 많은 분들에게 다가갈 수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좀더 많은 분들이 더 일찍 부처님 가르침에 귀의하여,
삶의 대부분을 배타적이고 우월한 마음으로 지나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이웃과 원만하며 온 생명, 온 세상을 더 따뜻하게 바라보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리고 많은 세월 동안 닫힌 마음으로 세상과 많은 마찰을 일으킨 후에야
비로소 부처님 가르침을 만나는 일 역시 없었을 것입니다


서쪽으로 기울어진 탑은 결국 서쪽으로 넘어진다'는 부처님 말씀이 있습니다.
아직 어느 쪽으로도 기울어지지 않은 분들을, 바른 지혜와 밝은 서원으로
한 분이라도 더 부처님을 향하게 하는 것은 무척 중요한 일입니다.
불가능하지야 않겠지만
일단 다른 쪽으로 기울어진 탑을 다시 세우는 것은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내가 밝은 지혜, 밝은 서원으로 지금 저 분께 부처님 말씀을 전할 수 없다면,
저 분은 부처님을 영영 만나지 못 하실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만나더라도 오랜 시간을 소비한 뒤일지 모릅니다.


지금 이 자리 이 곳에서
더 밝은 지혜, 더 밝은 서원 일으킬 일입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시아본사아미타불



普賢合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