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명의 장님이 발견해 가는 세상

함께 사는 세상 이렇게 일굽시다

2007-10-06     관리자

요즈음 나는 별로 아는 것도 없으면서 이런 저런 모임에 자주 불려나간다. 그 곳에 가면 주제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전문가라고 불리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환경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에 가면 국내에서도 대기, 수질, 폐기물, 생태계 분야에서 상당히 권위 있는 전문가들을 만나고, 대중교통 관련 토론회에 가면 외국의 유수의 대학과 연구기관에서 오랜 기간 동안 연구했다는 유명한 석학들을 자주 만난다.
이러한 전문가들을 만날 때마다 현재 서양에 살고 있는 간디라 불리는 한 현자가 생각난다. 얼마 전에 우리나라를 다녀가기도 한 평화의 순례자이자 생태운동가이며 교육자인 사티쉬 쿠마르가 바로 그 분이다. 이 노(老) 철학자가 들려준 여섯 명의 장님이 코끼리를 발견해 가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여러 모로 많은 깨우침을 줄 듯하다. 우선 인도를 배경으로 한 이 이야기는 불교경전 속에도 나오는데, 그 내용을 간단히 옮겨 보기로 하자.
언젠가 여섯 명의 장님이 왕자에게 새 코끼리 한 마리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장님들은 코끼리에 대해서 들은 적은 있지만,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왕자가 있는 궁궐에 가서 코끼리가 어떤 동물인지 알아보기로 했다. 그들이 궁궐에 도착하자마자 파수꾼이 들어오라고 말했고 장님들에게 순서대로 코끼리를 어루만져 보도록 기회를 주었다. 첫 번째 남자는 코끼리 옆구리를 만지고, 두 번째 남자는 몸통을 만지고, 세 번째 남자는 상아를 만지고, 네 번째 남자는 다리를, 다섯 번째 남자는 귀를, 여섯 번째 남자는 꼬리를 만졌다. 그런 다음 그들은 나무 아래에서 쉬면서 자신들이 느끼고 경험한 것을 자연스럽게 말하기 시작했다.
옆구리를 만진 첫 번째 남자가 “코끼리는 벽 같다는 걸 이제야 알겠어,” 하고 말했다.
“아니야! 뱀 같이 생겼어.” 몸통을 만진 두 번째 남자가 대답했다.
“너희는 둘 다 바보야.” 뻐드렁니를 만진 세 번째 남자가 반복했다. “코끼리는 창같이 생겼어.”
“너희들 미쳤니? 코끼리는 나무 같아.” 다리를 만진 네 번째 남자가 소리쳤다.
귀를 만진 다섯 번째 남자가 “너희들 모두 틀렸어, 코끼리는 부채같이 생겼어.”라고 외쳤다.
“아냐, 아냐. 밧줄같이 생겼어.” 꼬리를 만진 여섯 번째 남자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큰 소동이 일어났다. 왕자가 코끼리를 타러 왔을 때, 그들은 막 싸우려던 참이었다. 왕자가 물었다.
“너희들은 왜 소란을 피우고 있느냐?”
“코끼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서로 얘기하고 있는데 전부가 다릅니다.” 첫 번째 장님이 말했다. “다같이 똑같은 코끼리를 만졌는데, 모두 다른 동물을 말하고 있습니다.”
왕자는 소리 내어 웃었다. “코끼리는 큰 동물이다. 옆구리는 벽 같고, 몸통은 뱀 같으며, 이빨은 창 같고, 나무 같은 다리와 부채 같은 귀와 밧줄 같은 고리가 있지. 너희들이 만진 여러 부분을 합치면 코끼리가 될 것이다.”
이 이야기는 모든 지식이 결국 부분적이고 단편적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이를 깨달으면, 우리는 잘못된 생각과 편견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즉, 자신이 알고 있는 한 가지만을 받아들이고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근본주의에서도 자유로워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이 엄연한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앞에서 언급한 여섯 명의 장님처럼 각자 파편화된 지식만을 깊게 터득한 그들은 자신들이 세운 엄격한 잣대로 세상을 재단하고 만들어 간다. 다양한 시각과 관점을 인정하지 않은 채 말이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이 기준으로 보자면 나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전문가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의 지속적인 활동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예전보다 좀더 균등하고 살기 좋은 평화로운 세상이 되어 가는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그보다는 생태적 불균형과 혼란만을 더 한층 가중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그 이유는 전문성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일상적인 삶을 통해 배운 상식이 있는 일반 시민들의 참여가 매우 부족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7월 1일을 기해 서울에서는 한국 역사상 최초이자 가장 대규모인 것으로 알려진 대중교통체계의 개편이 이루어졌다. 400여 명의 인력이 약 2년 동안 준비했다는 신교통카드의 도입, 간·지선 노선 개편, 중앙버스전용차로 건설, 버스사령실을 통한 과학적 운행관리, 요금체계 개편 등 총 17개 항목의 버스개혁 프로그램은 그 자체만 하더라도 상당히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것을 실현해 가는 데는 수없이 많은 전문가들과 기술 인력이 필요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이렇게 여러 분야에서 전문 지식을 지닌 수많은 사람들이 의욕을 갖고 버스개혁을 추진했지만, 이번 서울에서 보여준 시행착오와 혼란은 우리의 예상을 훨씬 뛰어 넘는 엄청난 수준이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대다수 언론들이 지적했듯이 시장 취임 2주년 기념일에 맞추어 불도저식으로 밤을 새워가며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했고, 그 결과로 완벽한 사전 점검과 홍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버스대란은 어찌 보면 당연히 초래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수도권에 사는 대다수 사람들이 거세게 비판을 한 교통카드로 인한 엄청난 혼란과 요금 인상 등은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었기 때문에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보다 대중교통체계 개편 첫날밤에 강남대로에 있는 약 500여m의 중앙버스전용차로 구간에 84대의 버스가 길게 늘어섰다는 기사 ― 이 보도는 오보가 아니면 상당히 과장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버스 1대의 길이를 11.6m로 보면 총연장은 약 1km이기 때문이다 ― 를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 이유는 중앙버스전용차로가 건설되어 있는 지구촌 어디에서도 이러한 사건이 발견된 예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와 수난을 겪으면서도 우리들이 배운 것이 없다면 정말이지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차제에 여섯 명의 장님이 코끼리를 발견해 가듯이 우리 모두 부분이 아닌 전체를 보는 훈련을 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