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사의한 횃불의 주인공들

불광법단

2007-10-06     관리자

자랑 스러운 우리 불광의 호법형제들을 대하게 되어서 반갑고 기쁩니다. 아마 형제 여러분들께서도 월간 「불광」을 잘 읽으실 겁니다.
월간 「불광」을 읽는 분들 얘기를 들으면 관심을 갖는 데가 여러 군데가 있습니다. 어떤 분은 맨 앞의 ‘이달의 언어’ 그것 하나만 반복해서 읽고, 또 어떤 분은 신앙수기만 읽는다는 분도 계시지만, 내가 만났던 많은 형제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본다고 합니다. 이것은 심한 예라고 생각합니다마는 어떤 분은 제가 쓴 글을 여러 차례 읽는다고 하시는 분도 몇 분 만났습니다.

불광의 얼굴
근래는 제가 사정이 있어서 글을 잘 못 쓰고 지냅니다마는 지금도 묵은 「불광」을 종종 읽습니다. 나는 묵은 「불광」에서 우리 불광가족들의 글을 즐겨 읽습니다. 우리 불광가족들의 글이 어디 제일 많으냐 하면 다 아시는 바와 같이 신앙수기 같은 것입니다. 나는 오늘도 성북구에 있는 법신장 보살 법등의 무상각 보살님 수기를 읽었는데, 여러 경로를 거쳐서 고생도 하고 절망도 하고 그러다가 불법 믿는 분을 알게 되어서 같이 이 절 저 절 다니다가 마침내 불광에 와서 정착을 하게 되었다는 얘기입니다.
신앙수기를 읽으면서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은 불광에 나오면 모두가 열심이라는 겁니다. 진지하다는 겁니다. 그리고 모두가 밝다는 것입니다. 그 밖에 제각기 개성이 있을 것입니다마는 나는 이 두 가지 말만 가지고도 우리 불광의 특색을 참 잘 보지 않았는가 합니다.
어제까지 바라밀교학 강의를 맡았던 김영태 교수님도 몇 번이나 그 얘기를 합니다. 그렇게 다들 자세가 진지하고 그러한 진지한 분위기에 압도당할 만큼 열심히 강의를 들어주셨다고 합니다. 당신이 강단에 서는 것을 업으로 하고 있지마는 그 시간에는 대학에서도 조는 시간이랍니다. 그런데 불광에 오니까 그 진지한 눈초리에 당신이 압도당했다고 했습니다. 그런 칭찬의 말을 몇 번인가 했습니다.
오늘 저는 우리 불광가족들의 얼굴이 밝고 진지하다고 하는 이것만 가지고도 우리 불광가족들이 얼마나 수행을 잘 하고 있는가 그렇게 마음속으로 생각하면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지금부터 약 30년이 됐는지 모릅니다마는 제가 1955년쯤 마산에 갔더니 마산에 있는 신도분들이 모여서 계를 모았는데 계의 이름이 호법계였습니다. 종정스님이신 성철 노화상의 법문을 듣고 거기에 다니면서 수행하시는 분들이 마산 지역에 있으면서 호법계라는 계를 모았었습니다. 그 때 해인사에 있다가 마산포교당에 일이 있어서 갔었는데 마산에 가 있는 동안에 그 분들이 전적으로 도와서 절 일을 맡아서 하셨습니다. 정말 호법을 단단히 했습니다.
아마 지금 계신 분들은 그 당시 마산에 계신 호법계의 활동을 모를 겁니다. 그렇지마는 그 때의 얼굴과 여기 우리 불광의 얼굴이 어떤가? 그 분들의 열렬한 전투적인 자세 같은 열렬한 호법정신은 봤어도 우리 불광형제들과 같은 밝고 기쁜 평화스런 얼굴, 이러한 얼굴은 거기서 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지금 우리 불광의 얼굴들이나 호법발원 형제들의 얼굴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어째서 그렇게 밝고 어째서 그렇게 진지한가. 밝은 것은 부처님 가르침을 자기 마음 가운데 받아들여서 마음으로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고, 진지하다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진실하다고 하는 그 믿음이 꽉 차있어서 그런 것입니다. 일과를 철저히 지키고 아픔이나 어려움이 있어도 부처님의 그 가르침과 믿음을 가지고 극복해 나가는 그 힘이 안에 차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정말 우리들은 안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확실히 믿고 일과를 행하고 생활로써 나타내갈 때 그렇게 다릅니다.
저는 많은 분들의 지식과 이론보다도 이렇게 표정이 바뀌고 생활이 달라지는 이것이 불교를 참으로 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 법으로 안 되는 일을 부처님 법으로
오래 전 얘기입니다. 그 때가 아마 1953년도 일이라고 생각됩니다마는 그 때만 해도 제가 이렇게 세월을 보낸 나이가 아니었습니다. 부산 범어사 뒷산에 미륵암이라는 절에서 그 해 겨울에 용맹정진을 했습니다.
그 해가 아마 1953년 겨울인 듯합니다. 그 때 한겨울에 같이 있던 거사님 내외분이 계셨습니다. 그 미륵암이라는 데가 낙동강 위에 있는 산인데 그 산 밑이 바로 구포이고 그 구포나루를 건너면 대저면이라는 섬이고 섬 건너가 김해입니다. 그 대저면에 사시는 내외분입니다.
그 겨울 백이십 일 정도를 미륵암에서 정진을 했었는데 거의 한 달 반 가까이를 같이 지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분들이 생각나는 것은 그 때 기도하셨던 그 내외분의 표정들이 너무나 밝은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부인은 알고 보니까 정말 열녀문을 세울 만한 분이었습니다. 남편되는 처사님이 병이 나서 병원에 다녀도 낫지 않고 못 고치고 그래서 집안이 다 엎어지게 되었는데 마지막에 ‘세상법으로 안 되면 부처님한테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 미륵암에 올라와서 삼칠일인가 얼마를 불철주야 염불하고 절하면서 기도를 했답니다. 그렇게 기도를 하고 정진한 후에 자기 남편이 나았습니다.
남편이 열심히 독경을 해서 제가 모르던 경을 외우고 있었습니다. 그 때 저는 굶어가면서 금강경은 읽었어도 천지팔양경은 안 읽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저한테 와서 천지팔양경을 꺼내 놓으면서 가르쳐달라고 그럽니다. 그 때 처음 천지팔양경을 만나서 같이 읽은 생각이 납니다. 그 분은 한문은 아시니까 이 경 저 경을 부지런히 읽으시는데 뜻을 잘 모르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극도에 빠진 병고와 집안이 엎어질 만큼의 어려움이 기도를 한 후에 다 극복이 되었습니다.
어느 때고 ‘관세음보살’이 입에서 끊어지는 것을 못 봤습니다. 그리고 절에 와서 구석구석 매일 걸레질하고 부처님께 올리는 마지는 당신 손으로 따로 지었습니다. 저도 그 때 기도하느라고 그 중에 한 20일 정도는 제 손으로 마지를 지었습니다. 큰 솥에 마지를 지어서 제가 공양주를 하면서 제가 기도를 했었습니다. 밥은 많이 안 해 봤지만 밥은 제가 잘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 두꺼운 솥에 밥을 하면 굉장히 밥을 눌립니다. 그러나 저는 절대로 밥을 안 눌리게 합니다. 그 대신 밥이 좀 싱거워요. 그것은 물도 중요하지만 불 떼는 데 달려 있습니다. 불이 올라오면 불을 적당히 빼가지고 내부 온도를 지켜주면 눌지 않습니다.
그 해 겨울에 그렇게 하면서 기도를 했는데 그 분은 따로 마지를 짓더라구요. 그리고 알고 보니까 산에 가서 나무를 낫으로 안 꺾고 손으로 꺾어요. 마른 나무지요. 정성을 바치는 것이지요. 손으로 꺾고 새로 사온 솥에다 따로 마지를 지어서 자기네 기도 마지를 자기네가 올립니다. 쌀도 자기네가 농사를 짓는데 소를 논에 들여보내지 않고 괭이로 파고 손으로 김을 매고 해서 농사를 지어서 그 논에서 나온 농사는 몽땅 기도 때 부처님께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자기네 집안이 망하는 것을, 자기가 죽게 된 것을 부처님이 건져주셨는데 자신으로서는 정성을 이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 분의 외가가 고 씨입니다. 그래서 저한테 친절을 보였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하여튼 지금껏 생각해도 항상 유하고 평화스러운 그 표정, 항상 관세음보살, 그리고 감사합니다, 그리고 한시도 안 놀고 절 구석구석을 맑게 닦고 그리고 염불하고 기도했던 그 분을 생각합니다마는 마음이 바뀌고 마음이 부처님의 은혜를 생각하는 사람이면 그렇게 되어서 바뀌는 것입니다. 자기가 바뀌고 환경이 바뀌는 것이며 집안살이가 바뀌는 것입니다.
제가 좀 전에 읽었던 무상각 보살님의 글은 재작년 월간 「불광」 2월호에 발표한 신앙수기인데 거기도 어려운 고통 속에서 부처님을 믿는 그 힘으로 극복해 나갔다는 얘기가 적혀 있었고 그 밖에 몇 개를 읽었는데 모두가 그런 일들입니다.

나는 부처님의 진리를 나타내는 창구
저는 여러 형제들을 대하면서 정말 마음속에 있는 것이 겉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 있더라도 마음속에 부처님을 생각하고 부처님의 은혜가 내 생명에 충만해 있고 부처님의 위신력이 나를 통해서 나타난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면 밝은 얼굴과 감사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단순한 범부가 아니라 위대한 광명, 부처님의 진리를 생명에 지니고 있는 불자다 하는 확신이 있고 그에 따르는 수행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바뀌는 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지난 번 12주년 기념법회 때 ‘마하반야바라밀’, ‘불가사의한 횃불’ 그 말을 반복했던 것입니다. “우리 형제들의 정진과 우리 형제들의 정진에 근거한 활동이 스스로도 밝고 이웃을 밝혀서 우리와 우리 나라가 함께 밝아지고 불광 만난 사람들은 모두가 행운을 만난 사람이다.” 이렇게 되도록 우리 각자가 노력을 해야 되겠고 우리 불광이 가는 곳마다 밝아지고 기뻐지고 새로운 희망이 커지는 그러한 환경이 되도록 우리 서로가 힘을 써야 하겠습니다. 실지 우리 불광은 법등을 통해서 그와 같은 일을 잘 하고 있습니다.
불법이 어떤 상태가 되어야 하겠는가? 우리 불법이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인가를 생각한 끝에 저는 부처님의 최상의 가르침이 반야바라밀인 것을 믿고 반야바라밀은 부처님의 생명이며, 부처님의 생명이 바로 내 생명에 이어지고 내 생명에 이어졌기 때문에 ‘나는 부처님의 진리를 나타내는 창구다’ 하는 확신이 생기면서부터 저는 반야바라밀에 대한 새로운 신앙이 커졌습니다.
그리고 우리 법등 수행을 통해서 이웃과 함께 겨레와 함께 우리의 시대를 함께 하고 있는 온 형제들과 함께 바로 이 부처님의 광명을 나누자고 하는 확신이 다시 그려졌던 것입니다.
호법정진하는 불광을 통해서, 한 사람 한 사람 기뻐지고,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정이 기뻐지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는 사업이 밝아지고, 우리 불광 한 사람 한 사람 가는 곳이 밝아지는 위대한 횃불, 불가사의한 횃불의 주인공이 되기를 기약하면서 또한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