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불교] 하와이의 성자 로버트 아잇켄

서양의 불교/ 로버트 아잇켄(Robert Aitken)

2007-10-06     관리자

로버트 아잇켄 선사는 미국 하와이 주 호놀룰루에 있는 다이아몬드 승가를 설립하였다. 아잇켄은 삼보교단에 속한 최초의 미국인이 되었을 뿐 아니라, 1974년 그에게 법을 전수한다는 공식 서류를 야마다 노사에게 받아 공식자격증을 가진 최초의 미국인이 되었다. 소박하고 꾸밈이 없는 그는 학생들을 가르칠 때 절대 모든 문제의 답을 다 알고 있는 척하지 않았다. 오히려 질문을 많이 하여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도록 했다.

그의 일생은 옳다고 믿는 바를 그대로 실천하는 삶,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 그 자체였다. 1950년대에는 핵실험 반대운동을 했고, 60년대에는 양방향 군비축소 운동을 했으며, 80년대에는 핵잠수함 반대운동을 했다. 베트남전이 한창일 때는 징집된 젊은이들의 상담역을 자처했고 하와이 종전위원회에 가담하여 FBI의 조사를 받기도 했다.

1978년에는 불교평화우의회의 공동설립자가 되었다. 그는 남성이었지만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불렀고, 낙태된 아이를 위해 제례를 지냈으며 불교권 안에서 여성평등을 지원했다.

아잇켄은 잘못된 장소에 잘못된 시간에 있다가 재난을 당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평생의 믿음과 삶을 바칠 수 있는 일을 만난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었다. 아잇켄은 하와이에서 태어나 교육을 받았다.

졸업 후 괌에서 일을 하던 그는 1941년 그 곳을 침입한 일본군에게 붙잡혀 일본에서 포로생활을 했다. 그런데 그 감옥 안에서 영국인 불교학자이며 스즈키 다이세츠의 제자인 블라이스(R. H. Blyth)를 만나 선불교를 접하고 그를 선생님으로 모시며 불교를 배우게 된다.

블라이스는 문학에 심취한 영국 지식인이었는데 단테를 읽으려고 이태리어를 배우고, 돈키호테를 읽으려고 스페인어를 배우고, 괴테를 읽으려고 독일어를 배우고, 바쇼를 읽으려고 일본어를 배웠다는 사람이다. 특히 블라이스는 돈키호테를 선(禪)에 의한 삶을 산 사람이라고 극찬했다. 전후 풀려난 그는 하와이로 돌아와서 선수행을 계속하다가 1950년 일본으로 다시 가서 야스타니 선사와 야마다 선사에게 선을 배우려 했다. 하지만 그 해 발발한 6·25전쟁으로 인해 일본으로 가기는 쉽지 않았다.

한국의 인접국이었던 일본을 미국정부는 전쟁지역으로 지정하여 미국시민의 방문을 허용하지 않았고 일본정부도 그 방침을 따르고 있었다. 미국 주재 일본 대사는 거듭 찾아오는 아잇켄에게 차를 대접하며 전쟁이 한창인데 무엇 때문에 거기를 가려 고집하느냐고 물었다. 아잇켄은 말없이 찻잔을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아주 고요하고 정성스럽게 차를 다 마셨다. 그리고는 대사를 응시하며 말하는 것이었다.

“차 한 잔을 마시며 나는 방금 전쟁을 종식시켰소.”

짧은 그 한 마디 속에 들어있는 지혜를 알아보았던 대사는 그에게 비자를 주선해주었다고 한다. 결국 우리가 늘상 행하는 생각과 행동에 우리의 온 마음과 온 존재를 줄 때 지구와 우주를 조화로운 상태로 이르게 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었다. 1974년 아잇켄은 가마쿠라에 소재한 삼보교단의 승원장인 야마다 선사에게서 제자를 가르칠 자격을 받고, 85년 법을 전수받았다. 삼보교단은 야스타니 선사가 1954년에 승원을 나와서 설립한 재가자들로 이루어진 단체로서 임제종과 조동종에서 최선의 것을 혼합했고, 승원 내의 모든 수행을 재가자에게 다 개방한 독립 종파이다.
삼보교단에서 스승은 전통적 개념의 은사라기보다는 초견성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코치와 같다. 딱딱한 틀이나 권위는 줄이고 대신 가르침이라는 전문기능을 가지고 정신적 길을 이끌어주는 동반자로서의 기능이 강화되었다.

야스타니에게 선을 배운 서양인으로는 로버트 아잇켄과 필립 카플로가 있다. 1973년에는 야마다 선사가 삼보교단 종파를 이끌게 되는데, 그가 바로 서구인 크리스천들을 아무런 조건없이 받아들여 가르친 그 사람이다. 야마다의 공안심사에 합격한 사람 중에는 신부, 수녀를 비롯한 서구인 크리스천이 13명 있다.

아잇켄은 1982년부터 연방정부에 세금을 낼 때 군비에 쓰일 몫만큼은 꼭 제하고 납부하는 실천을 계속해 오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런 면에서는 소로우와 정신의 맥을 같이 한다고도 볼 수 있다. 실제로 불경 말고 가장 좋아하는 책이나 예술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아잇켄은 서슴치않고 소로우의 월든과 저널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서구제국이 제3세계를 착취하는 것에 매우 비판적이었다.

“서구의 착취적인 경제체제는 불교의 제2계인 ‘훔치지 말라’를 위배하고 있다. 그러므로 착취경제를 근절하기 위해 일하는 것은 승가의 의무이다. 부처님은 승가가 사회변화에 기여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아잇켄은 설법이나 대화에서 부처님을 지칭할 때 여성대명사인 ‘그 여자(she)’를 사용하곤 했다. 요즘 영어권에서 제3자를 가리킬 때 전통적으로 ‘그 남자(he)’만을 사용하던 것을 ‘그 남자 또는 그 여자(he or she)’로 바꾸고 있는 주류를 따른 것이다. 동시에 부처는 성이 없다는 속뜻을 나타낸 표현이기도 하다. 그는 또 불교단체에서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 여성을 동등하게 참여시킬 것을 역설했으며, 불경의 번역을 다시 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수세기 동안 여성을 차별하는 말이 그대로 내려왔는데 이제는 고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서구의 선불교가 발전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동양에서 전해온 가부장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모델이 아니라 ‘합의에 의한 결정’을 통한 관리 모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2001년 3월 텍사스 주에 있는 한 카톨릭 중학교 학생들은 아잇켄을 성인(saint)으로 선정했다.

현재 84세인 아잇켄이 정말 성스러운 삶의 향기를 미국에 전하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들 때묻지 않은 동심들의 질문과 아잇켄의 답의 일부를 보자.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행복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행복합니다. 나는 은퇴했지만 지금 10번째 책을 집필 중이고 이웃과 함께 명상도 합니다. 내가 세상에 쓸모있다는 것이 좋고, 또 그렇게 유용하고 보람있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무엇입니까?”

“죽음은 놓아버리는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놓아버리는 일을 계속한다면, 삶속에서도 만족스럽게 죽는 것을 여러 번 체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