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제자였던 증조모의 은덕

함께 사는세상 이렇게 일굽시다

2007-10-06     관리자

아침에 밥을 먹으러 아래 살림집으로 내려가서 보니 90세이신 어머니의 머리카락이 많이 길어 있었다. 강진 사는 불제자인 친지를 불렀다. 그 친지의 차로 거동 불편한 어머니를 수문포 미용실로 모시고 가서 어지럽게 자란 어머니의 머리카락을 잘라드렸다.
독실한 불제자인 나의 친지는 혼자 오지 않고 기독교를 독실하게 믿는 후배와 함께 왔다. 그들은 어머니가 차에 오르내릴 때 양쪽에서 부축해드렸다. 나는 아주 그 차 만난 김에 어머니를 토굴 앞마당의 연못 가장자리 보라색 꽃잔디밭으로 모시고 왔다.
연못 밑에 있는 5백 평의 밭에는 철쭉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새빨간 색, 보라색, 녹색 꽃들. 그것들은 자기들의 생명찬가를 목청껏 불러대고 있었다. 두 해 전 모종 2만여 그루를 사다가 아내와 내가 가뭄에 물주고 잡풀 매주면서 가꾼 것인데 그 동안 반쯤이 죽어버렸다.
그래도 장관이다. 그것을 팔지 않고 해마다 두고 보기로 했다. 이 찬란하고 화려함 속에는 아내의 고통이 들어 있다. 아내는 그 철쭉밭을 가꾸면서 무릎 관절이 부어 올라 찜질을 하곤 했다.
세상은 그냥 놔두면 묵정밭이 되지만 이렇게 가꾸면 꽃밭이 된다. 몸도 가꾸어야 꽃처럼 아름답고 향기롭게 되고 영혼도 그러하다. 가꾸지 않으면 억새밭, 가시밭으로 되고 만다.
“좋다. 참말로 좋다. 극락이 따로 없구나.”
어머니는 찬탄을 거듭했다. 그 새 들떠 있었다. 들뜨실 경우 아무에게나 가르침의 말을 늘어 놓으려 하신다. 이 날은 예수님 태어남과 석가모니 부처님 태어난 일에 대하여 말하고 그 분들이 평생 하고 다니신 일들을 이야기하고 슬프게 못박혀 돌아가신 이야기와 그것이 가진 의미를 이야기했다.
어머니는 치매기도 없고, 심장·허파·위장·당뇨·혈압·관절…. 그 어디에도 이상증세가 없다. 잘 잡수시고, 잘 들으시고, 잘 보신다. 두 해 전까지만 해도 내가 쓴 책들을 모두 읽으시고 신문도 읽으셨다. 그러나 지금은 잔 글씨를 못 보신다. 화경을 대고 더듬더듬 읽으신다.
흰 종이 몇 통과 싸인펜 몇 갑을 사다드리면 그것으로 당신이 살아오신 이야기들을 쓰시고, 세상을 비판하시는 수필을 쓰신다. 그렇게 써놓은 종이가 내 허벅지에 차오르도록 쌓였다.
친지와 그의 후배는 다 아는 이야기일 터이지만 빙그레 웃으면서 “아 그래요?” “아하, 그렇네요!” 하고 감탄하면서 들어드렸다.
늙은 사람을 모시려면 그 분들이 하시는 이야기들을 들어드려야 한다고 들었다. 한데 나는 여느 때 늙은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어드리지 않는다. 옆에 앉아 듣고 있을 여유가 없다. 또 수없이 반복되는 동어반복이기도 한 그 말은 짜증나게 하기도 하기 때문에.
하루 세 차례 밥을 먹으러 아래 살림집으로 가곤 하는데, 그 때마다 어머니 방으로 들어가 “진지 잡수십시다.” 하고 모시고 나와서 밥을 다 먹자마자 “어머니 저 올라갑니다.” 하고는 토굴로 올라와 버리곤 하는 것이다. 그러한 면에서 나는 큰 불효자이다.
어머니는 연못 가장자리에 보료처럼 덮인 보랏빛 꽃잔디를 손으로 쓸어보시고, “아아 아아!” 하고 탄성을 질렀다.
농원 경영하는 제자가 마당에 잔디 깔아주고 연못 주위를 이런 나무 저런 나무로 장식해주고 그러면서 깔아준 꽃잔디들이다. 꽃잔디에서 분향내가 난다. 어머니는 꽃잔디를 쓸어보면서 당신의 시할머니(나의 증조 할머니) 이야기를 했다.
“우리 할머니는 이런 꽃들만 피어 있는 극락에 가 계실 것이다. 얼마나 독실하셨든지, 돌아가시면서 울지를 못하게 했어야. 당신은 극락으로 가게 될 터이니 절대로 울지 말라고…. 그러면서 당신 외아들(어머니의 시아버지)보고는 독경을 해달라고 하고, 나보고는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만 염송하라고 하셨어야.”
이 이야기는 어머니에게서 듣고 듣고 또 들어온 말이다.
“네가 잘 된 것은 다 우리 그 시할머니가 그렇게 착하게 사시면서 독실하게 부처님을 믿으신 까닭이다.
느그 증조 할머니는 거지들이 오면은 기어이 밥을 멕여 보냈다. 부엌 살강 우에 아주 거지들이 쓸 개다리소반 밥그릇 숟가락들을 올려놓고 살았다. 스님들이 탁발 오시면은 찻독 그릇에서 쌀을 듬뿍 퍼드리고….”
극락이 있다면 내 어머니도 그 곳으로 가셨으면 좋겠다. 아프시지 않고 사시다가 어느 날 아침 아들인 내가 당신의 방문 열고 들어가 “진지 잡수십시오.” 하고 말했을 때 당신 혼령이 혼자서 바람처럼 구름처럼 날아가버리고 계시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두 달 뒤에는 아주 미용사를 데리고 와서 머리해드릴께요.”
내 친지들은 어머니와 나에게 이렇게 약속을 하고 돌아갔다. 나는 이렇게 남의 덕으로 살아가고 있다. 어머니 말씀마따나 내 증조할머니가 독실하게 믿으면서 착하게 살고 빌어준 은덕으로 내가 이렇게 잘 사는지 모른다.
4월 꽃세상에서의 가슴 울렁거림은 5월의 연두빛 세상으로 들어서면서 세상을 축복해주고 싶은 가슴 뿌듯함으로 바뀌고 있다.
참으로 좋은 계절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부처님오신날이 왜 한꺼번에 5월 속에 몰려 있는지 그 까닭을 알 수 있을 듯싶다.
나도 축복하고 싶고 축복 받고 싶다. 이 세상에 짐승으로 태어나지 않고 사람으로 태어난 나를 축복하고, 다른 사람들을 축복해주어야 한다. 한데 축복 받지 못한 채 차가운 그늘 속에서 슬퍼하고 있는 불쌍하고 가엾은 사람들과 함께 축복해주고 축복 받아야 한다.
깜빡 잊고 살았던 은혜로움을 생각해야 하고, 장차 이 세상을 맡길 후세들을 튼튼하고 건강하고 올바르게 키워야 한다는 각성을 해야 하고. 아, 그렇구나. 가난한 자가 밝히는 작고 보잘것없는 등불이야말로 세상의 가장 화려한 큰 꽃임을 공부하는 달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