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의 법에서 부처님의 법으로

불광이 만난 사람 /이상규 변호사

2007-10-06     관리자

어떻게 살 것인가. 일찍이 나름대로 인생이 정립되는 사람도 있지만 대개는 마흔이 넘고 오십, 혹은 육십줄에 들어서면서 인생에 대해 되짚어보게 마련이다.
누가 보기에도 성공적인 삶을 참 잘 살아온 이상규 변호사(72세)는 환갑을 맞이하면서 자신의 인생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되돌아보면 후회없이 참 열심히 살아왔다. 그런데 과연 잘 산 것인가. 진정으로 ‘나’ 자신을 위해 살아온 것이 얼마던가. 단 하루도 없지 않은가. 변호사라는 것도, 학문을 하고 책을 쓰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 또한 즐거워서 한 ‘내 일’이지만 진정으로 ‘나’를 위한 일은 아니었다. 그 동안 수도 없는 사람들과 만났지만 ‘나’와 만난 것은 얼마나 되는가….’
환갑(還甲)! 인생을 한바퀴 돌고보니 진정으로 자신이 걸어야 할 길이 무엇인지 숙고하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른 것이 불교공부였다.
“그래! 그 동안 미루어두었던 불교공부를 하자.”
이상규 변호사는 가능한 한 바깥 일을 줄이고 하루 중 반은 불교공부하는 쪽으로 돌리자고 마음먹었다. 1996년 대학교수직(고려대 법학과)을 퇴직하면서부터는 본격적으로 국내외 불교 관련서적들을 보기 시작했다. 그 동안 사두고 미처 읽지 못한 불서들도 많았다. 주로 대승불교 관련 경전들과 그에 대한 해설서들이었는데 법화경을 네 번째 보면서 문득 의문이 일었다.
‘부처님께서 과연 이렇게 말씀하셨을까.’
2~3일간은 궁금증에 더 이상 책을 볼 수가 없었다. 경전이란 부처님의 가르침인데 부처님이 당신을 그렇게 추켜올리고 꾸미는 것을 용납하셨을까 싶었다. 복잡하고 화려한 상징들은 부처님께서 출가하시고 깨달음을 이루시고 45년간 중생을 제도하신 행적에 비추어보더라도 맞지 않았다.
궁금증을 풀고자 교보문고에서 구입한 경전사에 대한 책을 읽다보니 어느 정도 의문이 풀렸다. 그리고 아함경이라는 말을 처음 접했다. 내친 김에 일본에 연락해 고서점들을 뒤져 경전편찬사에 관한 책들을 모두 구했다. 읽고 나니 아함, 반야, 법화, 화엄… 각 경전의 위치와 경전 성립 과정을 훤히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아함경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함경은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이루신 뒤 열반에 드시기까지 45년간에 걸쳐서 제자들은 물론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설하신 법문들로, 입에서 입으로 암송되어 전해오다가 부처님 열반 후 결집(여러 설이 있으나 적어도 부처님 열반 후 1년 이내인 점에는 이론이 없다)된 초기경전(혹은 근본경전이라고도 함)이다. 아함경들은 구술형으로 되어있고 내용은 꾸밈이 없이 비교적 짧으며, 진솔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런데 2000여 경이나 되는 그 방대함에 놀랐다. 불교 전반을 섭렵하지 않는 한 현실적으로 그것을 다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국내에도 간행된 것이 몇 권 있으나 아함경전 가운데 일부 경을 가려 소개한다거나 한글 번역문만을 중심으로 엮어낸 것이 대부분이어서 무언가 흡족하지 않았다.
아함경 전체를 7번 읽으면서 이것을 주제별로 분류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문 원문은 띄어쓰기를 하고(기존의 원문은 띄어쓰기가 되어있지 않음) 한글로 번역하면서 컴퓨터 입력을 시작했다. 주말이면 시간을 잊은 채 거의 온종일 서재에서 나오지 않았다.
특히 언어공부에는 유별난 소질이 있는지라 마음만 먹으면 공부를 해서 부처님의 원음에 더 가깝다고 하는 팔리어경전을 번역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이 읽어온 한역경전 나름의 위상과 중요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소의경전들이 모두 한문본을 저본으로 해서 번역된 만큼 수미일관한다는 그 나름의 의미를 생각하여 해인사 팔만대장경(고려대장경 연구소 제공)을 저본으로 삼았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제대로 꿰어야 보배가 아닌가. 경전을 설법의 크기만으로 분류해 놓아 필요한 부분을 찾아 읽기 어려웠던 경험에 비추어 전체를 주제별로 분류하고 색인을 마련했다. 또 한역 원문과 국역문을 비교해 볼 수 있도록 하면서, 주제별로 서론격인 설명을 하고 각 부문별로 대표적인 경에는 간단한 설명을 붙이는 한편, 각 경을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다양하게 찾아보기를 달았다. 2천여 개가 넘는 설법 중 중복되는 것과 후대에 덧붙여진 것은 생략했다.
『전해오는 부처의 가르침』이라는 제목으로 지난 해 말 두 권이 출판(도서출판 해조음)되었고, 오는 10월까지는 완간(각 권 500-600쪽 분량으로 총 6권)될 예정이다. 다음 작업으로는 아함경전상에 나오는 지명을 지도화해보고 싶다. 그리고 6권 분량의 아함경을 다시 1권으로 간추려 영어권 사람들을 위해 영어로 번역해 출판할 예정이다. 그리고도 시간이 주어진다면 후기경전(우리가 흔히 말하는 대승경전)과 아함경전을 연결시키는 작업을 해보고 싶다. 대승비불설(大乘非佛說)이라는 말을 하는 이들도 있으나 초기경전인 아함경전의 내용을 시대적 요구에 맞게 전개, 넓게 보면 이 또한 불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무엇이 뿌리이고 무엇이 가지나 꽃인지를 알고 보면 좋을 것이다.

“아함경을 읽다보면 읽을수록 부처님은 참으로 진솔하시고 솔직하신 분이라는 것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어쩌면 이러실 수가 있을까.’ 부처님의 음성을 그대로 듣는 듯하지요. 후기 경전들은 형식면에서 초기경전과 다릅니다. 기독교문화를 배경으로 한 서양인들에게는 그 형식면에서도 아함경이 훨씬 쉽게 이해될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 인류가 함께 서로 공존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어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우주의 진리와 삶의 지혜를 통해 모든 것은 서로 의존하면서 어울려 살고 있다고 하는 연기적 삶의 지혜를 깨달아야 하는 것이지요. 본래 없는 ‘나’라는 집착과 끝없는 욕망에 찌들어 삶의 방향을 잃고 헤매는 현대인들에게 부처님의 말씀은 감로수요, 인생의 나침반이지요.”
지금까지 건강진단 한 번 받아본 적이 없을 정도로 몸도 마음도 건강한 이상규 변호사는 매일 아침 새벽 5시면 일어나 온집안의 문을 열어제치고 기공을 시작한다. 한 5분쯤 하다보면 영하 14~5도의 날씨에도 온몸에 땀이 비오듯 흐른다. 몸이 이상하면 땀이 나지 않기에 자가진단이 가능한 셈이다.
몸이 개운해진 상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