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 다실

2007-10-05     관리자
* 노염이 아직은 기승을 부리지만 역시 계절은 어쩔 수 없다. 8일이 백로, 23일이 추분, 29일이 추석이다. 흰 구름 끝에 열린 싱그러운 하늘의 시원함이여. 이제 그처럼 맹위를 떨치던 더위도 어쩔 수 없다. 이 골짝 저 들녘 곡식 알알에 풍성한 결실을 가득 담고 결실의 날은 하루하루 익어간다.
  역시 비가 와서 좋았고 햇볕이 뜨거워 좋았고 무더웠던 바람도 좋았다. 계절 풍우 이 모두가 가을의 수확을 가져다주었다. 풍년을 내다보는 이 가을이 대견스럽다. 

* 우리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다시 한 해 내지 한 생애를 살아가면서 수많은 관계 속을 살고 있다. 그것은 인간관계일 수도 있고 사회관계일 수도 있고 자연관계일 수도 있다. 수많은 관계가 우리를 붙들어 주고 우리를 키우며 성장을 지탱해준다. 그러니 모두가 감사할 밖에…… 감사의 천지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고 우리가 살려지고 있는 것이다.
  오곡백과가 향기롭게 익어가고 천지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는 추석 한가위를 우리는 맞이한다. 한가위는 한 해의 노력의 성과를 지켜보는 기쁨도 있지만 역시 그보다는 감사한 생각이 우리에게 더한다.
  이것은 농경사회에서 오는 풍습이거나 향수만은 아니다. 결실의 가을 모든 소망이 한껏 가득 차고 밝은 것 같은 달밤, 우리는 수많은 은혜 속에 안겨있는 지금을 잊을 수 없는 것이다. 정말 추석을 맞으며 온 천지 온 이웃에 감사하는 경건한 날이고 싶다.
  삼보님께 감사하고 조상님께 감사하고 부모님께 감사하고 온 이웃에 감사하고 온 천지에 감사하는 날이고 싶다. 그래서 이 땅에 태어난 기쁨과 불국토 가꾸어 크신 은혜 보답할 것을 다시 생각한다. 

* 맑은 하늘, 시원한 바람, 고요한 밤, 익어가는 가을, 이 가을이 알찬 결실의 가을이 될 것을 생각하니 맹구우목(盲龜遇木)의 법문이 생각난다. 이같이도 귀한 생애 값있게 결실을 맺어야겠다는 속마음의 외침인지도 모른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여기에 사람이 있어 바다에 구멍이 하나 뚫린 판을 던졌다고 하자. 그리고 또 눈먼 거북 한 마리가 있어서 백년에 한 번 물 위에 떠오른다고 하자. 그런데 저 눈먼 거북이 어느 백 년에 한 번 판의 구멍에 목을 내밀 수 있을 것인가.』『세존이여, 그것은 참으로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야 가능할 것입니다.』『비구들이여, 저 눈먼 거북이 백년에 한 번 물 위에 떠올라서 드디어 판 구멍에 목을 내밀 수 있다는 것은 악도에 떨어진 어리석은 자가 다시 사람의 몸을 얻는데 비하면 사뭇 빠른 것이다. 왜냐하면 저곳에는 바른 행도 없고, 고요한 행도 없고, 선업도 없고, 복업도 없다. 다만 서로 먹고 다투며 약육강식이 있을 뿐이다. 저들은 진리를 모르는 까닭이다…』
  이 말씀은 잡아함경에 보이는 법문이다. 귀한 생을 받아서 참으로 귀하게 살고 있는 가를 아프게 반성시켜 주시는 법문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자기만 살려고 서로 다투고 있지는 않나, 약육강식의 현상은 없는가 여러 면에 반성이 간다. 더욱이 바른 행, 안정된 행, 선업 복업이 우리사회에서 어떻게 행해지고 있는가  반성이 간다.
  사람 몸 얻기 어려운 가운데 얻은 귀한 몸, 귀한 시간이니 참으로 귀한 생애를 가꿔가야 하겠다.
  경전을 살펴보면 부처님을 만나 가르침을 받아 발심하고 수행한 수많은 성자들의 이야기가 보인다. 그런데 저분들은 부처님 법문을 배워 열반 피안에 이르렀다. 거룩한 성자가 되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생사를 넘어서는 위없는 가르침인 것을 증명해주고 있다.
  불법에 고금이 있을 리 없다. 오직 믿고 행하는 우리들이 문제다. 깊어 가는 가을 결실의 가을, 우리의 생애, 우리의 수행을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