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만선하면무슨일을해도좋은가?-라부지에의비극

2005-07-26     관리자

[뜻만 선하면 무슨 일을 해도 좋은가?-라부지에의 비극]


우리 주위에는 인간성이 특별히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면서
자기 만족이나 개인적 편안을 위해
남에게 고통을 주는 일에 동참하거나 방치하는 분들이 간혹 있습니다.


가령 좋은 일을 한다고 정당한 방법으로 취하지 않은 돈을 별 생각 없이 받는다든가,
아는 사람이나 이해관계 있는 사람의 부탁, 또는 금전이나 그 외의 이득을 취한 후
옳지 않은 결정을 내려주는 분들이 이에 해당합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억울한 사람을 양산하는 법조계의 전관예우라든가,
이해 관계가 걸린 회사에 아무런 고민 없이 쉽게 취직하는
퇴직 고위 공무원들의 모습도 그러합니다.


그 외 가진 자, 권력자의 편에 서서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힘없고 그렇지 않아도 서러운 일반인들의 일방적 양보와 희생을
당연하게 강요하는 분들도 이에 속합니다.



본인으로서야 아무 일도 아니지만,
그저 사인하나 하고 줄 하나 긋는데 불과할지 모르지만,
이런 분들의 별 깊지 않은 생각, 결정으로 얼마나 많은 분들이 가슴앓이 하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프랑스의 위대한 과학자, 질량 불변의 법칙을 발견한 '라부지에'에서, 그런 무심한,
그러나 악의는 전혀 없는 '자기 중심적 행위'가 어떤 인과를 초래하는지 봅니다.


라부지에는 1743년, 아버지가 돈을 주고 작위를 산, 낮은 계급의 귀족 출신으로 태어납니다.
청년이 된 1768년, 그는 '페르므 제너럴'이란, 징세 청부업 회사의 경영에 참여하는데,
이 회사는 정부를 대신해서 세금과 수수료를 징수하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라부지에 본인은 온화하고 공정한 사람이었으나 회사는 전혀 딴 판이었으니,
부자에게는 세금을 걷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에게만 세금 부과하였으며
그나마 원칙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 연유로 사람들의 원성이 몹시 깊었으나 라부지에 자신은 크게 상관치 않았던 것이,
그의 입장에서는 이 회사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던 과학 연구에 필요한 재원을
충분히 제공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창 때 그의 수입은 오늘 날 수준으로 연간 2000 만 달러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라부지에는 입사한 지 3 년 후, 상급자의 14 살 난 딸과 결혼하는데,
이 결혼 역시 '진정한 마음과 가슴과의 결합'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행복했다 합니다.



라부지에 부인은 예리한 지혜를 가진 여성으로, 남편을 도와 좋은 결과를 얻게 합니다.
두 사람은 바쁜 와중에도 하루 5 시간 이상을 실험실에서 같이 지냈으며,
특히 일요일은 "행복의 날"이라 명명하며 하루종일 실험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 후의 라부지에의 삶을 보면,
밀수꾼을 막기 위해 파리에 성을 쌓는 일을 감독하기도 했으며,
미터법 제정, 원소 이름의 근거가 되는 화학명명법에도 참여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프랑스 왕립 과학원 회원이었을 때(1780),
그는 전망이 밝은 젊은 과학자의 새로운 연소 이론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밝힌 적이 있는데(실지로 이 이론이 틀린 것으로 밝혀짐),
이로 인해 젊은 과학자의 원한을 사게 됩니다.


'장 폴 마라'라고 하는 이 젊은 과학자는 자신의 이론이 틀렸음에도 불구하고
부정적 의견을 제시한 라부지에를 결코 용서하지 않고,
나중에 그를 단두대에 서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프랑스 혁명이 발생했을 때, 라부지에는 불행히도 왕정파였습니다.
그런 라부지에를 더욱 곤혹스럽게 한 것은,
1791 년 국민회의 지도자가 된 젊은 과학자 '마라'였습니다.
그는 라부지에의 과거력을 끈질지게 파 헤쳐 공격하며 사형을 강력히 주장합니다.
1793년, 위기를 느낀 라부지에는 공포 정치를 피해 스코틀랜드로 도망치지만 체포되어
마침내 5월에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이 간단한 라부지에의 일생 리뷰에서,
유명한 과학자이고 온화하고 공정한 라부지에가
과연 무슨 이유로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하게 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질량 불변의 법칙을 발견하고 화학 혁명이라 불리울 정도로 인류에 큰 영향을 끼친,
위대한 천재 과학자가 왜 그런 비극적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을까요?



잘은 모르지만,
혹시 자신의 과학 연구를 위해 대중의 눈물을 희생한 댓가는 아니었을까요?



나의 행복과 이익을 위해 외면하고 무심했던 이웃의 아픔은,
어떤 형태로든 부메랑이 되어 언젠가 나를 찾아오는 것을 믿기에,
저는 감히 그런 생각을 조심스레 해 봅니다.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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普賢合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