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기 싫은 욕심의 산물, 변비

건강교실

2007-10-05     관리자

젊은 여성들이 약에 의존해서 볼 일을 본다. 아니면 주기적으로 인위적인 관장법을 이용하거나 심지어는 담배를 피고 커피를 마셔야 변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나쁜 줄을 알면서도 쉽게 습관을 바꾸지 못하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화장실을 속세의 근심을 풀어주는 곳이라고 해서 해우소(解憂所) 라고 불렀다. 사실 속세의 근심이라고도 할 것 없이 현대인들은 장에서 쉽게 배설되지 않는 음식들을 잔뜩 먹어 노폐물이 배설되지 않아 걱정을 많이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항상 아랫배가 불룩한 것 같기도 하고 불쾌한 팽만감이 생기는 것을 근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장에서 변이 빠르게 배설되지 않으면 장내 세균들에 의해서 이상 발효를 하게 되는데 이때 많은 가스와 독소들을 만들어내게 된다. 장내에서 만들어지는 메탄, 황화수소, 인돌, 스카톨과 같은 가스들은 배설되면 우리가 불쾌하게 느끼는 방귀가 되고, 장에서 만들어지는 발암물질들이나 독소들과 함께 대장 세포를 자극하여 암 발생률을 높이거나 혈액으로 흡수되어 간 기능, 면역 기능을 모두 저하시키게 된다.
옛날에 부시맨들은 하루 200g 정도의 섬유질을 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밑을 닦을 필요도 없었고 휴지가 있었어도 소용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인들의 섬유질 섭취는 권장량인 20~25g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침에 빵 한 조각에 커피 한 잔, 점심에는 흰밥에 고깃국, 김치 몇 조각 아니면 칼국수나 라면, 저녁에는 거나하게 술 한 잔에 고기안주 해서 먹게 되면 하루 5 g 의 섬유질도 섭취하지 않게 된다. 이렇게 섬유질이 없는 고기, 생선, 계란, 우유, 흰쌀, 흰빵, 식용유 등으로 만든 식품들은 모두 장내에서 배설되지 않고 머무르는 시간들이 길어져 많은 노폐물을 만들게 된다.
섬유질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먹었던 모든 음식에 들어 있다. 곡식이 그렇고 채소가 그렇고 과일이 그렇고 해조류가 그렇다. 하지만 샐러드 채소 같은 것들은 꼭 짜게 되면 90% 이상이 수분이고 과일도 많이 먹게 되면 단순 당분을 많이 먹게 되고 해조류도 많은 양을 매일 먹을 수 없는 것을 보면, 곡식을 통곡식으로 먹지 않으면 하루 필요한 섬유질 양을 채울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적어도 하루 80~90g 이상의 섬유질을 먹으려면 통곡의 식사로 세끼를 해야 하고 다양한 채소와 해조류를 섭취하려고 해야 한다.
섬유질은 수분을 빨아들여 팽창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충분한 섬유질의 식사, 통곡류의 식사를 하게 되면 변의 부피가 늘어나서 장의 운동을 자극하게 된다. 변비로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식생활을 바꾸는 것은 기본이 되는 일이다.
그러나 식생활을 바꾸고도 대변을 원활히 배설할 수 없는 사람들은 다른 측면에서의 접근과 이해가 필요하다. 즉 하나의 질병으로서의 접근이다. 그렇다고 그런 사람들에게서 통곡식이나 섬유질이 많은 식품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 병을 치료하는 데 가장 근본이 되는 일은 식생활이다.
식사를 바꾸고도 변비가 해결되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자율 신경의 균형적 조절에 상당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아침에 변의를 느끼게 된다. 새벽 5시에서 7시 사이에 대장의 연동 운동은 원활해지는데 이 시간에 일어나지 못해 항상 변의를 느끼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경우에도 변비의 한 원인이 된다.
뿐만 아니라 시댁에 가서 눈치 보느라고, 불편하다고 변의를 억제하거나 외출해서 외부의 화장실이 더럽다고 생각해서 변의를 인위적으로 참아 버리게 되면 자율적인 신체의 조절 기능은 날이 갈수록 억제되게 된다.
사람들은 변의를 참을 수 있는 자신의 의지와 능력을 위대하다고 판단할 수도 있고 환경이 변한 조건하에서 자신의 의지대로 어떻게 할 수 없다고 그런 상황을 묵인할 수는 있겠지만, 인간의 정신적 능력의 위대함보다 내 몸 안에서 썩고 있는 변이 더 더럽고 앞으로 많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인간의 정신 작용은 자연의 생명 작용 안에 있다. 배가 고프면 먹을 것을 먹듯이 변의가 느껴지면 화장실에 가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배가 불러도 더 먹고, 배가 고파도 입맛이 없다고 먹지 않으며, 변의가 있어도 참을 수 있는 것이 대단한 능력이나 되는 것처럼 생각한다. 인간의 의지와 정신 작용은 자연의 생명체들의 생명 작용을 벗어나 함부로 발휘되거나 유지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결국 이런 신체의 자율적인 조절 능력을 인간의 의지로 억제한 결과 더욱 장의 운동은 지연되어 운동성을 상실하게 되고, 아무리 섬유질이 많은 음식을 먹어도 장은 꼼짝도 하지 않고 있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어 버렸다.
장의 운동을 돕기 위해 복식 호흡을 하거나 아랫배를 엎드려 공으로 문질러 주거나 빠르게 걷고 등산을 하는 것이 많은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신체의 만성적인 긴장을 푸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신체의 긴장은 자율 신경 중 교감 신경의 흥분을 일으켜 신체 장기의 기능을 억제해버린다. 긴장은 욕심과 집착에서 온다. 지금 상태를 누구에게나 뺏기지 않고 유지하거나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더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판단할 때 신체는 만성적인 긴장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다.
더 얻고 싶은 것이 없고 더 갖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것이 없다고 판단하면 신체는 긴장할 필요도 없고 마음의 빗장을 열어 제낄 수가 있다. 사람들이 나와 같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마찬가지이고 사람들이 나와 너무나도 달라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모두 자기 욕심의 또다른 모습들이다.
이런 유형의 변비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교감 신경 흥분에 의한 또 다른 증상들을 모두 함께 가지고 있게 된다. 눈물이 마르고 안구가 건조해지거나 입안도 건조해지고 위 점막도 위축되어서 위산은 제대로 분비되지 않아 소화 기능이 떨어지고 방광과 자궁에 잦은 염증을 앓기도 한다. 피부도 건조해질 수 있으며 발뒤꿈치도 많이 갈라지기도 한다.
이런 증상과 함께 무엇을 해도 잘 낫지 않는 변비로 고생을 하고 있다면 마음의 긴장부터 풀어야 한다. 즉 마음의 욕심과 집착부터 내려놓아야 한다. 그것은 현실에 대한 만족과 감사에서 비롯된다.
서양의 명문대를 졸업하고 승진과 출세를 위해 열심히 일하던 서구의 잘 나가던 여성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성공과 일의 개념을 다시 정립하기 시작하면서 성공이라는 것을 이야기 할 때 ‘만족, 균형, 맑은 정신’이라는 말을 사용하곤 한다고 한다.
서구의 의식이 깨인 여성들은 지금 삶의 만족과 인생의 균형, 무엇보다 자신의 맑고 편안한 영혼을 위해 가정과 일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 우리 나라 여성들이 시부모도, 육아시설도 못 미더워서 직장 일을 그만두고 내 손으로 아이를 직접 키우겠다고 자신의 전문적인 능력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다.
중요한 것은 여성이 일을 하느냐, 안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삶에 만족하고 있으며 항상 편안한 마음과 맑은 정신으로 삶에 임하며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균형을 잃지 않고 있느냐 하는 문제다.
이것은 저력이고 이것은 희망이다. 삶의 긍정성은 내 장을 힘차게 움직이게 해줄 것이고 내 삶을 좀 더 활기찬 방향으로, 누구나 행복한 방향으로 안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