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불편한 두 부녀(父女)

2005-07-25     관리자

[눈이 불편한 두 부녀(父女)]



저는 기차 여행을 좋아하는지라, 휴일인 어제도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 사이로,
세 사람이 한 줄로 나란히 서서 조심스레 오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자세히 보니 맨 앞에 안경 쓴 젊은이가 자신의 팔을 잡은
눈이 불편한 50 대로 보이는 남자 분을 조심스레 이끌고 있었으며,
그 뒤로 이제 막 20 대 초반으로 보이는,
화장을 곱게 하고 스커트 정장을 한 아리따운 숙녀 한 분이
아버지로 보이는 그 50 대 분의 손을 뒤에서 잡고 오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에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아하! 저 나이 든 분이 아버지이시고, 뒤의 숙녀 분은 딸인데
앞에 선 젊은이와 함께 눈이 잘 안 보이는 아버지를 모시고 기차 나들이 길에 나섰구나...
참 훌륭한 따님이시다...


그리고 흐뭇한 마음으로 세 분을 지켜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때까지 조심스럽지만 그런대로 별 장애없이 잘 가던 분들이
문제가 생긴 것은 그 분들이 개찰구에 이르렀을 때입니다.
갑자기 숙녀 분이 개찰구에 마련된 장애물에 덜컥 부딪혀 넘어질 뻔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 매우 놀란 듯 아버지가 황급히 뒤를 돌아보며 손을 내미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저 숙녀가 왜 저기 부딪혔을까 의아했습니다(건강한 사람이면 부딪힐 리가 없으니).
그 때 당황하는 숙녀의 모습이 정면으로 보였는데,
아! 그 숙녀도 알고 보니, 아버지와 똑같은 눈이 불편한 분이었습니다.


그제사 모든 정황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두 부녀가 모두 눈이 불편한 분으로,
나들이를 할 일이 있어 아는 분의 도움을 받아 역으로 왔다는 것을.


이끄는 분은 한 사람이니, 두 분이 조심스레,
아버지는 젊은이의 팔을 잡고 딸은 아버지의 팔을 잡으며 조심스레 오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때 울컥 치밀어 오르는 감탄과 비애감...


아! 저 어여쁜 숙녀가 눈이 잘 안 보이는 분이었구나!
그런데도 저리 아름답게 화장을 하고 이쁜 옷을 입고 나들이하였구나...


비록 눈이 보이지 않아 자신이 입은 옷을 볼 수도, 화장한 얼굴을 볼 수도 없었겠지만,
나들이 길에 설레며 옷을 고르고 정성 들여 화장을 했을 그 젊은 숙녀의 고운 마음이
저를 감탄케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보다 저를 비감하게 만든 것은,
제 가슴에 느껴지는 아버지의 아픈 마음 때문입니다.


이 세상 모든 부모의 마음이 한결같듯,
아버지는 당신의 딸이 결코 당신과 같은 아픔을 겪지는 말 것을 희망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부모가 그러하듯, 건강한 딸이 태어나자
비록 볼 수 없는 자식이지만 아버지는 얼마나 기뻐했겠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기뻐한 자식이 당신과 같이 불편한 몸이었으니...
그 사실을 알고 느꼈을 아버지의 아픔, 그리고 절망감이 저를 휘저은 것입니다.


딸아! 네게는 이 애비와 같은 아픔을 주지 않기를 바랬는데,
너마저 애비 때문에 그렇게 되었구나. 미안하다 딸아...


이런 아버지의 외침이 제 귀에 들리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그 딸은 이제 저렇게 고이 자라, 저렇듯 고운 숙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팔을 의지처 삼아, 나들이 길을 나섰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장애가 없는 분이 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눈이 불편한 저 분을 안내하는 젊은이도 안경을 썼던데,
정도의 차이만 있지 저 젊은이 역시 안경이 없다면 나들이를 쉽게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 모두가 그다지 큰 차이가 없는 것이,
밝은 눈으로 본 우리들의 여실한 모습일 것입니다.



그런데 조금 덜 불편한 우리들이 그 분들을 무시하고 어려움에 대한 배려가 없다면,
얼마나 우습고 어리석은 일일까요?
그리고 그러한 우리들의 오만함으로 인해,
그 분들이 밝은 마음을 갖지 못하고 슬픔과 원망만 깊어간다면,
우리 모두에게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이겠습니까.


장애를 장애로 보지말고, 그 분들을 건강한 분으로 대할지니,
우리 또한 종류는 다르지만 사지 멀쩡한 지금도 정도의 차이만 있지
똑같은 장애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차별하고 교만할 이유가 없습니다.


비록 그 분들이 스스로 장애우로 생각할지라도,
우리는 그 분들을 우리와 똑같은 건강한 분으로 생각하고 예우할 일입니다.
그리고 그 분들이 힘들어할 때, 언제든 그 분들의 벗이 되어 드릴 일입니다.
그렇게 하면 비록 아직도 곳곳이 불편하고 아쉬운 우리나라의 현실이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 모두가 조금도 차이가 없는,
모두가 건강하고 모두가 어둠 없는 밝은 사회가 오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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普賢合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