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불교] 존 다이도 루리(John Daido Loori) 선사

2007-10-05     관리자

루리 선사는 미국인이 선호하는 활동성과, 자유 그리고 꾸밈없는 천진함을 고루 갖춘 사람이다. 그가 주석하고 있는 뉴욕 주 트렘퍼 산자락의 선산승원(Zen Mountain Monastery)을 찾은 불교학자 찰스 프레비시(Charles Prebish) 교수는 그를 만나 세 번 놀랐다고 한다.

첫째 합장이 아닌 악수를 하려고 내민 팔에 선명한 문신이 있는 것이었다.

둘째 승원장에 따르게 마련인 격식이 하나도 없이 몇 시간 동안이나 손수 선원 곳곳을 안내해주었으며 어떤 질문을 해도 솔직하고 소탈하게 답해주는 것이었다.

셋째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컴퓨터실을 자랑스럽게 보여주었는데 선사와 컴퓨터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선입관 때문이었는지 무척이나 놀랐다고 한다.

“실은 학생들도 저를 좀 괴짜라고 생각했지요. 원래 선사라고 하면 근엄하고 신비롭고 그런 이미지가 있잖아요. 그런 낭만적인 선사의 이미지를 컴퓨터를 만지는 제가 다 깨어버린 거지요.”

자연의 아름다움에 심취하여 자연사진을 찍다가 선불교를 만난 그는 사진 전시회를 무려 40회 정도나 하였으며 사진작품집 ‘빛과 사랑하기(Making Love With Light)’를 출간하였다.

루리 선사는 해군에 복무할 때 카누 타는 법, 오지에서 살아남는 법 등을 익혔다. 그런 재능을 활용하여 선산승원에서는 명상과 문화를 접목한 유일무이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첫째 명상과 사진을 접목한 수련회가 있는데 주제를 ‘순진무구한 눈으로 보라’로 하고 있다. 승원장이 직접 지도하는 이 5박 6일 수련회에서는 대상을 온전히 보는 수련으로서 우선 명상을 한 다음 야생 현장으로 나가 촬영실습을 한다.

6박 7일 ‘야생에서 살아남기’ 수련회에서는 야생의 급류와 산악지역에서 서바이벌 기술을 배우고 조석으로는 자연 속에 고요히 둘러앉아 명상을 한다.

미국의 전통적인 승가로는 선산승원이 첫손가락에 꼽힌다. 장기간 정진이 가능하고, 승가와 재가가 고루 수행을 할 수 있는 이곳은 또 루리 선사가 설립한 산수종(Mountains and Rivers Order)의 본산이다. 백매화 승가(White Plum Sangha)를 설립한 마에즈미(Taizan Maezumi) 노사의 열두 법제자 중 하나인 그는 학생들에게 간화선과 묵조선을 고루 가르치고, 정업 즉 바른 행을 닦도록 가르친다. 그가 발행하는 잡지 산중록(山中錄, Mountain Record)에서는 아잇켄 선사가 무기로 들어가는 몫만큼을 떼고 세금을 납부하는 기사를 비롯한 불교도들의 바른 행을 자주 싣고 있다.

그는 또 컴퓨터에 산수종의 모든 말사와 선원 회원들에 관한 정보를 입력해놓고 모든 사람들이 사이버 공간을 통해 서로 연결되고 만날 수 있도록 하였으며 불교를 공부할 수 있도록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도 구축해놓았다.

대체로 서양 불교 지도층이 엘리트임에 반해 루리 선사는 뉴저지의 빈민굴에서 태어난 블루칼라 출신이다. 어려서부터 주위 사람과 몸으로 부딪치며 사는 생활에 익숙해졌고, 또 해군 복무로 강인함도 키웠으며, 게다가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자연 본연의 아름다움을 대하는 시각과 자세도 키웠기에 그는 미국 대중에게 가장 이상적인 법사의 자질을 갖춘 듯싶다.

선산승원은 트렘퍼 산과 그 주변을 둘러싼 넓은 야생보호지역 한가운데 있다. 그가 승원에 찾아드는 해리(海狸)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 생명존중과 삶의 상의상존성을 그대로 수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해리 몇 마리가 승원 마당에서 놀고 있어 당국에 신고를 했다. 해리가 보호동물이었기 때문이다. 당국이 와서 녀석들을 데려간 다음 날 다시 또 두 마리가 나타났다. 녀석들은 나무를 계속 쓰러뜨리고 먹어치우더니 급기야는 제자들이 선물로 심어준 아름다운 버드나무까지 쓰러뜨렸다. 그 나무가 아름답게 자라면 나의 노년에 그늘에서 책을 보며 쉬라고 제자들이 심어준 나무였다.

그런데 그것이 쓰러져서 이제 시냇물의 흐름을 막고 있었다. 그로 인해 물이 차올라 연못이 생겨났고 물의 수위가 오르면서 물고기가 들어차기 시작했다. 그러자 오리떼가 나타났고, 오리는 또 여우와 물수리를 불러왔다. 갑자기 해리 두 마리 때문에 버드나무 주변이 온통 살아나서 법석댔다. 물론 해리는 먹이가 되는 나무를 다 먹어치우자 그곳을 떠나버렸다.

그렇게 되기까지 한 두어 해 정도 걸렸다. 아무도 돌보는 사람이 없자 댐의 물은 새어나갔고 연못도 사라졌다. 다시 나무가 자라나고 그를 먹을려고 해리가 나타날 때까지 아마 그곳은 그렇게 고요함을 유지할 것이다. 우리가 손을 놓고 개입하지 않는다면 자연은 그렇게 스스로 알아서 조절하는 것이다. 그리고 제자들이 선물했던 버드나무도 둥치에서 새싹이 나와 다시금 잘 자라고 있다.”

수도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가장 큰 걸림돌은 돈과 권력과 섹스라는 것을 루리 선사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권력에 관한 한 승원 내부를 정부처럼 3권분립으로 관리하고 있다.

첫째 이사회는 법적인 것과 재정을 관리한다.

둘째 관리회는 총체적 기획을 맡는다.

셋째 수호회는 승원에 사람을 들이고 내는 일을 담당한다.

루리 선사는 이사회와 관리회에는 관여를 하지만 수호회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루리 선사는 승원에 사는 제자들에게 월 100불씩 용돈을 지급하고 있다. 물론 숙식과 가르침은 무상이다. 수행자에게 숙식과 가르침을 무상으로 제공할 수 있음을 볼 때 이곳은 아시아식 승원 문화가 정착된 듯 보인다. 이는 미국에서는 아주 드문 일이다.
대체로 선원에서는 학생들의 연회비나 수련회 참가비, 기부금 등으로 간신히 재정을 충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스즈키 순류 선사가 세운 소노마산 승원에서는 거주하며 공부하는 학생은 월 325불이라는 거주비를 내야만 한다.

선산승원은 뉴욕시에 선방을 설립했는데 이는 미국 내 선방 설립의 경향을 거꾸로 한 최초의 선방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보통 미국에서는 도시 내부에 선방을 설립하고 그것이 번창하게 되면 장기 수련회를 열 수 있는 장소로 시골이나 산 속에 수련원을 설립해왔다. 그러나 선산승원의 경우는 산속에 승원을 먼저 만들어 정통 사원을 정착시킨 후에야 대도시에 선방을 만들었으니 어려운 길을 스스로 택한 것이었다.

루리 선사는 뉴욕 주 그린해븐 시에 위치한 중형자 수감원에서 재소자들을 지도하고 있다. 감옥 내 연꽃선방(Lotus Flower Zendo)에서 재소자들은 참선 및 불교공부를 하고 출감 후에는 선산승원에 와서 원하는 만큼 머물다 갈 수도 있다. 사회에 나와 다시 적응하고 정착할 때까지 많은 어려움과 흔들림을 겪는 재소자의 현실을 생각할 때 선산승원의 애프터케어 프로그램은 자못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사이버 승가가 발달함에 따라 앞으로의 불교가 어떻게 변할 것 같냐는 질문에 그는 파안대소를 하며 이렇게 답했다.
“순간에서 순간으로, 쉬임없는 흐름으로, 한 숨에서 다음 숨으로 그렇게 발전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