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코드를 늘 부처님께…

우리 스님/ 대구영남불교대학 관음사 우학 스님

2007-10-05     관리자

하루하루가 모여 삶을 엮어갈진대 어느 날인들 새롭지 않으랴. 하지만 11월호(창간 29주년 기념호)를 만들 때는 여느 달과 조금은 다른 감회에 젖곤 한다. 초대발행인이신 광덕 큰스님이 생각나고, 불광의 전법오서(…전법으로 정토를 성취하겠습니다.)가 입가에 맴도는데, 불현듯 포교제일스님으로 손꼽히는 영남불교대학 관음사 우학 스님이 떠올랐다.
지난 1992년 첫 신입생을 받아들인 지 11년 만에 8만여 명의 동문을 자랑하는 영남불교대학 관음사의 괄목할 만한 성장은 교계 내외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다. 불교공부(가장 많은 조계종포교사 배출)와 수행(3,000배를 다반사로 하고 있다.), 포교(한 학기 신입생 5000명의 대부분이 자체 신도 포교로 이루어지고 있다.), 봉사(30여 개의 자체봉사단, 하루 1500명 봉사자 활약)가 조화를 이룬 불자로 이끌어 영남에 새로운 불교 바람을 불러일으킨 우학 스님을 뵈러 대구로 향하는데 참으로 행복했다.

빛이 안에 있으면 겉으로 드러난다
지하철 영남대병원역에서 하차, 출구의 ‘영남불교대학’이라 쓰여진 안내판을 보며 흐뭇했는데, 영대병원 네거리에서 도심을 굽어보시는 금빛 찬란한 부처님과 높다란 전통양식의 7층 건물(연건평 2,000평)을 보노라니 탄성이 절로 나왔다. 한편 도량 안에 들면서 층별안내[지하: 식당, 무료급식소, 1층; 종무소, 인터넷 불교TV방송국, 컴퓨터 교육실, 불교상담소 등, 2층; 납골당이 모셔진 극락전, 감로찻집, 도서관, 3층; 큰법당 겸 문화관, 4층; 큰법당 겸 강의실, 5층: 삼보전, 6층: 행자교육원, 7층 수행관(선방, 강원)]를 받으면서 그 규모뿐만 아니라 도량 곳곳에서 치열하게 공부하고 수행 봉사하는 수많은 불자들의 밝디 밝은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빛이 안에 있으면 겉으로 드러난다던가. 그 빛의 근원은 물론 부처님이요, 본인들 스스로 자성(自性)을 밝혔기 때문이겠지만 그네들을 이끌어준 스승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는 면면이기도 하다.
짐짓 불자들에게 성장의 비결을 묻자, “우리 스님 덕분인기라.” “내사 우리 스님처럼 열심히 하시는 분 못 봤다.” “맞다. 강의는 물론이고 땀으로 범벅이 될 정도로 절하는 우리 스님 뵈면 신심이 절로 난다.”며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신도들, 대선혜 보살(영남불교대학 동문회장)의 “우리 스님은 스님들이 갖춰야 할 좋은 면을 다 갖춘 분이다. 모든 면에서 철저하시고, 검소하시고, 당신 몸을 아끼지 않으신다. 몇 세기에 한 분 나올까 말까 하신 우리 스님을 만나 철저히 교육받은 덕택에 우리들 모두 큰 자부심을 가지고 포교에 임하고 있다.”라는 말에서 영남불교대학 관음사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별처럼 관세음보살처럼 살리라
소탈한 모습의 우학 스님은 여전하셨다(동국대학교 다닐 때부터 뵈어 온 스님은 치열하게 공부하셨고, 재학 당시에도 선방에 다니실 정도로 수행에 힘쓰셨으며 정각사 학생법회를 지도하시는 등 포교 원력도 대단했다). 항상 여여하게 잘 사시는 스님을 뵈면 특히 출가 인연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어릴 때부터 입버릇처럼 절에 가서 살아야겠다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 숙모가 ‘말이 씨가 된다’고 했는데 정말 그렇게 되었어요.”라고 말하며 환히 웃으시는데, 예전에 스님이 집필하신 『저거는 맨날 고기 묵고』에 나온 내용이 생각났다.
“어릴 때부터 믿고 따랐던 둘째삼촌이 영양제 주사를 맞고 쇼크사하자 큰 충격을 받았다. 그 때부터 생명의 실상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되었고, 동양의 인생철학과 생명의 신비가 만난다는 한의학을 전공하기 위해 한의대에 진학했는데, 그 해 섣달 어느 날 별을 보다가 ‘나도 저 별처럼 살리라’는 결심을 하면서 너무 벅찬 황홀경에 젖어들었다.
무작정 스님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터미널로 향했고, 거기서 만난 한 스님이 일러주는 대로 통도사로 갔다. 그 길로 성파 스님을 은사로 출가 입산, 행자시절 신묘장구대다라니를 다 외우게 되었을 때 별하늘을 거닐며 관세음보살님의 손을 잡는 꿈을 꾸시고 ‘내 이제 세세생생 관세음을 예찬하고 노래하리라’ 다짐하였다,”는 스님의 출가 인연 이야기와 꿈 이야기”가 마음을 사로잡았는데, 스님을 뵈니 더욱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출가 인연이 어찌 이생만의 것이랴. 별처럼, 관세음을 예찬하며 살겠다는 스님의 원력은 이미 그때 이루어진 듯싶다. 그러기에 행자시절부터 만인이 우러르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은 신심으로 용맹 정진할 수 있는 것이리라.

순간 순간 열심히 수행하며 포교할 뿐
도심포교가 쉬운 것은 아니다. 특히 대구 같은 경우 시내에서 이십여 분 차로 달리면 그야말로 명산 대찰이 많은 곳인지라 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우연히 대구 시내의 한 포교당이 월세 50만원을 못 내어 교회에 넘어가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부처님 빚 갚겠다는 마음으로 포교당을 인수하게 되었지요. 처음엔 도반스님들이 밥 먹기도 힘들 거라며 극구 말렸지요. 실제로 초창기에는 부처님 전에 올릴 마지 쌀이 없어서 시골에서 참기름을 떼다가 그것을 판 차익금으로 공양을 올리기도 했지요.
하지만 스스로에게 철저하고, 공심으로 살면서 순간 순간 최선을 다해 공부하고 열심히 수행하며 포교하면 다 이루어집니다.”라고 힘주어 말한다.
무엇보다 제대로 된 불자를 양성하는 교육불사가 시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중에 갖고 있던 전 재산 125만원 중 100만원으로 중고복사기 한 대를 들이고 남은 돈으로 현수막 10개를 맞추어 손수 달았다. 자필로 ‘영남불교대학 모집’ 전단지를 직접 작성, 밤새도록 복사해 가가호호 넣는 등 고생한 보람이 있어 1기생 150명이 입학하였다.
“인과응보는 먼 미래의 일이 아닙니다. 산중사찰에서는 불교 공부를 안 시키고, 불교대학은 알음알이에만 빠지기 때문에 실패하는 것입니다. 수업시작 전에 꼭 108배를 함께했고, 참선이든 기도든 자신의 내면세계를 바라보는 수행을 하도록 독려하고,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도록 이끌었지요.”
불교 공부도 중요하지만 수행이 함께 하는 불교교육을 강조한 점이 주효했다. 스님이 늘 함께 수행하는 모습을 보이고, 자필로 쓴 교재를 복사해서 일일이 나눠주고, 1시간을 강의하기 위해서 스무 시간을 준비할 정도로 철저히 공부하며 가르치는 열성에 감복했다.
입학생들 스스로 포교에 힘써 불교대학 신입생이 폭발적으로 늘어나 1998년도부터는 신입생이 3천명(신입생들은 20%가 타종교인으로 수강 후 대부분 개종, 20%가 다른 사찰에 인연이 있는 분들, 60%는 무종교인으로 구성되어 있다)씩 입학하는 전국 제일의 불교대학으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영남불교대학의 기본 과정(1년)은 현재 80기가 수강 중이며 그 동안 약 7만 명이 졸업했다. 그리고 대학 과정(1년), 대학원 과정(2년), 삼장법사 과정(6년)이 차례로 만들어져 총 10년 동안 공부하게 된다. 제1기생 중 50명이 삼장법사 과정의 마지막 반을 이수하고 있다.]

도심포교의 새로운 모델, 도심 총림
“삶의 코드를 늘 부처님에게 맞추면 됩니다.”
항상 부처님 말씀을 공부하면서 포교하고, 수행해서 힘이 생기면 반드시 이웃에게 봉사해야 완전한 부처님의 제자가 될 수 있다는 우학 스님, 그리고 스승의 판박이인 영남불교대학 관음사 불자들의 열성은 대구불교의 교세까지 바꾸어놓았다.
6:4정도로 불교가 열세였는데 십여 년 만에 그 반대가 된 것이다. 영남대병원의 예만 보더라도 환자의 80%가 기독교였었다. 불교인들이 아플 때 개종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남불교대학 관음사 봉사단이 매일 병원봉사를 하면서부터 이제는 80%가 불교신자다.
지난 대구 지하철 사고 때도 영남불교대 봉사단은 맹활약을 펼쳤다.(재난 현장에서 활동하는 연화봉사단, 병원봉사단, 교도소봉사단, 불교간병사회, 무의탁노인 무료급식, 불기 닦기 봉사단, 군부대 봉사단 등 30여 봉사단체, 3000여 명이 자발적·조직적으로 움직여 이 지역에서는 ‘봉사’ 하면 영남불교대 관음사를 떠올릴 정도이고, 포교에도 큰 몫을 하고 있다.)
한편 지난 해에는 ‘복지법인 좋은 인연’을 설립, 사찰 옆 건물을 매입하여 복지관을 마련하였다. 앞으로 무료병원, 불교요양원을 건립, 주로 소외된 노인·장애인 복지에 힘쓸 예정이다.
“부처님 근본정신에 입각해서 공부하고, 안목은 세계불교로, 방편은 첨단불교를 지향하고 있지요. 광덕 큰스님이 하신 것처럼 현실에 맞는 포교전략을 구사해야 합니다.” 스님이 불교만화연구소[신세대들을 위해 ‘불교 만화·애니메이션 연구소’를 만들어 불교만화 공모전, 불교 캐릭터 상품 개발, 불교 애니메이션 제작, 정기적으로 「불교만화이야기」 발간 등], 인터넷 불교대학[인터넷 불교TV방송국(TVbuddha.co.kr)은 영남불교대학의 전 강의를 동영상으로 전달한다.], 통신불교대학, 도서출판 좋은 인연[각종 불교교재를 출판, 전국 불교대학들의 교재로 공급하고 있다. 요즘 『획기적 포교방법』 집필 중], 월간 법보시, 주보, 영남불교대학 오케스트라, 합창단, 남성합창단 등에 큰 힘을 기울이고 있는 것도 다 그런 까닭이다.
“눈을 뭉칠 때 처음에는 손이 시려 힘들지만 일단 뭉쳐지면 삽시간에 큰 눈덩이가 되는 것처럼 사찰의 발전도 마찬가지입니다. 탄탄하게 조직을 정비하고, 인재를 키워 적재적소에 임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영남불교대학 관음사는 내가 서너 달 없어도 이제는 잘 굴러갑니다. 일년에 한 철씩 선방이나 토굴에서 정진하고 있는데, 수행과 포교에 긍정적인 작용을 한다고 봅니다.”
성장의 비결은 매사 모범을 보이는 스님과 조직력에 있었다. 매년 불교대학 신입생을 중심으로 기수 모임을 갖는다. 수업별로 8개의 기수반, 한 기수가 600여 명, 1개 기수당 6개의 구역으로 나뉘고, 한 구역은 6개의 관음으로 다시 구분, 1개 관음은 10~20명으로 이루어진 신도조직의 최소단위인데, 위에서부터 아래에 이르기까지 모든 조직이 인드라망처럼 구축되어 모든 불사가 원만히 이루어지고 있다.
“스님과 신도들이 같이 수행하고 공부하는 도량(재가자들을 위한 공간뿐만 아니라 스님들을 위한 도심 속의 강원, 선원, 율원 설립), 아울러 유치원(2500평, 올 12월 착공 예정)에서는 어린이들이 뛰놀고, 무료노인병원과 요양원에서는 노인들이 쉬고, 젊은이들은 봉사하는 도심 총림으로 일구어갈 것입니다. 양적으로는 영남불교대학 관음사를 모델로 한 분원을 건립, 확장시킬 예정인데, 천수천안관세음보살님이니 국내외에 천 개의 분원을 세운다면 불국토가 이루어지지 않겠습니까?”
‘도심 총림, 천 개의 영남불교대학 관음사, 불국토’, 말만 들어도 흐뭇하다. 사실 스님의 청사진은 착착 이루어지고 있다.(스님의 상좌가 벌써 30명이나 되는데, 현재 네 군데 분원에서 활약 중인 상좌, 행자원에서 교육받고 있는 상좌들 모두 스님을 닮았다는 후문이다.)
“자신이 반듯해지면 세상 전체가 반듯해진다. 불자의 길은 뻔하다. 그저 묵묵히 공부하고 수행하고, 포교하고, 봉사하며 부처님의 길을 가면 된다.”는 우학 스님, 그 큰 원력의 바다에서 기자 또한 문서포교사로 거듭나는 듯, 법열로 충만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