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are you?

특별대담/미국 프로비던스 선센터 원장 대광스님

2007-10-05     관리자

미국 캔사스 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치던 대광(60세) 스님은 숭산 스님과 인연해 1979년 선공부를 시작했다. 1987년 출가하여 현재는 로드아일랜드 프로비던스 선센터(1972년 숭산 스님이 건립) 원장으로 미국과 유럽, 북아프리카, 아시아 등 국제선원 선센터를 순회, 숭산 스님을 대신해 선수행법을 널리 전하며, 참선 납자들을 제접하고 있다.

선수행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은사이신 숭산 스님께서 종종 말씀하시길, “네 삶의 방향이 확실하다면 네 인생 전체가 확실하다. 네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확실하지 않으면 네 인생은 언제나 문제일 것이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선수행을 하는 이유는 우리 자신을 완전하게 이해하고, 우리의 본면목을 깨닫고 모든 중생을 고통에서 건져내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는 방향이며 모든 인간의 본래 목적입니다.

서양의 초심자들에게 선을 가르치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 …
기독교 유태교 배경의 대부분 서양인들은 주로 머리로만 불교를 알려고 합니다. 불교에 대한 느낌이 없습니다. 머리로만 알려고 하지요. 아니 아예 종교 자체에 관심이 없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들은 기성종교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 있어요.
그러나 “나는 누구인가” 했을 때 그것은 종교에 상관없는 누구나의 질문이기 때문에 관심을 갖습니다. 그러나 설령 관심을 갖는다고 하더라도 초보자의 경우에는 화두를 참구하는 것 자체를 몹시 지루해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 연습을 하면서 안내자 역할을 해가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넌 할 수 있다.” “나도 할 수 있다”고 하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해요. 화두공부를 처음 시작한 사람들의 경우 공안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데 무엇보다 스스로 의심이 일도록 격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미국인이 한국의 선을 지도하는 것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이 있을 텐데…
한국 하늘도 파랗고 미국 하늘도 파랗습니다. 미국사람이건 한국사람이건 일반적으로 자신에 대해 너무나 모릅니다. 기본적인 문제는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자신을 알도록 돕는 것이 나의 역할입니다. 숭산 스님의 스타일처럼 기본 뼈대는 지키지만 상황에 맞게 사람들을 이끕니다. 예를 들면 108배는 감정적인 사람들이 차분해지는 데 도움을 줍니다.
부처님의 법이 달마 대사를 거쳐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가면서 변했고, 다시 중국 불교는 한국으로 와서, 한국 불교는 또 일본으로 건너가서 변했습니다. 이제는 한국, 일본, 중국, 인도 사람들이 모두 미국에 와서 불교를 가르치면서 또 불교는 변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항상 변하고 또 변합니다. 그러나 그 바탕의 본래 자리는 같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의 진면목을 찾아서 이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지금 무엇인가? What are you now?” 당신은 무엇인가? “What are you?” 그것이 제일 중요하지요.

왜 화두참선인가
불행하게도 우리는 많은 시간을 지금 바로 서있기보다는 생각들과 거기에 결합되는 감정들에 소비하며 삽니다. 숭산 스님의 고조벌이 되시는 경허 스님께서는 자신의 가장 유명한 법문 중의 하나를 다음과 같은 말로 끝내셨습니다.
“나의 유일한 소원은 그대들이 모든 개념적 이해로부터 벗어나는 것뿐이다.” 이것이 선입니다. 모든 생각을 끊어버린다면 모든 행동이 진실이며, 그대와 우주는 이미 하나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분명한 마음이며 집착하지 않는 생각이며 진실한 길입니다.
화두 참선은 그것이 우리를 우리 마음의 길 끝까지 데려다주는 강력한 명상법입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이 순간을 생각으로서가 아니라 직접 경험케 해줍니다.
말하자면 공안은 그 본체를 알아내게 하는 테크닉과도 같은 것입니다. 공안이란 우리의 본래 자리, 바로 본체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우리의 본체는 무엇인가? Just do it! 오직 할 뿐! 바로 이것이 당신의 본체입니다.

고통은 어디에서 오는가
“왜 내가 고통스럽나”라는 질문에는 아주 간단한 답이 있습니다. 즉 “너는 무엇을 원하는가?”입니다. 지금은 돌아가신 태국의 명상스승 아짠 차는 수도원 땅을 종종 걸어다니셨는데, 만나는 모든 비구들에게 “오늘 고통스럽나?”하고 묻곤 하셨습니다. 비구가 “네”하고 대답하면 아짠 차는 “오, 자네는 오늘 바라는 게 많은 게 틀림없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욕망과 분노의 본성을 명확히 이해하면 거기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인과를 명확히 알라는 뜻입니다.

선수행을 하는데 책 읽는 것을 경계하는 데 이유는 무엇인가
책은 오직 말로 해석해 놓은 것입니다. 이것은 당신이 수영에 대해 말로 설명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팔을 앞으로 흔들고 뒤로 흔들며 다리를 위 아래로 흔들어라.” 이처럼 수영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첨벙! 하고 물에 뛰어 들어가 몸에 물을 적시라.” 이것이 더욱 좋습니다.
스님께서는 처음부터 아예 책을 읽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 동안 책은 충분히 읽었을 테니 읽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자기를 발견해가는 데는 5분 참선이 100권의 책을 읽는 것보다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요즈음은 참선공부하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책을 읽습니다. 중국의 임제, 조주, 운문 선사들의 어록도 그렇지만 특히 한국의 선사들 원효 대사가 해골물을 마신 이야기나 만공 스님, 경허 스님, 서산 대사의 일화는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회복시켜주는 좋은 스토리로 가슴으로 그냥 와 닿는 이야기들입니다. 재미있게 읽다보면 마음의 의문에 대한 방향을 제시받기도 합니다.

불교 수행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고, 수행방법에 대해서도 이러니 저러니 말들도 많은데…
중국 사람들과 한국 일본 사람들은 수저로 밥을 먹고 인도사람들은 손으로 먹고, 미국이나 서양인들은 포크나 나이프를 주로 사용해서 식사를 합니다. 먹는 법은 다 다르다 해도 뱃속에 들어가 소화되는 것은 다 마찬가지입니다.
불교수행법이 다양하다고 하더라도 딱 하나를 선택해서 바로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머뭇거리거나 기웃거리기에는 우리의 인생이 짧습니다.
나의 경우에는 대승불교의 선불교가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다행이 자비롭고 너무나 분명한 스승 숭산 스님을 만나 지도를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 무엇보다 행운이었습니다. 그런데 스님의 가르침은 지나칠 정도로 단순하고 분명해서 보통사람들은 오히려 못 알아듣는 경우도 있습니다.

왜 출가를 했는가
출가 수행자, 그 자체가 특별한 것은 아닙니다. 일반인 누구도 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출가자는 100% 남을 도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족이 있다면 우선 가족을 돌봐야 할 것입니다.
나의 업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출가하기 전 마흔이 넘은 나이에도 나는 결혼에 대한 관심이 없었습니다. 보는 사람들마다 내가 전생에 스님이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과히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하지요. 지금 이 순간이 클리어하면 전체가 클리어한 것입니다. 지금의 순간은 다음 순간을 결정합니다.

숭산 스님의 가르침이 왜 세계화될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가
태어나기 전에 우리는 무엇인가? 나의 어머니는 일란성 쌍둥이였습니다. 그 말은 나의 어머니와 이모가 유전학적으로 똑같았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똑같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매우 달랐습니다.
나의 어머니에게는 남편 한 명과 두 명의 아이들이 있었지만 나의 이모는 남편은 여러 명이었지만 아이들은 없었습니다. 나의 어머니는 생애의 대부분을 가정을 돌보며 사셨지만 나의 이모는 전문직업인으로서 페미니스트 운동의 초기 주창자였습니다. 나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숭산 스님께 왜 그들이 똑같은 데서 출발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달랐는지 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아주 간단하게 대답하셨습니다. “생각!” 국가들도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똑같은 데서 출발하지만 아주 달라집니다. 때로 국가들끼리 이 서로 다른 점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싸움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우리 문하의 “오직 모를 뿐!”이란 가르침은 그런 것이 없습니다. 숭산 스님의 명확함과 천재성은 여기에서 드러납니다. 그는 어떤 의견이나 종교나 문화를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오직 모를 뿐”은 세계 어디에도 갈 수 있고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의 본래 자비로운 본성을 깨닫도록 도와줍니다. 우리가 계속 “오직 모를 뿐”이란 마음을 견지한다면 우리는 다르지만 모두 똑같은 쌍둥이들입니다.

요즘 큰스님께서 건강이 좋지 않으시다고 들었다. 이에 대해 걱정들을 많이 하는데…
모든 사람은 다 죽습니다. 부처님도 돌아가시고 육조 대사도 돌아가시고 서산 대사도 돌아가시고 우리 스님도 언젠가는 돌아가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본래면목은 마음에 의해 흔들리지 않습니다.
원래 선원은 내 안에 있는 것이지 내 바깥쪽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참 나는 가고 오고, 오고 가고 하는 것에 걸리지 않습니다. 스님께서는 항상 “한 사람이 강하면 선 센터 전체가 강해진다. 한 사람이 약하면 모든 선 센터가 약해진다”.고 하셨습니다.
거침이 없고 너무나 행복해보이는 스님에게도 아직 의심이 남아있느냐는 우문(?)에 스님은 찻잔을 들어올리며 “이 차가 맛있죠?” 하며 빙그레 웃으신다.

Providence Zen Center
99 Pound Road
Cumberland, RI 02864 U. S. A
TEL : 401-658-1464
Fax : 401-658-1188
pzc@kwanumzen.org
홈페이지 주소 www.kwanumzen.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