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추억 만들기

지혜의 향기/ 고향

2007-10-05     관리자

누가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나는 주저 없이 얘기하는 곳이 있다. 태어나 12살 때까지 살았던 한 농촌마을, 말랭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어려서 할아버지께 글을 배우던 일과 어느 할아버지께 춤을 배우던 일, 친구들과 연날리기, 딱지치기, 구슬치기를 하며 놀던 일, 그리고 여름에 모내기에 참여했다가 거머리를 보고 물릴까 신경 쓰이던 일과 일꾼들에게 점심을 배달한 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미끄러져 떨어진 그릇들을 줍느라 애를 먹던 일들이 30여 년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기억이 새삼스럽다.
한 번은 친구가 가졌던 팽이가 얼마나 갖고 싶었던지 가지고 놀다가 집으로 가져와서는 주지 않으려고 떼를 부린 적이 있었다. 그 친구는 나이가 나보다 한 살 어렸지만 덩치가 컸기에 그 친구와 다투다보면 내 얼굴 곳곳에 상처가 남기 마련이었는데, 그런 친구의 팽이를 안 주겠다고 했으니 그 친구가 가만있었겠는가?
그 친구가 저녁이 되어 우리 집으로 찾아와서 팽이를 돌려달라고 하는데, 안 주겠다고 떼를 쓰다가 막내 삼촌이 좋은 팽이를 만들어 주겠다고 하는 바람에 친구의 팽이를 돌려줬던 것이다. 살면서 그런 재미있거나 때론 어처구니없는 추억이 없는 사람이 없겠지만 요즘같이 바쁜 시절에는 고향을 생각하며 그런 기억들을 떠올리기도 쉽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 여름방학 때 서울로 온 뒤 한 동네에 산 것이 20년이 넘어 그 곳은 나와 동생들에게는 제2의 고향이 됐다. 하지만 나의 삶은 어느덧 남보다 잘해야 한다는 경쟁원리 속에 길들여져 있었고, 꼭 그렇게 살아야 하느냐며 거부하는 몸부림 속에서 대학교 동아리 시절부터 공부한 불교는 현실을 회피하는 수단처럼 여겨지기 십상이었다.
그렇게 사는 데 힘이 들고 인생에 대해 고민할 때 고향 말랭이를 다녀오면 뭔가 원기를 회복하고 돌아오는 느낌이었다. 고향에는 산천과 친구들, 그리고 소중한 어릴 적 기억이 있었다. 하지만 언제든 나를 반가이 맞아주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할머니와 숙부, 숙모께서 안 계셨다면 고향이 늘 그렇게 든든한 힘이 돼 줄 수 있었을까?
요즘도 고향에 다녀올 때면 뭔가 마음을 다잡게 되지만 이제는 내 아이들이 커서 고향을 가슴에 새기는 나이가 되었다. 한 지역에서만 세 번째 이사를 하고 고층 아파트가 즐비한 대단지로 옮겨와 살다보니 예전에 내가 시골에서 가졌던 것과 같은 고향이 될까 하는 의구심이 들면서도 어렸을 때의 기억이란 그대로 소중하고 미래의 자양분이 될 것이란 생각을 해보면서 오늘도 나는 아이들의 고향 추억 만들기에 함께 나섰다.

김봉래 님은 1964년 평택 출생으로,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했으며 동국대에서 인도철학을 전공(석사)했다. 1990년 불교방송에 입사해 보도국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다. 조계종 국제포교사 품수를 받은 이래 1998년 국제포교사회 창설에 참여하고, 조계종 영문소식지 편집과 국제불교 관련 기고 등 국제포교 관련 활동에도 매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