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실 이사를 준비하며

보현행자의 목소리

2007-10-05     관리자

도서실에서 사서로 자원봉사한 지도 벌써 5년이나 된다.
책 속에 파묻혀 책이나 실컷 보고 싶은 마음에 지원했으나 사서라는 임무가 한가롭게 책을 볼 수 있는 시간을 허용하지는 않았다.
“도서실에서는 무슨 일을 하는 거예요?”
“책 빌려드리고 반납하시는 것 관리하는 거지요. 그런데 요즘은 대여를 못해드려요.”
왜냐고 묻는 질문에 컴퓨터 프로그램 바꾸는 작업을 하느라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아니 도서실 생긴 지가 7, 8년이나 됐는데 한 번도 안 와봤단 말야? 좀 무심하단 생각이 들었다. 하긴 합창단에서 활동하랴 봉사단에서 봉사하랴 사(寺)중의 크고 작은 일들을 솔선수범하고 동참하느라 짬이 나지 않았겠지.
책에는 많은 인생 경험과 실패와 성공의 명암이 녹아 있다. 다양한 경험이나 오랜 세월 동안 수고를 하지 않아도 글쓴 이의 체험을 읽기만 하면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많이 있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래서 우리 사서들은 불자가 아니라도 많은 분들이 도서실을 자주 방문해 주기를 원한다.
서고에는 수 천 권의 도서들이 선택되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 중 마음을 숙연하게 했던 것은 큰스님의 손 때가 묻었던 도서들이다. 두꺼운 표지들이 반들반들 윤이 났고 아함경이나 반야부 경전들은 글씨가 지워졌고 닳아 있었다.
말년에는 일어나 앉기도 힘이 드셨을 터인데 한 순간도 놓지 않고 정진하셨음을 알 수 있다. 대중을 일깨워 주고 이끌어주셨던 큰스님의 청정하고 인자하신 모습이 떠올라 경건한 마음으로 합장 반배를 하였다. 지금은 유품 기념실 전시를 위해 옮겨갔다.
구한말 강화도를 방문했던 어떤 불란서 선교사의 얘기가 생각난다. 집집마다 한지로 된 책을 아침 저녁으로 읽어 정신을 깨우치기 때문에 조선 민족은 함부로 침략할 수가 없다는 얘기를 본국에 돌아가서 전했다는 일화가 있다.
유·불·선의 사상은 우리 민족의 정신문화에 스며들어 반만년 역사의 줄기로 이어졌다는 것은 굳이 설명 하지 않아도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두문자를 만들었던 설총의 아버지 원효가 불교를 민중 속으로 끌어 왔기 때문에 신라의 백성들은 누구나 쉽게 정토사상을 접할 수 있었고 호국정신으로 훗날 통일신라를 이룩할 수 있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불교가 흥하면 나라가 부강하고 불교가 쇠퇴하면 부패와 당파싸움으로 나라가 망했다는 것을 배워서 알고 있다. 또한 선(禪)을 지향했던 절 집안의 가풍은 난세를 극복하고 인내와 끈기를 바탕으로 하는 국민성을 길러주었다.
근세 선풍을 진작시켜 주었던 경허, 한암, 만공 스님, 그 분들을 지금 우리들은 어디에서 볼 수 있으랴.
그 분들의 모습, 그 분들의 기이했던 행적들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우리의 핏줄 속에 그 분들의 정신이 살아 있고 우리와 함께 숨쉬고 있다.
벗이여, 같이 느끼고 같이 숨쉬고 같이 기뻐하지 않겠는가.
흔히 불교가 어렵다고 하고 책을 보면 골치 아프고 졸립다고 한다. 그러나 습관 들이기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초등학생들은 고학년이 되어도 우리 글도 제대로 모르고 중·고생이 되어도 편지 하나 제대로 못 쓴다.
한문으로 제 이름 하나 번듯하게 쓰는 대학생도 많지는 않은 모양이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어휘력도 부족하다. 이러다가는 우리 글, 우리말을 잊고 문맹국이 되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한다면 나의 지나친 기우일까?
우리말, 우리 글을 말하지도 쓰지도 못했던 그 시절이 반 백년 전 일인데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으며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것일까.
조잡하고 무분별한 문화가 걸러지지 않고 우리 생활에 흡수되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독서를 게을리 하는 데서 오는 병폐인 것 같다. 석촌호수가 바라다 보이는 길 가에 교육원이 들어선다. 도서실도 그리로 옮겨 간다. 몇 달을 새 프로그램 교체로 수고했던 사서 법우님들이 짐을 꾸리고 있다.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닦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한없는 격려와 찬탄을 보낸다.
묵언의 반야바라밀 그 자체다.
나무 마하반야바라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