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문답

특집/영가와 천도

2007-10-05     관리자

이 글의 본래 제목은 유명문답록(幽冥問答錄)으로 1945년경 제2의 포청천으로 명성을 드날렸던 명판관 여주(黎澍) 선생이라는 사람이 실제 살아서 저승에 가서 명부 재판관을 지냈다는 믿기 어려운 얘기이다. 우리가 간간이 들어왔던 저승에 대한 얘기를 명부에서 벌어지는 재판을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는 늘 평소에 자신이 저승의 재판관으로 다년간 있었고, 수면 중에 잠깐 명부(冥府)에 가서 그 옥안(獄案)들을 처리했노라고 말하곤 하였다. 그때 중국군의 참모장 임유양은 그와 매우 절친한 사이로 그러한 저승 이야기를 자주 듣곤 하였다.
그리하여 그 바쁜 와중에도 어느 날 하루 짬을 내어 본격적으로 임참모장이 그간의 경위를 직접 묻고 그에 대한 여주 선생의 구술(口述)을 손수 수록하여 저승문답이라는 한 권의 책이 이루어진 것이다.
불교의 윤회설은 차치하고서라도 인류의 영원한 스승인 공자도 그 주역(周易) 계사편에서 “역은 위로는 천문을 관찰하고 아래로 지리를 살피고 있다. 그러므로 이승과 저승의 일을 알며, 사물의 시초를 미루어 사물의 종말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죽고 사는 이치를 알 수 있으니, 정기(精氣)가 엉기어 모인 것이 생물이 되고, 변하여진 것이 영혼인 것이다. 그러므로 귀신의 실체와 정상을 알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고, 또 중용(中庸)에서 말하기를, “귀신의 덕됨이 왕성하기도 하구나.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고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지만 만물의 본체가 되어 있어 빠뜨릴 수가 없다.”라고 하였다. 우주 자연의 섭리가,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모난 것이 있으면 둥근 것이 있는 것이다. 이걸 미루어 생(生)과 멸(滅), 음(陰)과 양(陽), 유(幽)와 명(明), 인(人)과 귀(鬼)가 모두 상대적으로 넓혀져 존립하는 것이 사물의 당연한 이치인 것이다.
여기 글들이 전부 사실이라 확인할 수는 없지만 저승세계에 대해 조금 더 접근해 갈 수 있는 글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다시 한번 진지하게 되돌아 보게 하는 글이기도 하기에 이에 그 일부를 소개한다.

쭞선생이 지난 날, 일찍이 저승의 재판관이 되었었다 하셨는데 정말 그랬습니까?
그렇습니다. 세간 사람들이 이런 말을 들으면 모두 괴이하게 여길 터이지만 나로서 볼 것 같으면 그 일이 일상적인 일이어서 조금도 괴이하지 않았습니다.


쭞그것이 어느 때의 일이었습니까?
청나라 말 광서(光緖) 경자(庚子, 1900) 무렵의 일로서, 내 나이 열아홉 살 때의 일이었습니다.

쭞저승 재판관을 몇 년이나 맡았었습니까? 그리고 그 일은 매일 가서 처리했습니까? 또 어느 지방을 관할했었습니까?
전후 4~5년간을 했었고, 날마다 가서 했습니다. 관할구역은 화북(華北)의 다섯 성을 맡았었습니다.

쭞저승에서는 왜 선생을 재판관으로 삼았었는지요?
나 또한 일찍이 같은 사건을 맡아서 조사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또 수전세(數前世)에서도 저승판관을 했었습니다. 그 속세 인연의 끈으로 해서 다시 그 일을 맡았을 뿐입니다.

쭞선생이 맡아서 했던 일은 어떤 종류의 사건이었습니까?
내가 맡았던 일은 사람이 죽은 지 10개월 이내의 것으로, 사람이 생전에 지은 선행과 악의 사건을 맡아서 했습니다. 기한을 넘긴 일을 따로 맡아서 처리하는 주무자가 있었습니다.

쭞사람이 전에 하였던 선악의 행위를 귀신이 어떻게 다 알고 다 볼 수 있단 말입니까? 빠뜨리지 않고 다 기록되어 있습니까?
예. 귀신은 형체가 없는 것도 능히 다 볼 수 있고, 소리가 없는 것도 다 들을 수 있습니다. 인간 세계의 온갖 사상과 행위를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귀신은 스스로 다 알 수 있습니다. 그 기록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또 귀신은 사람의 머리 위의 붉고, 누렇고, 희고, 검은 빛깔을 보고서 그 사람의 행위와 생각의 선악을 다 알 수 있습니다.

쭞죄 지은 귀신도 또한 교활한 변명을 합니까?
예. 극히 많습니다. 죄 지은 귀신은 그가 지은 죄악에 대해서 역시 교활한 변명을 늘어놓습니다. 그러다가 그 죄의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면 그때서야 고개를 푹 떨어뜨리고 아무 말이 없습니다.
일찍이 한 귀신을 심판하는데, 그 사람이 생전에 겉으로는 위선적인 행위를 닦으면서 남 모르게 못된 짓을 다 했습니다. 그리하여 그 악행 범죄의 사실에 대해서 극력 부인을 하는데, 내가 보니까 그 사람의 죄악이 산처럼 쌓여 있었어요.
증거를 확실히 파헤쳐서 극형을 가하려 하는 찰나에, 그 귀신이 뜻밖에 금강경(金剛經)을 외우고 있어요. 그러니까 좌우 배심원들이 그 귀신의 머리 위에 붉은 빛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는 황급히 심판을 정지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나는 그 배심원들이 그 귀신한테서 뇌물을 받고 사정에 끌려서 그러는가 하고 이에 형을 더 무겁게 가하려 하니 그 귀신이 더욱 힘써 금강경을 외우는 것입니다. 좌우 배심원들이 나더러 “빨리 일어나서 삼가 공손히 서 있으십시오.”라고 하더군요.
내가 이르기를, “나는 공판정의 우두머리인데 어찌하여 범죄자를 향하여 공손히 서 있어야 하느냐?”고 했더니, 좌우 배심원들이 이르기를, “아닙니다. 이 귀신의 머리정수리에 불광(佛光)이 이미 나타났는데, 그런데도 그를 심판하면 부처님을 모독한 게 되니 심판을 정지한 것만 못합니다.”라 해요. 내가 그때 그들을 보니까 그들은 모두 일어서서 두손을 공손히 모으고 서 있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공경한지 극히 장엄해요.

쭞저승의 형벌의 종류는 얼마나 됩니까?
저승의 형벌의 종류는 매우 많습니다. 이 인간세상의 형벌에 비교하면 참혹하기가 백배나 됩니다. 만약 지금 사람들이 그걸 본다면 참혹한 형벌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나의 경력으로 보면, 인류가 차라리 인간 세상의 형벌을 받을지언정, 절대로 저승 법정에서는 형벌을 받지 말아야 합니다.
즉 이 세상에서는 형을 받고 형이 끝나면 그것으로 끝나지만 저승에서는 형이 끝난 뒤에도 또 다시 그 죄과에 따라 재형을 받습니다. 비유하자면, 이 세상에서는 열 사람을 죽였다면 그 죄는 한 번 죽는 것으로 끝나지만, 저승에서는 반드시 열 번의 형을 받습니다.
형이 끝나면 다시 생을 바꿔 태어난 십대의 생까지 살인죄의 사형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 형이 톱으로 자르고, 맷돌로 갈고, 칼 끝을 뾰쪽뾰쪽 세운 산 위를 맨발로 걸어서 오르게 하고, 기름 가마솥에 넣고 수레로 사지를 찢고 하는 등의 형이 실제로 있습니다. 죄의 응보는 참으로 두렵습니다. 이와 같으니까요.

쭞우리 범인은 하루 사이에 또는 일생 동안에 한 생각 일어났다가 한 생각 없어지는 것이 얼마인지 모릅니다. 또 선행을 한 것, 악행을 저지른 것을 바로 자기도 다 기억을 못합니다. 그러나 저승 법정에서는 사람들의 공과 죄를 아주 미세한 것까지도 죄다 기록되었다면 또 어찌 그 번거롭고 수고스러운 것이 이와 같음을 꺼리지 않을까요?
사람의 사상이란 게 마치 한 생각 일어났다가 한 생각 사라지고 갑자기 해놓고선 이내 잊어버리곤 하여 저 공중의 새 발자국 같고 물 위에 뜬 거품 같아서 저승에서도 역시 다 기재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만일 한 마음을 오로지 쏟아서 그 생각하고 생각하는 것이 떠나지 않으며 비록 나타나지 않은 행위일지라도 또한 공과 죄가 있으면 기록될 수 있습니다.
만약 그 생각이 행위로 이뤄진다면 그 공과 죄는 더욱 현저하게 나타납니다.

쭞크게 수행한 사람도 죽은 뒤에 역시 저승에 가서 재판을 받습니까?
저승 법정에서 관리하는 것은 모두 업(業) 안에 끌려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용록(庸碌)한 사람도 평범한 사람들로서 큰 선행도 없고 큰 악행도 없는 사람들을 관리합니다. 만약에 크게 수행한 사람은 죽은 뒤에 곧바로 천당〔天界〕에 올라가기 때문에 저승을 거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저승 명부에 이름이 없기 때문에 저승에서 심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 중 혹시 천당에 오르는 것이 조금 늦는 사람은 어쩌다가 저승을 거쳐가기도 하는 데, 이런 사람이 저승에 오면, 저승판관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내려서서 그를 맞이합니다. 그러면 그 혼백은 걸을 때마다 점점 높아져서 마치 구름사다리를 걷는 것 같습니다. 그가 저승 법정에 가까이 오면 그 높이가 법정 지붕의 용마루와 나란히 섭니다. 이러한 사람은 이름 점고가 끝나는 즉시 곧바로 천당에 오르기 때문에 잡아 매어 둘 수가 없습니다.

쭞사람이 처음 죽을 때 영혼이 육체를 떠날 적에 역시 고통이 있습니까?
사람이 죽을 때는 모두 질병이 있고, 영혼이 육체를 떠날 때는 마치 방문을 열고 외출하는 것 같아서 처음에는 곤란이 없습니다. 지금까지의 아프고 괴로운 고통을 되돌아보면 도리어 편안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가 처자식들을 불쌍히 여기고 또는 두고 온 재산에 미련을 두어 마음 속에 간직하고 숨이 떨어지지 못하면 영혼이 쉽게 육체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 때가 가장 고통스럽습니다. 만약 이 사람이 타고난 성품이 맑고 깨끗하여 욕심이 없고, 처자식과 재산에 대해서 또한 미련과 끌리는 욕심이 없다면, 영혼이 육체를 떠날 적에 곧바로 옷을 벗듯이 훌훌 떠나가는데, 조금도 힘을 허비하지 않습니다.

쭞스님들이 경을 외워 죽은 혼령을 천도하면 망인에게 결국 이익이 있습니까?
스님이 경을 외우면 망인에게 이익이 있는지 없는지를 특별히 일괄적으로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비유하자면 그 사람이 생전에 큰 선행을 하였으면 죽은 뒤에 곧바로 극락, 천계에 오르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본래 경 읽은 공덕이 필요가 없습니다.
그 사람이 생전에 크나큰 죄악을 저지른 사람이라면 죽은 뒤에 즉시 지옥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그 사람 역시 쉽게 이 경 읽은 공덕을 받아 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보통 사람에게 이르러서는 생전에 큰 선행도 악행도 없는 사람은 경을 읽어서 천도를 얻으면 어두운 지옥세계가 환하게 밝아져서 죄업이 경감되고 이익이 특별히 커집니다.
그리고 경을 외우는 사람의 도의 행적이 높고 낮음에 따라서 또한 막대한 관계가 있습니다.
만약 경을 외우는 사람이 도가 높은 고승이고 효자 현손과 관계가 있으면, 그 경 한 권을 외우는 것이 보통 스님이 외우는 것보다 열 배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어떤 평범한 스님이라도 경을 지극 정성으로 외우면 또한 상당한 이익이 있습니다.
또 송경(誦經)의 가장 좋은 효과는 망인의 7일, 49일 이내가 좋고, 이 기간을 지나면 망인이 지은 업에 따라 이미 다른 데에 생을 바꿔 태어나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공덕이 돌아가서 죽은 자는 바로 받을 수가 없습니다.
쭞선생은 그 뒤에 어찌하여 저승판관 노릇을 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원하지 않은 지가 오래 되었고, 여러 차례에 걸쳐 휴직하기를 빌었지만 번번이 모두 허락을 받지 못했었는데 그 뒤에 동사자들이 금강경(金剛經)을 많이 외우도록 가르쳐 주어서 그 법대로 시행했더니 그 공덕이 쌓여 2천 번 이상이 찼기 때문에 드디어 다시는 가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쭞저승에서도 염불하면서 수행하는 자가 있습니까? 염불을 하고 송경(誦經)을 한 사람은 이미 이런 공덕이 있는데, 저승의 모든 귀신들이 어찌 빨리 염불 송경을 하여 지옥에서 벗어나서 극락, 천당으로 오르기를 구하지 않습니까? 만약에 염불을 할 줄 모른다면 어찌 다른 사람의 염불하는 것을 따라서 본받지 않는지요?
한 번 저승에 도착하면 바로 그의 업력(業力)에 가로막혀서 자연 그 염불하고 송경할 줄을 모릅니다. 즉 우리가 염불하고 송경을 하면 저들도 보고 들은 바가 없기 때문에 수행은 마땅히 이 한 입기운이 끊어지기 전에 해야지 한 번 숨이 끊어지면 힘이 되기가 어렵습니다.

쭞귀신은 이미 형체가 없는 것(無形)을 볼 수가 있고 소리가 없는 것을 들을 수가 있다고 하였는데 어찌 우리들의 염불 수행하는 것은 도리어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것입니까?
자기의 업력에 가리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시험삼아 비교하여 봅시다. 세간의 어떤 사람이 본래 신앙이 없었는데 어쩌다가 굶주리고 추위에 핍박되어서 우리들의 염불수행에 대하면 역시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하여 곧 그로 하여금 우연히 보고 듣게 하면 그 사람의 욕심에 끌리고 얽매여서 그 신심(信心)이 일어나지 않고, 또 신심이 견고하지 않아서 마침내 수행하지도 않고 염불하지도 않습니다. 저 귀신들이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