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괜찮은 직장?

푸른 목소리

2007-10-05     관리자

어릴 때 이불을 뒤집어쓰고 보던 전설의 고향에서 보면 절은 귀신이 나오는 곳으로 비쳐졌다.
구미호나 귀신과 같이 나오는 고승들도 어느새 무서운 존재가 되어 무속인(무당)과 동일시되던 어릴 적 추억이 있다.
그러다 삶과 인생을 고민하던 고2 사춘기에 교회를 무척이나 열심히 다녔던 기억이 난다. 그러면서 우연히 가게 된 절에서 풍경소리와 목탁소리, 부처님의 상호에서 편안함을 느끼며 어느새 불교라는 새로움과 편안함으로 교회보다는 절이 참 나에게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한 불교와의 인연이 어느새 20년이 가까워지고 그 시간 속에서 이름도 낯선 해남이라는 지역과 대흥사라는 절에서 기획과장으로 3년째 살고 있다.
고등학교 학생회에서,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에서 보내진 청춘의 기억은 부처님의 삶에서 나의 길을 바라보고 삶 자체가 되어감이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결혼과 더불어 6년의 시간을 불교 신행활동 정도만 하다가 가정과 나의 삶을 함께 이어갈 수 있는 곳을 찾게 되었고 그곳이 이곳 해남 대흥사가 되었다. 맡게 된 소임이 기획과장이었다.
대흥사 부설 해남불교대학의 교학과장도 나의 또 다른 공식 직함이다. 참으로 복도 많아서 직함도 여러 가지고 일도 여러 가지를 한다.
해남불교대학은 대학과 대학원 체계로 학장스님의 지칠 줄 모르는 원력으로 대흥사가 해남지역에서 성공적으로 포교와 조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가도록 하고 있다.
올해로 5년차이며 재학생과 졸업생이 500여 명이 되는 조직으로 성장한 것이다.
해(年)수로 3년 전에 업무 인수를 받아 입학식, 성지순례, 철야정진 수계 법회, 등반대회, 부처님오신 날 불우이웃돕기 행사, 사은회, 졸업여행 등의 행사를 매년 준비하고 또 실행해 왔다.
또한 포교사 대비반 운영, 졸업생들을 위한 한문 경전반 운영을 하여 지속적으로 학생들과의 상호 유대관계 유지를 위한 업무, 신입생 유치를 위한 활동 등 해남불교대학으로 중심을 모으기 위해 일을 펼치고 있다.
정규적인 화·수·금요일의 야간 수업 때문에 밤 10시에나 집에 들어간다.
아마 전국적으로 불교대학의 업무를 1명의 직원이 맡아 보고 있는 데도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해남의 현실이고 그것만으로 업무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나의 공식 명함의 또 한 가지인 기획과장은 대흥사의 종무 행정 이외의 행사와 기획이 필요한 일을 하는 업무이고 수련회를 총괄하는 역할을 한다. 부처님오신 날이나 서산대사 탄신법회, 초의문화제, 신도회와의 관계 등 관련 업무도 기획과장의 몫이다.
대흥사의 수련회는 여름수련회, 겨울수련회, 새벽숲길이라는 주말수련회가 있다. 지금은 사찰 사정상 주말수련회가 쉬고 있지만 조만간에 다시 시작될 것이다.
해남에 내려온 후 새롭게 기획된 것이 많은데 겨울참선수련회 실시, 어린이 한문학당의 실시, ‘주말수련회 새벽숲길’은 대단한 인기를 누려온 프로그램이다.
수련원장스님의 장기적이고 치밀한 구상이 실무적으로 맞추어져가며 하나씩 완성되어진 것이다. 하지만 주말수련회는 격주로 금·토·일요일을 전적으로 매달려야 하며 여름과 겨울 수련회 기간 중에는 준비와 진행 때문에 거의 새벽부터 밤까지 일을 보아야한다.
불교대학과 사찰의 행사 그리고 수련회로 거의 날마다 밤늦게까지 일을 하는 게 다반사이다. 지금 불교 일을 하는 사람들 중에 중앙의 몇몇 곳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열악한 환경에서 부처님에게 향한 마음 하나로 버텨오고 있을 것이고 나 또한 그런 실정이다.
대학 불교학생회 활동을 해본 경험이 있지만 지금 많은 후배들이 불교계에서 자신의 일을 찾고 있으며 그것을 충족해주지 못하는 것이 우리 불교계의 현실이고 설령 일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희생을 강요하는 전근대적인 체계에서 직업으로서 지낼 수 있는 조건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한 문제는 나를 비껴가지 않을지라도 아직은 대흥사 부처님이 포근하고 땅 끝 해남의 산세가 아름답고 산사(山寺) 대흥사가 펼치는 사업이 부처님 일을 만들어간다는 믿음으로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다. 대흥사로 들어오는 10리 숲길을 지나 출근을 하며 포근한 두륜산 능선이 감싸안은 대웅전을 바라보고 무염지의 수련이 청초하게 피어오르는 모습을 보며 하루를 시작한다.
이 정도면 꽤 괜찮은 직장이지 않을까?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