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기일(忌日)

2005-06-23     관리자

[어머니의 기일(忌日)]



오늘은 어머니의 두 번째 기일입니다.
절에서 제사를 모시는 터라 저는 가지 못하고,
아침에 병원에서 나름대로 어머니를 위해
광덕큰스님이 가르쳐 주신 가정제례의식과,
평소에 어머니께서 좋아하시던
천수경, 금강경, 그리고 보현행원품을 독경해 드렸습니다.


지금쯤은 사시(아침 10 시)에 시작한 제사도 끝났을 터이라,
한가히 앉아 어머님을 생각해 봅니다.



어머니는 저를 세수 40 이 가까워서야(39) 낳으셨습니다.
그래서인지 제 기억에 있는 어머니의 모습은
50 대 중년 이후의 모습이 가장 젊으실 때 모습니다.
무심한 아들들이 대개 그렇듯,
저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미인(美人)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그것은 흔히 보이는 아들들의 어머니 관(觀) 외에도,
젊은 어머니의 모습이 제 기억엔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참 미인이셨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어머니 가신 후 일주기(一週忌)를 즈음해서
기념 책("칠보 연못에 꽃향기 되어", 도서출판 건아사)을 발간할 때였습니다.



어머니 사진이 있으면 싣자는 출판사의 말에 없는 사진을 찾다가
문득 40 대 때 지리산 화엄사 각황전(覺皇殿) 앞에서 찍은 사진을 보게 되었는데,
그 사진의 어머니는 참으로 화사하신,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40 대 미인이셨습니다.



16 세 때 3 살 많은 어머니와 결혼하신 아버님은, 그 당시 조선 청년들이 그러하듯,
결혼하면 하고 싶은 공부를 못 한다시며 이른 결혼이 싫어
결혼 당일 도망가다 어른들께 잡혀 할수없이 어머니와 혼례를 치르셨다고 합니다.
그런 아버님이신데 왜 어머니와 살게 되셨느냐 제가 장난스레 여쭈면
아버님은 늘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그래 식만 올리고 또 도망가려고 안 그랬나?
그런데, 혼례 치를 때 신랑 신부 인사를 하는데,
그 때 신부 얼굴을 살짝 봤는데,
너거('너의'란 말의 경상도 사투리) 엄마가 너무 이쁘더란 말이다!
그래서 그만 살게 되었지..."


이 말씀을 마친 아버님은, 그 때가 생각나시는지 언제나 크게 웃으셨습니다.
그럴 때면 어머니는 당신 참 별 소리를 다 하시오 라며,
늘 수줍은 웃음을 지으셨습니다.
저는 그 말씀이 거짓이 아님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야 알게 된 것입니다.


어머니가 제게 늘 긍정적으로만 보이신 것은 결코 아닙니다.
나이 들어 철이 들기 전까지,
저는 항상 자식과 남편만을 생각하시는 어머니가 너무 싫었습니다.
그래서 불효도 굉장히 많이 저질렀습니다.


부처님 법을 만나고 철이 조금이나마 든 후에야,
어머니의 그 모진 삶이 당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저희들을 위한 것이었음을 겨우 알았지만,
허물은 모두 당신의 몫으로 돌리고 당신의 삶에 당신은 일체 없이,
오직 남편과 자식의 영광을 위해 사신 삶임을 그제서야 알았지만,
그래서 늦게나마 감사하고 나름대로 성심껏 모시려 했지만,
어머니는 제 효도를 충분히 받아 보시지도 못하시고 그만 떠나시고 말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어머니는 늘 제 편이셨습니다.
바다가 마르고 천지가 무너진다 해도,
이 세상에서 영원히 변치 않고 제 곁에 서서
언제까지나 저를 옹호하실 분이 바로 어머님이셨습니다.


만 사람이 저 놈 나쁜 놈이다, 저 놈 죽여라 하고 욕하고 나무란다 하더라도
언제나 제 편이 되어 저를 감싸주고 저를 위해 대신 고통을 받으실 분,
이 세상 유일하게 언제 어느 경우나 제 편이 되어 주실 분,
그 분이 바로 어머니이셨던 것입니다.


지금도 길을 걷거나 삶에 힘들 때,
늘 저를 흐뭇한 미소 머금으시며 보시던 어머니의 자비하신 모습이 떠오릅니다.
비록 그 방법이 제 뜻과 같지 않았지만, 그래서 제가 너무도 많은 불효를 했지만,
언제나 제게 힘을 주시고 제 편이 되어 주시던 어머니.
그 어머니는, 지금 가고 아니 계십니다.



그러나 삶이 공(空)하면 죽음도 공하며,
만남이 무상(無常)하면 이별도 무상한 법.
우리는 이런 부모와 자식의 인연을,
우주가 탄생한 이래 얼마나 많은 시공(時空) 속을 만나고 헤어지고 했겠습니까!


오직 오지고 않고 가지도 않는(不來不去),
그리고 생기지도 멸하지도 않는(不生不滅)
이 우주의 장엄한 진리 앞에,
오늘의 이별도 반드시 내일의 만남이 되는 법.



저 역시 아직은 많이 모자라고 부족하지만,
아이들 앞에 그래도 조금이나마 덜 부끄러운 부모의 길을
힘들지만 걸어가렵니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시아본사아미타불




普賢合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