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의 뿔처럼…

푸른 목소리

2007-10-04     관리자

월드컵 이 열리던 2002년. 봄이 시작된다는 입춘 날 서울에서 이 곳 충주의 폐교로 이사를 왔다. 무작정 내려와야겠다는 바쁜 마음에 이사를 오기는 했지만 무엇 하나 제대로 갖추어진 것은 없었다. 전기도 수도도 심지어는 보일러까지 어느 것 하나 작동되는 것은 없었지만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8년 전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불교적 교육에 관심이 많았던 스님들과 법사 그리고 교육 현장에서의 교사, 청소년 지도사자 등 몇 몇 사람들이 뜻깊은 모임을 갖게 되었다.
서울에 있던 선재마을 청소년법당에 모여 밤을 지새우며 우리들이 걱정했던 것은 ‘어떤 교육이 청소년들에게 바른 교육이 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이 문제는 모임 초기부터 가장 큰 화두였다. 근처 망우리 공동묘지의 만해 스님과 소파 방정환 선생의 묘를 참배하면서 우리들은 결론을 내렸다. 부처님의 팔정도와 중도의 가르침 속에서 ‘깨침’과 ‘나눔’의 교육이 절실하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모임이 ‘선재연구모임’이다.
“청소년이 밝고 당당하게 자라기 위해서는 ‘깨침의 교육’이 절실함을 공감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그 역량을 모아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 개발, 정리하여 보급하는 일을 한다.”
이 짧은 몇 줄의 글은 그 때 밤 새워 고민하던 우리들의 생각이 그대로 담겨져 있어 8년이 지난 지금에도 선재연구모임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8년간을 뒤돌아보면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불교계 처음으로 청소년을 위한 문화 포교지인 ‘선재들의 속삭임’을 만들었고, 불교계 처음으로 ‘불교 청소년 인터넷 방송을 개국했으며, 교계 처음으로 청소년 지도자 연수를 실시하고, 교계 처음으로 법회 지도자를 위한 법회 지침서 ‘선재’가 발행되었다.
어찌 보면 불교계에서 처음으로 이런 일들을 했다는 것이 가슴 뿌듯한 일일 수도 있었겠지만, 한편으로는 어린이, 청소년 부분에 불교계가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선재연구모임은 모든 일을 종단의 도움 없이 이루어 나갔다. 어떤 사람들은 왜 그렇게 힘들게 일을 하느냐, 종단의 도움을 받아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말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 또한 깊은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의 안타까움일 뿐이다.
어찌 보면 선재연구모임이 아직까지 처음의 마음을 유지하고 지금까지 유지해 올 수 있었던 것은 종단의 도움에 기대지 않고 자생할 수 있는 힘을 스스로 길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모임 초기에는 안타까운 마음에 종단에 건의를 해 보기도 했지만 종단 입장으로는 청소년과 관련되는 일은 청소년 단체 ‘파라미타’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입장만을 되풀이해서 들어야 했다. 그래서 불교 청소년 육성을 위해 만들어진 단체가 오히려 더 많은 발전 가능성의 기회를 가로막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속삭임은 3만 부를 발행하며 불자들의 후원을 받아 청소년들에게 무가지로 배포하였다. 힘들게 발행되던 ‘속삭임’이 결국 몇 달 전 더 이상의 재정난을 이기지 못하고 50호를 마지막으로 발행이 중단되고 말았다.
폐간은 아니라고 스스로들 자위하지만 언제 다시 복간(復刊)되리라는 보장도 없는 실정이다. 청소년 지도자 지침서 ‘선재’ 또한 언제일지 모르는 복간을 기다리고 있다.
아직도 가끔 월간 ‘선재’와 ‘속삭임’을 보내 줄 수 없느냐는 전화를 받는다. ‘발행이 중단되었다’는 말을 해야 할 때마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를 슬프게 한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에게 왜 일을 자꾸 만드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우리들의 생각은 누군가는 시작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 때문에 누구의 말처럼 투쟁하듯 이 일을 하고 있다.
이러한 일들을 우리가 먼저 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다. 오히려 남이 하지 않는 일을 내가 하고 내가 하지 못하는 일을 격려해 주는 것이 더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종단에 건의하여 어린이 교사 불교대학이 문을 연 일이 있었다. 결국은 1년 만에 문을 내리고 말았지만 지금까지도 많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1년 만에 문을 내린 이유는 간단하다. 호응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이고, 재정적 후원이 힘들다는 이유였다.
미래 불교의 발전을 위해 종단 차원에서 1년에 1,000만 원 정도의 재정적 지원을 할 수 없으며, 또한 그 가치를 인정할 수 없다면 누가 믿을 것인가? 앞으로 어느 누가 몸과 마음을 다해 어린이, 청소년 포교에 앞장서겠는가를 묻고 싶다.
그래도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좋은 세상이 오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지금은 예전에 비해서는 많이 나아지고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좀더 거시적인 안목을 가지고 일관성 있게 추진해 나가는 어떤 힘을 더 많이 필요로 한다.
대불련이나 재가, 청년단체 주변에서 유능한 젊은 인력들이 하나 둘씩 불교계의 일을 등지고 떠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외형적으로 커져 가는 불교계 현실로 보면 분명 돌이킬 수 없는 크나큰 내적 손실이다.
지금 당장 드러나는 것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외형적 불사만 이루어지고, 인재(人材) 불사는 하지 않는다면 불교의 앞날은 크게 기대할 수 없다. 인재 불사를 제쳐놓고 불교의 미래를 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당장 보이는 결과만을 논한다면 1, 2층 없이 지으려는 3층 누각일 수밖에 없다. 작은 과실수 묘목이 금방 큰 나무로 자라나 열매를 맺기 바란다면 이 또한 어리석은 생각이 아닐 수 없다. 눈에 보이는 계산만으로 생각한다면 이 시대의 불교가 장사꾼들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사자는 자신의 몸 속 벌레에게 먹히고 만다는 이야기처럼 우리 불교계 또한 스스로 제 살을 파먹는 일 또한 없어야 한다.
이제 충주로 이사를 온지 2년째를 맞고 있다. 학교 이름도 ‘선재학교’라는 이름을 붙였다.
아직도 갖추지 못한 것이 더 많지만 이제는 조급함은 없다.
무소의 뿔처럼… 선재연구모임은 또 다시 ‘큰 선재학교’가 아닌 ‘작은 선재학교’로 서두르지 않으며, 항상 뜻을 맑게 갖도록 바른 노력을 하고있다.
오늘도 과실수 묘목이 잘 자라도록 거름도 주고 물을 주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