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고 하는 것

초대설법/ 우 자나카 스님

2007-10-04     관리자

우리는 힌두교도는 아니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기 때문에 그렇게 강한 의미는 아니더라도 영혼에 대한 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론적으로 우리는 영혼이나 자아가 없다는 것 또는 영원한 실체가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지만, 어떤 사람이 죽을 때 그의 영혼이 몸 밖으로 빠져 나와서 그의 집이나 자신의 시신이나 관 주위에 머무르고 있다고 믿습니다.
만일 스님들에게 공양을 하지 않고 죽은 이와 우리의 선행을 나누지 않는다면, 그 영혼은 우리 주위에서 살게 될 것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는 믿음입니다.
비록 우리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이러한 아견의 관념을 가지고 있고, 이 관념을 바탕으로 인격, 개체, 존재, 남자, 여자 등과 같은 또 다른 관념인 자신견[自身見, 또는 有身見. 여기에서 자신(自身, sakkaya)은 정신적·육체적 현상인 명색(名色, nama-rupa)을 의미하고 견(見, ditthi)은 잘못된 또는 틀린 견해를 의미합니다.]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는 몸-마음의 과정에 대한 독특하고 일반적인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러한 관념을 갖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정신적·육체적 과정들을 영원한 것이라고 간주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스스로 ‘내가 내일 죽을 것인가?’라고 자문해 본다면, 그 질문에 감히 대답하지 못할 것입니다. 만일에 내가 여러분에게 “당신은 내일 죽을 것이오.”라고 말한다면, 여러분은 나에게 화를 낼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정신적·육체적 과정이 영원하다고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자신들의 마음-몸의 과정이 영원하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은 정신적·육체적 현상의 과정의 생성과 소멸을 자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 생각을 고집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정신적·육체적 현상의 끊임없고 순간적인 생성과 소멸을 본다면, 여러분은 그것들이 영원하다고 믿지 않을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서 어떠한 정신적·육체적 과정도 단 1초 동안도 지속되는 것은 하나도 없음을 이해하고 있지만, 실제로 여러분은 그것들의 무상한 본질을 자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사실을 믿지 않습니다.
오직 여러분이 법에 대한 개인적인 체험이 있을 때만, 여러분은 그것이 무상하다고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그 때 여러분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받아들입니다.
“나는 내일까지 살아 있지 않을지도 몰라. 바로 이 순간 죽을지도 모르지. 왜냐하면 모든 현상은 무상하니까.”
실제로 사람들이 정신적·육체적 현상의 생성과 소멸을 자각하지 못할 때, 그는 이 현상들을 영원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개체에 대한 관념은 우리 내부의 영원한 실체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아견과 자신견은 동일합니다.
만일 우리가 “자, 이제 나는 나의 손을 들어올리려 한다.”라고 말한다면, 여러분들은 “나에게 누가 손을 들어올리는가?”라고 질문할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내가 손을 들어올린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 ‘나’라고 하는 것은 누구입니까? 한 비구입니까, 한 남자입니까, 살아 있는 어떤 존재입니까?
만일 우리가 정신적·육체적 과정의 영원한 본질에 대해서 믿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것들을 (개체적인) 존재로 간주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정신적·육체적인 두 과정은 변하기 쉽고 생겨났다가는 사라져버리는 것들인데, 우리는 그 사실을 자각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이 두 과정을 인간, 존재, 개 또는 동물이라고 간주하고 있습니다. 이 견해가 자신견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 마음과 몸의 과정을 그 참된 본질에서 바르게 이해할 수 없다면, 우리는 이 잘못된 견해를 극복하거나 깨뜨리지 못할 것입니다.
마음과 몸의 모든 행위 또는 모든 정신적·육체적 과정을 실제로 있는 그대로 마음 챙겨 알아차려야, 우리가 이 두 가지 과정을 자연스런 과정으로 자각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친 이유가 이것입니다. 이 꿰뚫어 보는 앎을 고유한 특성[自性相, Sabhava-lakkhana]에 대한 앎(정신적·육체적 현상의 독특한 특성 또는 개별적인 특성에 대한 바른 이해)이라고 합니다.
이 꿰뚫어 보는 앎은 탐욕, 성냄, 어리석음, 아만 등과 같은 번뇌들의 주요한 원인인 영혼이나 자아, 인간이나 존재에 대한 관념을 부수어 버립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영혼이나 자아에 대한 관념이 모든 번뇌의 씨앗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씨앗을 제거해버리면 어떤 번뇌도 생기지 않을 것이며, 우리는 괴로움을 없애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자신견을 없애기 위해, 비구는 마음을 챙기고 편력하라(sakkaya-ditthi pahanaya sato bhikkhu paribbaje).”고 설한 이유입니다.
‘자신견을 없애기 위해(sakkaya-ditthi pahanaya)’라는 말은 영혼, 자아 또는 사람에 대한 잘못된 견해를 극복한다는 의미입니다.
싸또(sato)는 마음챙김의 뜻이고, 비구는 수행승입니다. 현상에 마음 챙기고 있는 비구는 잘못된 견해를 극복하기 위한 수행에 전력해야 합니다.
그가 이 자신견을 깨뜨릴 수 있을 때, 그는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날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이 자신견은 모든 종류의 번뇌의 원인, 모든 번뇌의 씨앗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마음챙김 수행에 의해서, 정신적·육체적 과정에 대한 바른 이해를 통해 이 자신견을 없애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열심히 이 마음챙김 수행을 닦아서 괴로움의 소멸을 이루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