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교실] 건강, 집착과 외면

2007-10-04     관리자

최근 식탁 위의 녹색혁명이라고 불려진 자연식 열풍은 현대의학으로 치료되지 않은 질병을 앓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관심을 불러왔다. 그 동안 ‘밥은 입에 맞는 것으로 한 끼니를 때우면 되는 게 아니냐’라고 하며 식생활에 대해굳이 머리 아프게 알려 하지 않았다.
이런 생각의 저변에는 이제 많은 사람들이 먹는 것 때문에 고통스러웠던 배고픈 시절은 지났다는 풍요로운 생활에 대한 자족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내 몸을 만드는 재료가 되고 내 몸을 움직이게 해주는 연료인 식생활에 대한 우리의 자세가 무관심과 외면으로 일관해 왔던 것은 먹는 것은 개인적으로 알아서 할 문제이고, 개인의 문제를 들먹이는 것은 사생활의 침해 정도로 이해하거나 먹을 것을 가리는 것은 좀스러운 범부의 행동처럼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급증하고 있는 만성, 난치성 질환의 가장 주요한 원인이 환경의 파괴와 식품의 가공 기술의 발달, 전통적 식생활의 붕괴때문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먹고 사는 문제가 더 이상 개인적인 것이 아니며 우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일이 라는 인식이 확산된 것은 아주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또 다른 극단을 오고 간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는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노령화 시대에 들어서면서 건강에 관한 관심은 날로 커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현대인이 앓고 있는 질병들이 못 먹고 없이 살았던 시절의 급성적인 세균에 의한 감염성 질환이 아니고 오랜 시간 동안 잘못된 생활습관에 의한 ‘생활습관병’이라는 것은 질병의 연소화를 부추겼고 남녀 노소를 막론하고 건강에 관한 관심을 사회 전체에 확산시키게 되었다.
더구나 아이들에게 아토피성 피부염이나 천식과 비염 등 낫지 않는 질환들이 급증하기 시작하면서 질병이 성장 시기와 맞물려 있다는 아이들의 특성상 부모들의 식생활과 영양에 대한 관심은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엄마들도 하고 싶지 않은 현미 잡곡밥과 채식 위주의 식사로 대변되는 자연식을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숙제가 되고 만 것이다. 자연식이 건강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나 방법 정도로 이해되고 있다.
자연식이라 하면 제대로 된 먹을 거리를, 되도록 자연에 가까운 상태로, 있는 그대로 먹자는 것이다. 현대인은 옷도, 머리도, 인테리어도 인위적인 것보다 자연스러운 것을 더 좋아하지만 인위적인 음식, 음식의 가공에 대해서는 먹는 것의 즐거움과 편리함을 이유로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자연적이라고 하는 것은 자체의 생명력이 있어 생성과 발전을 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즉 변화와 관계를 맺어가는 만물의 이치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적인 것이 좋다는 것은 만물의 이치를 인정하겠다는 것이고 있는 그대로의 상태가 좋다는 것이다. 자연식이 우리에게 필요하고 좋은 것은 우리의 삶을 있는 그대로, 인간의 생명력의 성장과 발전을 돕기 위해 해야 할 첫 과제이기 때문이다.
괴로움의 원천이 무명(無明)에 있듯 건강하지 못해서, 질병이 있어서 괴로운 이유 또한 몸과 음식과 질병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모든 만물이 수단이 될 수 없듯 자연식이라는 것이 건강이라는 욕심을 채우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건강하고자 하는 마음마저 내려놓지 못한다면 자연식은 한 때의 유행으로 끝나버릴 것이고 우리는 영원히 건강을 장담하는 의사나 약이나 무슨 무슨 요법들을 찾아 다니게 될 것이다.
현대인의 자신의 완전한 삶에 대한 욕심은 건강한 몸과 마음을 이루고자 하는 노력 가운에서도 양 극단을 오가고 있다. 한 쪽에서는 철저한 외면과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한 쪽에서는 지나친 유난스러움과 이것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유기농을 찾고 자연식을 찾는다. 무관심해지는 것도 우리가 제대로 잘 몰라서 그런 거라면, 알고도 매달리게 되는 것은 집착하여 진리가 안 보이는 것과 같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안 들리는 이유는 나라는 집착과 욕심에서 비롯되는 것처럼,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우리가 가장 모르고 살아가는 것처럼, 현미경으로 세포를 보면 세포 안의 물질과 움직임 정도는 보일지 몰라도 몸이라고 하는 전체를 볼 수 없듯이, 숲 속에 있으면 나무만 보이고 그 숲이 얼마나 근사한지 모르는 것처럼 우리는 지금 현재에 자신이 알고 있는 건강에 관한 정보와 지식이 전부라는 생각으로 오히려 궁극적인 건강을 통한 행복과 평화로움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현대인의 질병을 생활습관병이라고 한다. 생활습관이 가장 큰 질병의 원인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는 질병을 진단 받는 순간 병이라고 하는 것이 하루아침에 찾아온 것처럼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병을 원망하게 된다. 열심히 살았는데, 살 만해졌는데 이게 웬말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원망과 후회가 생기는 일도, 건강에 대해 두려움과 걱정이 생기는 일도 진리에 대한 무지와 내가 현재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인생의 모든 일이 인연 따라 일어나듯 질병도 반드시 지난 나의 삶 속에 질병을 일으킬 수 밖에 없는 인연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어설픈 미래 지향적인 삶 속에 모든 생각이 바깥을 향해 정신없이 살다 보니 내 몸에 병의 싹이 자라고 있는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어느 날 불쑥 이유 없이 운 나쁘게 찾아온 것처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질병은 내가 살아온 삶의 결과이다. 현대인의 질병을 생활습관병이라고 한다면 잘못된 생활습관이라는 원인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질병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인연과보의 법칙을 이해한다면 결과에 대해 원망할 이유가 없다.
다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참회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질병을 통해 반성하라고 했다. 질병이 생활습관의 결과라면 나의 습관을 반성하는 것이 순서인 것이다. 그 다음으로 질병에 감사하라고 했다. 질병이라고 하는 것은 더 이상 이대로 방치하면 큰 위험에 빠지므로 지금부터라도 조심하라고 말해주는 친절한 메시지이다.
우리 몸은 살려고 하지 죽으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 몸이 보내주는 메시지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감사할 때 비로소 내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가 밝혀지게 된다. 질병이 생활습관의 결과라고 하면 건강은 습관을 바꾸어나갈 때 하루하루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렇게 바꾸면 내일 건강해질까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게 된다. 다만 지금 내가 여기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과거의 잘못된 반성을 통해 알게 되고 실천하면 되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환자는 질병을 잊어야 한다. 내가 환자라는 생각도, 환자가 아니라는 생각도 떠나 다만 일상의 삶을 열심히 살아갈 뿐이라는 것이다.
참회와 반성이 있어야 만족과 감사가 있고 만족과 기쁨이 있어야 평화로움이 있고 평화가 있어야 행복이 있다. 잘못된 생활습관에 대한 반성이 있어야 지금 이 정도 목숨 부지하고 살 수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절로 생기고, 반성과 감사의 마음이 생겨야 내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는 저절로 알게 된다.
가장 큰 괴로움의 원천은 지혜롭지 못하기 때문이라 하면 참회와 감사 속에 제대로 알고 보게 되어 지혜로움을 갖추고 내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게 되었다면 과거에 대한 원망도, 미래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도, 더 이상의 괴로움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여기에 지금의 모습으로 현재를 살아갈 수 있게 된다.
병이 없으면 탐욕이 일어나니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고 성인들은 말했건만 현대인은 병이 있어도 더 큰 욕심이 일어난다. 유명한 의사를 찾고 유명한 약을 찾아 정신 없이 헤매는 것은 몸과 마음의 변화에 관한 법칙, 먹는 것이 몸을 만드는 과정, 먹는 것을 통해 마음이 달라지는 작용, 밥과 마음의 작용 법칙이라는 진리를 알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병원과 의사가 늘어나는 시대, 질병은 어느 날 불쑥 유행하는 세균에 감염되어 일어난다고 생각하고 의사와 병원은 과학의 발달과 함께 모든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장담을 계속하는 한, 질병과 건강에 관한 생각들을 바로 잡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의사들은 모든 병을 약으로 치료한다고 장담하고 어리석은 범부들은 그것을 믿고 따르니 인생의 한 깨달음을 얻기 또한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건강하고자 하는 마음도 버리자. 온갖 상업적 정보와 잘못된 영양 상식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 식생활과 몸에 대한 바른 지식을 배워 지혜로운 덕을 갖추고 자신의 생활습관을 돌이켜 반성하며 지금 여기에서 한 가지씩 바꾸어나가려고 노력한다면, 인생의 모든 일이 수단이 됨을 막아 그 자체가 의미가 되고 질병과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을 떠나 우리의 삶은 좀 더 의연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