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 만들기와 불교평화학

불교와 21세기

2007-10-04     관리자

이라크 전쟁이라는 태풍은 무고한 민간인 희생자만 다수 남긴 채 지나가고, 이제 북한 핵문제가 새로운 태풍의 눈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은 전쟁 명분으로 삼았던 대량살상무기를 찾아내지도 못한 채 석유이권의 분배에 몰두하고 있고, 결사항전을 외치며 자기 국민들을 전쟁으로 내몰았던 후세인 대통령은 종적조차 묘연하다. 이 세상에 ‘나쁜 평화’는 있지만 ‘좋은 전쟁’은 없다.
전쟁은 아무리 고상한 명분을 내걸더라도 아무 죄 없는 인명의 살상과 재산 파괴를 가져올 수밖에 없으며, 어떠한 전쟁이라도 평화를 위한 수단이 될 수 없다.
국제사회에서 새로이 태풍의 눈으로 떠오른 북한 핵문제는 불행 중 다행으로 북·미·중 3자회담을 통해 해결의 길이 모색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북한문제가 북한의 생화학무기, 탄도미사일, 인권 등 수많은 과제가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포함해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우리 국민들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오랫동안 평화를 ‘전쟁이 없는 상태’로 인식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평화는 단순히 ‘세력균형’에 불과할 뿐이며 쉽게 깨질 수 있는 불안정한 것이다. 이러한 것을 ‘소극적 평화’라고 부르며, 1953년 7월 한국전쟁이 중단되어 오늘날까지 지속되어온 휴전상태가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이러한 ‘소극적 평화’를 진정한 평화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평화학의 창시자이자 불교사상가로 널리 알려진 요한 갈퉁(Johan Galtung) 교수는 ‘적극적 평화’라는 개념을 제시하였다.
‘적극적 평화’란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인간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상태까지 포함하는 적극성을 지닌 개념이다.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가 말한 ‘영구평화’는 ‘적극적 평화’가 완성된 최고형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요한 갈퉁이 주창한 ‘적극적 평화’ 개념의 깊은 심성엔 불교에 대한 요한 칼퉁의 종교적 해석이 담겨 있다. 그는 자신의 저서 『불교-조화와 평화를 찾아서(Buddhism: A Quest for Unity and Peace)』에서 무아·비폭력·자비·공생·다양성·중도사상 등 불교의 핵심사상을 통해 ‘적극적 평화’의 개념을 정립하고 불교평화학의 가능성을 열었다.
그는 스스로 스승으로 삼았던 간디와 같은 인물들이 비폭력, 불복종운동을 전개한 그 바탕에 불교와 힌두교 같은 종교적인 힘과 전통이 근간이 되었다고 본 것이다.
그렇다면 불교평화학은 한반도 평화 만들기에 어떠한 가르침을 주고 있는가? 지난 50여 년 동안 남한은 휴전이라는 ‘불안정한 평화’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해 왔다.
미국의 안보우산에 들어가기 위해 50년 이상 미군을 받아들이고 있고, 주권의 일부인 전시작전통제권도 미군에게 넘겨주었다.
미국의 안보우산 속에서 한국정부는 미국의 대외정책을 지지하고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명분 없는 이라크 전쟁에서 우리 정부가 ‘이라크전 지지, 비전투병 파견’을 결정한 것도 이러한 현실론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소극적 평화’ 상태의 북한 상황은 우리보다 훨씬 못하다. 북한은 ‘불안정한 평화’ 속에서 자주국방을 이룬다는 명분론에 치우쳐 경제나 정치·사회 모든 분야가 엉망이 되어 버렸다. 특히 김정일 체제가 등장한 이후 북한당국은 모든 부문에서 군사를 우선시하는 ‘선군통치론’을 내세워 북한사회 전반을 더욱 군사화하고 있다. 그 결과는 북한주민들의 굶주림과 질병, 탈북사태와 인권유린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와 같은 한반도의 불안정한 평화상태가 가져다주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적극적 평화’의 추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적극적 평화란 단지 전쟁과 폭력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개개인의 인권과 삶의 질 향상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북한이 서로의 마음을 열고 화해의 바탕 위에서 정치·군사·경제·사회·문화 등 다방면에서 우호적인 관계를 수립해야 한다.
현재 우리 정부는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을 핵심적인 국정과제로 내걸고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평화협정이나 평화체제와 같은 법적·제도적 형식도 중요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적극적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남북한의 같은 동포들이 자주 만나면서 마음을 열고 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진정한 평화란 마음 바깥의 평화(평화체제의 구축)뿐만 아니라 마음 안쪽의 평화를 동시에 구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점에서 한반도의 평화 만들기는 당면한 북한의 핵이나 인권 문제를 어떻게 평화적으로 풀어갈 것인가 하는 ‘과정’에 달려 있다.
‘적극적 평화’가 이루려는 목표가 궁극적으로는 ‘통일’이고 당면한 과제로는 ‘평화체제의 구축’이지만, 한반도 평화를 만드는 과정 또한 평화를 이루는 핵심부분이기 때문이다.
‘결과’에 집착하지 말고, 현안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철저하게 평화 원칙을 지켜나가는 자세가 절실히 요구된다. 이것은 불교평화학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적극적 평화’의 길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