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등 재현을 꿈꾼다

지혜의 향기/ 연등을 달며

2007-10-04     관리자

지난 해 여름과 연말 광화문에 모인 수많은 촛불을 보면서 불빛이라는 것이 사람의 마음을 모으는데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새삼 실감했었지요.
저는 개인과 지역, 성, 세대를 한꺼번에 뛰어넘는 우리 민족의 신명과 대동마당을 여는데 조그마한 촛불 한 자루가 그토록 큰 힘을 발휘했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초파일 연등축제가 열립니다. 서울 도심에서 열리는 단일축제로는 가장 많은 인원을 동원하는 행사지요. 연인원 10만 명이 서울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불빛의 행렬은 가히 장관입니다.
이 특별한 경험에 감동을 받는 것은 비단 불교와의 인연에 상관없이도 우리 민족이라면 누구나 핏줄 속에 숨겨놓은 등놀이 풍속의 본능 때문일 겁니다.
등축제에 모인 이들은 남녀노소의 구별이 없고 내·외국인의 차별도 필요 없지요. 불빛이 춤추고 흐르는 대로 신이 납니다.
그러면서 생각하지요. 부처님의 인연으로 우리는 모였구나. 말하지 않아도 서울 종로거리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이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을 생각합니다.
그냥 우연히 지나치다 행렬을 본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중에는 일 년에 한 번뿐인 이날 행사에 들고 나올 자신의 등을 준비하며 오랜 시간을 공들여 부처님과의 인연을 지어 온 이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우리 등에 대한 관심과 문의가 이곳저곳에서 전해져 옵니다. 등 제작을 배우겠다는 사람들과 단체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지요.
이런 관심은 몇 해째 전통등 복원과 개발에 매달리면서 적지 않은 현실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공방 식구들에게 나름대로 현재의 작업에 조그마한 위안이 되어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답니다.
매년 조계사에서 열리는 전통등 강습회를 찾는 인원도 계속 늘어 올해는 신청인원을 다 수용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정말 격세지감이라는 말이 이럴 때 쓰는 말인가 싶습니다.
6년 전 강남 봉은사 마당에 비닐천막을 치고 초라하게 시작한 전통등 재현 작업이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의 기대 속에 오늘처럼 이어져 올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엔 지나온 시간들이 그리 녹녹치 않았습니다.
늘 그렇듯 지속적인 전문 인력을 확보하는 문제와 경제적 어려움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지요.
하긴 요즘 같은 세상에 전통이니 문화니 하는 단어가 들어간 사업을 제대로 꾸려나간다는 것이 쉬울 리 없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운이 닿아서인지 나름대로 전통등 재현과 개발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가진 많은 이들을 만났고, 쉽지 않은 결정으로 공방의 재정적인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이들도 생겨났습니다.
조만간 더 넓은 공간에 공방을 마련하면 전통등에 관심을 가진 많은 이들을 직접 만나 뵐 수 있는 기회도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울러 전국의 모든 사찰에도 자기 사찰의 상징등 하나씩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늘 뒤에서 소리없이 전통등 재현을 후원해주는 교계 사찰들에 대한 감사와 함께 전통등을 아끼고 사랑해주는 불자들과 일반인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공방식구들 모두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을 작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