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의 손길] 정(情)이 그리운 시대

2007-10-04     양동민

이라크 전쟁이 발발했을 때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크고 작은 무력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또한 사스(급성 호흡기 증후군)의 공포가 전 세계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요즈음, 무절제한 환경파괴에 따른 인류에 대한 대재앙을 예고하는 경고 메시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보이지 않는 어떤 거대한 힘에 이끌려 점점 황폐화되어 가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우리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과연 무엇일까? 자신의 힘으로는 버거웠던 책임감을 ‘어쩔 수 없이’ 견뎌내지 못하고 심한 상실감과 허탈감으로 인해 우울증에 빠진 한 청년이 있다.

문동하(31세) 씨가 갓 스무 살이 되었을 때, 3년여 동안 위암으로 투병생활을 하던 어머니가 끝내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의 병원비로 작은 서점을 운영하던 가정은 풍비박산이 되었다. 아버지는 삶의 의욕을 잃고 술로 시름을 달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노모와 어린 세 아들을 남겨두고 어디론가 훌훌 떠나버렸다.

이제 여든이 된 유복이 할머니는 그 당시를 눈물로 회상한다.

“차마 눈 뜨고는 못 보겠습디다. 며늘애를 살리겠다고 서점도 처분한 채 병간호에 매달렸는데, 맥없이 저 세상으로 보내고 나서는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어요. 밥 한 숟갈 입에 안 대고 술만 들이키다가, 입도 삐뚤어져 돌아가고 시름시름 앓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주섬주섬 챙기더니 떠나야겠다고 합디다. 이대로는 못 살겠다고 산으로 들어간다고 하는데, 그 퀭하고 처량한 눈을 보니 붙잡질 못하고 그냥 보냈어요. 조금 있으면 돌아오겠거니 했는데 10년이 넘도록 소식 한 장 없습니다.”

아버지가 떠나고 나서 남은 가족들의 생계는 고스란히 큰아들 문동하 씨의 어깨에 남겨졌다. 아파트 전기공으로 일하면서 동생들의 학비와 생활비를 빼고는 모두 적금을 들었다. 그렇게 4년여의 시간이 지나 2,000만원의 목돈을 만들었다. 그 돈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신과 가족들의 꿈과 희망이었다. 동생들을 대학에 보내고 자신도 야간대학이라도 다닐 요량이었다.

“돈 찾는 날이라며 한껏 들떠서 나간 아이가 밤늦게 시무룩해져서 돌아왔어요. 그리고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면서 돈을 잃어버렸다는 겁니다. 소매치기를 당했는지 깡패들에게 빼앗겼는지 자세한 얘기는 하지 않고 그저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는 거예요. 그 날 이후로 우울증에 걸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어린애가 되어버렸어요.”

유순하고 내성적이던 문동하 씨는 소리에 대한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TV소리는 물론 설거지나 비질하는 소리도 참지 못하고 괴성을 지르며 고통스러워했다. 기억력도 감퇴하여 조금 전의 일도 기억 못하는 일이 빈번했다. 또한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지 몸을 제대로 가누질 못했다. 점점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방문을 나서지 않게 되었다.

심한 절망감에 빠져 세상과 담을 쌓은 형 대신 둘째 문동일(26세) 씨가 세탁공장에 다니며 생계를 꾸려나갔다. 형의 병원비까지 감당해야 하니 늘 빠듯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 보다 못한 유복이 할머니가 생활에 조금이라도 보탬을 줄까 해서 취로사업을 나갔다가 그만 낙상을 하게 되었다. 엉덩이뼈가 어긋나고 허리가 굽는 장애3급의 큰 부상을 입었다.

문동일 씨가 군대에 가게 되자 생활은 전적으로 영세민 세대에 지급되는 정부보조금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급기야 작년에는 중학교에 다니던 막내 성대(17세)가 돈을 벌겠다며 학교를 휴학하고 식당에서 배달 일을 하기도 했다.
백발이 성성한 유복이 할머니는 문동하 씨가 있는 방문에 눈을 두고 깊은 한숨을 내쉰다.

“큰애가 낫는 걸 보고 눈을 감아야 할텐데….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는 군요. 요즘엔 나를 그렇게 귀찮게 할 수가 없어요. 나만 보면 애들이 하는 쎄쎄쎄 놀이를 하자고 합니다. 아무래도 제 엄마와 그 놀이를 하던 어린시절이 그립나 봅니다. 그 때가 가장 행복했겠지요.”

아직도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사회에서 소외된 채 어두운 그늘에서 고통으로 신음하는 아웃이 많이 있습니다. 이에 저희 월간 [불광]에서는 불우한 환경에 처한 이웃을 소개하여 그들의 힘만으로는 버거운 고된 삶의 짐을 함께 하려 합니다. 주위에 무의탁노인, 소년소녀가장, 장애이웃 등 힘든 삶을 꾸려나가시는 분이 있으면 소개해 주시고 그들이 홀로 설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후원에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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