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불교] 아짠 수메도(Ajahn Sumedho)

태국 아짠 차의 수제자로, 불교 불모지였던 영국에서 탁발 통해 '숲속 승원' 만든 원력의 보살

2007-10-04     진우기

아짠 수메도는 1934년 미국 워싱턴 주 시애틀에서 태어났다. 한국에 6·25 전쟁이 일어났을 때 해군에 복무 중이었던 그는 일본에 파견되었고 거기서 스즈키 다이세츠의 책과 불교를 접하게 된다.

청소년기에 한때 그리스도교를 열심히 믿은 적이 있었지만 맹목적 믿음만을 강조하고 수행방법을 가르쳐주지 않는데 실망한 적이 있던 그는 의구심이 일어나는 것은 좋은 일이라며 논리와 의문을 외면하지 않는 불교에 매료되었다.
제대 후에는 워싱턴 대학에 복귀해 아시아학으로 학사 학위를 땄고 이어서 버클리에 가 아시아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다. 1963년 그는 졸업과 동시에 평화봉사단원이 되어 타일랜드로 갔다.

오전에는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오후에는 절을 찾아 명상을 배우던 그는 농카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스님이 되는 계를 받았다. 이후 1년간 혼자서 수행하다가 아짠 차의 제자를 만나게 되고 그를 따라 차 스님을 만난 후 계속 그 곁에 머무르게 된다.

1967년 그는 아짠 차의 서양인 수제자가 되었다. 1992년 작고한 아짠 차는 부처님 당시처럼 숲 속에서 수행하는 태국의 큰스님이다. 부처님 당시 사문들이 했던 그대로 마을에서 탁발하고 숲에서 참선하는 이들을 산림 수행자라고 부른다. 불가의 의례와 사람들의 관혼상제 의식을 주로 집전하는 마을 스님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수행에만 몰두하는 이들을 산림 스님이라 부르는 것이다.

아짠(Ajahn)은 태국어로 스님이라는 존칭이다. 포대화상처럼 환히 웃는 후덕한 모습의 아짠 차에게는 일찍부터 서양인 제자들이 찾아들었다. 이들이 원하는 가르침을 단순한 말로 잘 전해주었기에 그를 찾는 서구인들이 늘어났고 그들 중 다수가 고국으로 돌아가 수행을 계속하였기에 상좌부 불교가 선불교보다 앞서 유럽에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짠 차는 늘 혼자서 숲속에 들어가 명상과 고행을 했고 그렇게 하는 데 아무런 어려움도 느끼지 않았다.

그러나 일단 승원으로 돌아와서 며칠만 지나면 다른 사람과 함께 지내는 것이 너무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중에는 어려운 것을 더 많이 공부해야겠다 싶어 승원에 더 오래 머물며 수행을 했다.

‘타일랜드 제일의 성자’ 그리고 ‘태국 불교의 등불’이라고 불렸던 그는 태국에서 가장 많은 제자를 가진 스님이었고, 그가 타일랜드 내에 개원한 승원 역시 140개로 가장 많은 숫자였다. 생활 속에서의 수행을 강조했던 아짠 차는 명상할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부질없는 핑계라고 했다.

숨쉴 시간이 있다면 명상할 시간도 있는 것이다. 걸을 때도 숨을 쉬고, 서 있을 때도 숨을 쉬고 누워 있을 때도 숨을 쉬지 않는가? 명상도 그렇게 하면 된다.

1977년 아짠 차는 영국 승가 후원회(English Sangha Trust)의 초청으로 영국을 방문했다. 이 때 10년여 동안 키워온 영국인 수제자인 아짠 수메도가 동행했다. 아짠 차는 얼마 후 귀국했지만, 영국에서 다르마를 구하는 열기가 뜨거움을 감지했기에 아짠 수메도를 불교도가 보시한 아파트인 헴스테드 승원(Hempstead Vihara)에 남겨두고 갔다. 법을 전하되 태국에서 산림 수행자들이 하던 그대로 전하라고 명하는 스승에게 수메도는 물었었다.

"불법을 전혀 모르고 탁발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이 불모의 지역에서 꼭 탁발을 나가야 합니까?"

스승은 “탁발 말고 다른 어떤 방법으로 법을 전할 수 있단 말이냐”고 되물었다. 그래서 수메도는 아침 명상을 지도한 후에는 매일 아침 아파트를 나와 주택가와 인근 공원으로 탁발을 갔다. 아무도 공양을 주지 않았지만 그는 탁발을 계속했다. 그렇게 해서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공원 안을 돌고 있던 그에게 한 노인이 다가왔다. 도대체 매일 같은 시각에 나와서 똑같은 코스를 걸어다니는 이유가 무엇인지 노인은 궁금했다.

“예, 저는 불교의 사문입니다. 이렇게 아침마다 주변을 도는 것은 주민들을 만나 부처님 말씀을 전하고 주민들이 부처님께 공양을 올릴 수 있는 기회도 만들기 위함입니다.”

그렇게 얘기를 주고 받던 중 노인은 이들이 제대로 수행을 하려면 숲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나한테 스님이 쓰기에 딱 맞는 숲이 있는데 내가 그걸 기증하리다."

그렇게 해서 영국 남부의 웨스트 서섹스(West Sussex)에 소재한 아름다운 청정림인 해머우드(Ham-merwood) 숲에 수행자들이 법을 수행하고 전할 수 있는 터전이 생기게 되었던 것이다.

108에이커 규모의 치타비베카[Chittaviveka, ‘고요한 마음’이라는 뜻] 승원이 유럽 최초의 산림 승원이 된 것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한 말일 게다.

1984년에는 두 번째 승원인 아마라바티[Amaravati, ‘무사계(無死界)’라는 뜻]를 설립하고 아짠 수메도가 승원장이 된다. 특히 아마라바티는 런던에서 한 시간도 안 되는 거리에 있어 주말수련과 단기수련을 받으려는 사람들에게 좋은 수행처가 되고 있으며, 이 곳에 주석하고 있는 아짠 수메도는 전세계의 숲 속 승가 계열 승원의 지휘자 역할을 하고 있다.

이후 영국에 노섬버랜드(Northu-mberland) 승원과 드본(Devon) 승원, 스위스에 칸데르스탁(Kande-rstag) 승원, 이태리에 세자로마노(Sezza-Romano) 승원, 뉴질랜드에 웰링턴(Wellington) 승원, 오스트레일리아에 서펜틴(Serpentine) 승원 등이 설립되었다.

미국의 ‘아바야기리[Abhayagiri: ‘두려움없는 산’의 뜻)’ 승원은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 시 근처의 레드우드 밸리(Redwood Valley)에 있는 120에이커의 숲을 중국계 수안후아(宣化) 스님으로부터 기증받아 지었다.

숲 속 승가의 스님들은 오늘도 전세계에서 그 개조(開祖) 아짠 차의 단순 솔직하고 직접적인 가르침과 생활과 밀접히 연결된 법을 전하고 있다. 아짠 차가 평생을 가르침의 본산으로 삼은 왓빠퐁 입구에 세워진 팻말에 쓰여 있는 의미심장한 질문을 이들은 오늘도 인연 있는 중생들에게 던지고 있다.

“법을 실천하고 진리를 깨닫는 것, 금생에 오직 한 가지 가치 있는 일입니다. 지금이 바로 시작할 시간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