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냇물 이야기-2

2005-06-08     관리자

[시냇물 이야기-2]



반가움에 어쩔 줄을 모르다 한참 시간이 흐른 뒤 시냇물이 마침내 묻습니다.
영희야! 너 그 때 떠나고 나서 어떻게 됐니? 문제는 풀었니?
영희 시냇물은 말없이 미소만 짓습니다.


시냇물은 다시 묻습니다. 철수는 어떻게 됐니?
그러자 갑자기 영희 시냇물은 얼굴이 어두워집니다.
철수는 그만...문제도 못 풀고 하늘로 가 버렸어...


영희 시냇물의 말인즉, 문제를 풀려고 흐르지도 않고 한 곳에 머물며
너무 노력하다 폭염 퍼붓던 어느 날 그만 말라 버리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안타까움에 한참 말문을 잊던 시냇물은 다시 용기를 내어 물어 봅니다.
영희야! 그런데 너는 여기 웬 일이니? 너는 문제를 풀었으니 여기 오지 말아야지?
그러자 영희 시냇물이 우스운 듯 말합니다.
너 참 이상하다? 문제를 풀 건 말 건 시냇물이 흘러야지 흐르지 않고 뭘 하니?



시냇물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아는 바로는 문제를 푼 시냇물, 자신의 본질을 깨친 시냇물은
자기와 같이 문제도 풀지 못한 평범한 시냇물과는 달리 이런 곳에 있지 않아야 했습니다.



어딘가 안락한 곳으로 가야지 자기처럼 거친 물살을 따라
상처를 입으며 흘러간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시냇물을 영희 시냇물은 오히려 의아한 표정으로 웃고 있습니다.
시냇물은 다시 묻습니다. 우리는 누구니?
그러자 그런 시냇물이 매우 귀엽다는 듯 영희 시냇물이 말을 합니다.



우리가 누구냐고? 우리는 물이지 물! 물은 흐르는 게 본성이야.
물이 깨쳤다고 흐르지 않고 꽃이 깨쳤다고 피지 않든?
그렇다면 그건 이미 물이 아니고 꽃이 아니지.
알든 말든 깨치든 깨치지 않든, 물은 흐르고 꽃은 피게 마련이야.
깨쳐서 더 흐르는 것도 아니고 못 깨쳐서 덜 흐르는 것도 아냐.


잘 생각해봐! 우리는 옹달샘에 있던 그 옛날에도
목마른 이에게 물을 주며 생명을 살리며 그렇게 지냈지.
바다로 온 지금도 그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아.
다만 환경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우리 물들은 그렇게 살게끔 이 땅에 온 거야.
그렇게 만물의 젖줄이 되어 우주의 모든 생명을 꽃 피우러
우리는 비도 되고 샘물도 되고 그렇게 험한 길을 거쳐 바다로 오게 되는 거지.


우리 물뿐만 아니라
모든 만물이 다 그러해.
태어나 서로 먹고 먹히며 그렇게 이 자연을 성장시켜 주는 것이지.


우리는 때가 되면 우리의 삶을
서로 다른 존재의 새로운 근원이 되어줌으로써
이 세상을 더 큰 세계, 더 장엄하고 평등한 세계로 만들어 나가지.
겉보기엔 그게 비극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성장하는 생명의 장엄한 노래이지...



우리 본래 모습이 생명이거든?
옹달샘은 너무 작고 좁아 많은 생명을 살리지 못했지만, 바다를 봐!
얼마나 많은 생명이 이 곳에서 노래를 해?
우리는 결국, 바다를 이루기 위해 수많은 산과 들에서 각자 태어나 마침내 흘러 온 거란다.



그리고 바다에서 비로소 하나가 되고,
큰 하나가 됨으로써 작은 하나일 땐 잉태치 못하던
더 많은 생명들을 살리고 번성시키게 되지.


그렇다고 우리가 영원히 이 곳에 있지는 않아.
때가 되면 다시 우리는 하늘로 올라가 구름으로 떠돌다가
다시 우리가 있던 샘터로 돌아가게 돼.
그리하여 작은 샘터에서 또 작은 생명들과 친구 되어 놀다가,
때가 되면 다시 시냇물로 흘러 강을 이루고 다시 바다로 오는 거지.


우리는 이런 수레바퀴를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굴렸는지 몰라.
어떤 때는 내가 네가 되고, 네가 내가 되면서 말이야.
과거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하며 미래도 그러하겠지.
또한 우리로 인해 과거의 물이 현재에 단절되지 않으며,
우리를 통해 미래의 물들 역시 이어지는 것이란다...


우리는 다만 흘러가면 되는 것 뿐이야.
진정 우리가 할 일은 이것 밖에 없어!
물로 태어나 흐름을 거부하는 것처럼 못난 짓은 없어.
그것은, 우주의 질서를 거부하는 것이거든?


다른 존재도 다 마찬가지야!
꽃은 피고 지고, 물고기는 태어나 놀다 잡혀 먹히면 되고
눈은 겨울에 내리면 되는거지...


그러면 꽃도 피고 고기도 뛰놀고 물은 흐르는,
그리고 겨울엔 온 누리가 하얗게 변하는
아름다운 세상이 그대로 펼쳐지는 거야...


어때? 아주 쉽지? 이것이 내가 집을 떠나 알게 된 진리란다.


그런데 우리가 본성인 물의 삶을 사는 것은
이런 진리를 알고 모르고 와는 아무 상관이 없어.
알든 모르든 우리는 물이기에 흘러가는 것이고 또 흐를 수밖에 없는 거지.
우리는 흘러가는 게 가장 우리다운 일이지.
그러니 이렇게 다시 너와 만나게 된 것이고...


흘러가며 만물의 벗이 되고 만물을 번성시키고
만물의 근원, 만 생명의 축제장이 되어 주는 거야.
우리는 본래부터 이웃들과 함께 있었고, 또한 영원히 함께 있는 것이지.
비록 언젠가 구름이 되어 이 곳을 떠난다 해도 말이야...*^*^*


이렇게 말하며 활짝 웃는 영희 시냇물!


그 때 시냇물은 알았습니다, 영희와 자기가 아무런 차별이 없다는 것을!
알고 흐르든 모르고 흐르든 물은 그저 흘러가는 것이고!
그렇게 만물은 왔다 그렇게 만물은 간다는 것을!



단지 알고 흐르는 물은 어디로 가는지 알므로 밝고 당당하게 흐르며!
모르고 가는 물은 가는 곳이 어딘지 모르므로 불안하고 어둡게 흐른다는 것을!


그러나 밝게 흐르든 어둡게 흐르든 모든 물은
만물을 탄생시키고 벗이 되어 그들을 번성시키며 성장시키고,
그리고 마침내 바다에 모두 이른다는 것을!



그리하여 흐를 땐 차별 있던 물들이
바다에서는 더럽든 맑든 밝든 어둡든 깨쳤든 못 깨쳤든
모두가 차별 없이 하나가 되어,
더 큰 생명, 더 장엄한 생명의 장, 생명의 노래를 펼쳐나간다는 것을...


그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된 시냇물이 고개를 들자,
마침 그 때 바람은 멎고 바다는 고요하여,
맑은 물 위로 하늘과 구름, 그리고 모든 바다의 생명들이
모두 해맑게 자신의 모습을 온전히 들어내고 있었습니다.........



普賢合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