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와 존재의 만남

우리스님/마음고요 선방 정목 스님

2007-10-04     관리자


“지금 이 순간에 멈춰 서서 왜 그렇게 바삐 가려 하는지, 왜 자꾸 가지기만 하고 놓으려 하지 않는지, 자신의 삶을 한 번쯤 돌아보십시오. 들어오는 호흡과 나가는 호흡을 지켜보고 있는 동안 분주하던 마음이 조용히 가라앉게 됩니다. 행복도 욕망도 멀리 있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다 내게 있을 뿐, 나에게서 비롯되어 나에게서 완성될 뿐, 모든 갈등의 근원이 나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우린 미혹에서 벗어날 것입니다.
- 정목 스님의 산빛 이야기‘마음고요’ 중에서

일요일 오전 10시. 마음고요선방(강남구 신사동, TEL 02-548-0218). 나름대로 편안한 옷을 입은 사람들은 스님의 동작 하나하나 말씀 한마디 한마디에 따라 기본적인 요가와 ‘나를 찾는 명상’으로 심신을 이완시킨다.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비록 자연의 소리는 아니지만 깊은 산사에 온 듯 고요한 선방엔 향내음이 은은하다. 일흔이 훨씬 넘어 보이는 몇몇 노보살님들도 어찌 그리 유연한지 앉은 자세에서 다리를 쭉 뻗은 채 몸을 앞으로 자연스레 내리자 온몸이 바닥과 하나가 된다.
“…아프고 당기는 부분을 그대로 바라보세요. 그리고 그 아픈 부분과 화해하세요. 몸이 충분히 이완되고 편안해졌으면 들숨과 날숨, 호흡을 가만히 바라보세요…. 자, 벌리신 팔을 천천히 모읍니다. 마치 이슬을 머금은 꽃봉우리를 연상하며 향기와 정성을 담아서 가족과 친지 우리의 이웃들에게 전합니다. ”
조용조용하면서도 물 흐르듯 흘러나오는 스님의 음성에는 알 수 없는 에너지가 담긴 채 그대로 가슴으로 온몸으로 전해진다. 한 시간 반 정도 계속되는 동안 몸과 마음이 편안하면서 고요와 행복이 깃든다.
“자신의 몸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인식이 있고 이완된 상태라야 호흡을 바라볼 수 있고, 내면을 바라볼 수 있는 것입니다. 나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것이지요. 자기를 깊이 이해하게 될 때 남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정목 스님이 마음고요선방의 문을 열고 명상을 지도하기 시작한 것은 2년쯤이 된다. 그 이전엔 인왕산 자락 선다암(禪茶庵)이라고 이름 붙인 20평 남짓의 작은 선방에서 인연있는 사람들과 위빠싸나공부를 함께 했다. 일주일에 3일 서로 만나 공부를 점검하고 각자의 처소에 돌아가 생활하며 하루 2∼3시간씩은 이어서 수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 공부를 해오던 중 공간이 협소해지자 뜻 있는 분이 이곳 마음고요선방의 공간을 마련, 명상프로그램도 열고, 사랑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백혈병 어린이를 돕기 위한‘작은사랑 음악회’도 열고 있다. (누구나 전혀 거부감 없이 쑥 들어오고 싶은 공간으로 꾸며진 마음고요선방에서 열리는 작은사랑 음악회는 음악가는 물론이려니와 특히 종교가 다른 일반인들 사이에도 그 소문이 자자하다. 공간이 협소해 200명 정도가 함께 할 수 있는 이 음악회의 참가자는 불교인들보다 타종교인들이 훨씬 많다. 지난 해까지는 매월 열리던 것이 올해부터는 계절마다 열린다고 한다.)

깨달음의 욕망에서 놓여나야
정목 스님은 16살에 출가, 3년간의 행자생활과 비구니 구족계를 받기까지 10년, 한참 신심이 불붙었을 때에는 목탁을 치며 시작한 염불이 아예 시간도 잊어진 채 하고 나면 팔이 펴지지 않았고, 3000배를 어찌나 열심히 했는지 무릎 연골이 으스러지기도 했다. 오후불식과 단식, 묵언, 용맹정진으로 이빨이 무너지기도 했다.
비록 초보자에게는 모두 필요한 과정들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깨달음을 이루어야 한다는 욕망 그 자체가 해방을 주지는 못했다. 공부길을 찾던 중 비록 공부의 스승은 만나지 못했지만 1980년 위빠싸나와 인연이 되어 독학하며 공부를 하였다.
인도와 네팔, 미얀마, 스리랑카 등 남방을 돌며 수행, 공부의 방향과 기술이 어느 정도 잡히자 1년에 두 번씩 안거를 가졌고, 수행 중 감동의 눈물이 복받친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것은 참회와 회한, 환희와 감사의 눈물이었다. 부처님에 대한 진정한 존경심과 예경과 찬탄이 저절로 우러나왔다.
순간순간 자신의 감각과 감정을 얼마나 잘 알아차리고 그것에서 놓여나는 지가 수행의 척도가 아니던가. 내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고 있는 그 현상들이 어떻게 일어나고 사라지는가를 놓치지 않고 그냥 살필 수 있을 때 놓여날 수 있는 것을….
10여 년 전 위빠싸나 수행을 통해 공부의 틀을 잡았고(공부에 속지 않고), 6∼7년 전부터는 더 이상 우왕좌왕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리고 3∼4년 전 지리산에서 수행을 마치고 내려오던 중 가까운 분의 권유로 아봐타(현대적인 마음수련프로그램)를 휴식삼아 바라는 바 없이 했다. 그런데 그 동안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명료해지면서 마치 내 속에 흩어져 있던 파일들이 그룹별로 정리되는 것 같았다.

부처님 전에 다시 예경을 올리고
‘불교가 이런 것이었구나.’말로만 들어오던 부처님, 주인공, 불교가 무엇인지 분명해지면서 마음자리를 보고 나니 천수경, 금강경, 법화경, 화엄경 경전의 말씀이 그대로 가슴으로 전해져 왔다.
그 동안은 내가 만들어 놓은 신심 속에서 예경을 했다면 이제는 진정으로 부처님께 저절로 머리가 숙여졌다.‘아! 부처님이라는 분은 세상에 둘도 없는 분이시구나. 지극히 완전한 분, 나보다 앞서 길을 가시면서 잘 나아갈 수 있도록 빗자루질을 해놓으시고, 훤하게 등불을 밝혀놓으신 분이시구나….’진정으로 부처님에 대한 감사함이 사무쳤다.
되돌아보면 (17년간) 봉사활동을 해왔다지만 내가 나를 돌보지 않았기 때문에 남을 돌봄으로써 대리만족을 느낀 것이 아니던가. 내 스스로가 깨어나는 순간,‘나’에 대해 눈뜨고 보니 남이 보였다.
너무나 사랑스러운 사람들이었다. 햇살만 들어와도 바람만 불어도 행복하고 기뻤다. 함이 없이 할 뿐, 굳이 행복을 가장하지 않아도 되었다.
‘눈을 뜨고 보면 배울 것이 얼마나 많은가. 하심하고 모든 이들로부터 배우려는 마음, 모두가 부처님인데 누가 누구에게 절을 하고 받는 것인가. 어찌 보면 출가수행자도 헤어스타일과 생활이 다를 뿐 존재의 입장에서 보면 무엇이 다른가. 잘못된 법식들은 버려야 하지 않은가. 내가 클리어해지면 언제나 누구에게나 오픈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의 불교가 혹 방편이 본질로 호도된 것은 아닌지. 외형을 늘려가는 것, 더 큰 물질의 세계, 욕망은 이제 멈출 때가 되지 않았는가. 스님과 신도라고 하는 관계 또한 수직관계가 아니라 수평관계로, 존재와 존재의 만남이 되어야 하리라.’ “정보화시대, 열린 시대가 되다 보니 모든 이들에게 기회가 훨씬 많아졌어요. 새로운 것에 대해 두려움과 거부감부터 가지는데 이제는 오리지널이지 뉴에이지니를 굳이 나눌 필요가 없어졌지요. 저 역시도 종교의 화합을 외치면서도 기독교니 천주교를 받아들이는 것같이 여기기도 했습니다. 열린 눈으로 보면 불교 안이니 밖이니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툭 터지고 보면 안과 밖이 따로 없는 것이지요.”

‘나 잘났다는 병’에서 놓여나니
똑똑하다느니 능력 있다느니 지성적이라느니 하는 말에 스스로 속아 얼마나 많은 소중한 순간들을 놓쳐왔던가. 20, 30대 초반까지만해도‘나 잘났다는 병’이 참으로 컸다. 그러나 한순간 그 잘났다는 병이 와르르 무너지면서 수많은 존재 앞에 머리 숙여지며 감사와 참회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모두가 나를 성장시키고자 그때 그곳에 그렇게 계셨던 참으로 고마우신 분들이었다.
거의 평생을 딸과 사사건건 의견충돌을 일으켜온 올해 일흔네 살 된 노보살님은 스님이 이끄시는 수행 과정을 통해 딸과 완전한 화해를 하게 되었다.
‘아! 이것이 내 생각이로구나.’판단분별도 자신이 만드는 것이 아닌가. 본래 자리로 돌아오고 보니 눈에 거슬리는 것이 없어졌다. 갈등의 원인을 내려놓으니‘미안하구나. 고맙다. 수고했다.’딸에게 생전 해보지 못했던 말들이 술술 나왔다. ‘그렇게도 분명하고 간단하고 단순한 것을 너무나 먼 길을 돌아왔구나.’보살님은 눈물을 흘리시며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깨달았다며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모른다.
예전처럼 인기몰이식도 아니고, 비록 많은 사람은 아니지만 한 사람 한 사람 깨어나는 것을 보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스님과 신도 사이라기보다 존재와 존재의 만남, 같은 길을 가는 도반, 진정으로 서로 이해하는 사이가 되어 한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이 그렇게 행복할 수 없는 것이다.
유연하고 부드러운 쪽으로 가면 어떤 수행이든 다 좋은 것, 만나는 모든 이들 모든 순간들이 정말 행복하고 소중하다는 정목 스님은 봄햇살만큼이나 따스하고 보드라우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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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목 스님은 1976년 열여섯에 출가, 동국대 선학과와 중앙대 대학원 사회복지과를 졸업.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사회활동에 헌신했으며, 인연한 이들과 함께 올해 7년째 백혈병(재발하여 도움의 손길이 멀어진 환아) 어린이 돕기를 하고 있다.‘작은사랑’이라는 이름으로 1997년 처음 시작, 부처님 오신 날 연말이 가까운 동짓날 37명의 백혈병 어린이를 도왔다. 서울대 병원 법당 법사로(10년간) 활동하던 시절 실핏줄이 다 비칠 정도로 연한 아기들의 머리와 팔, 배에 꽂혀 있는 주사바늘을 보고 너무나 큰 충격을 받고,‘온 세상 아이들이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날이 올 때까지 작은 힘이라도 보태리라.’원을 세웠다.
불교계에서는 처음으로 전화상담(자비의 전화)을 시작했으며, 불교방송 개국 당시‘차 한잔의 선율’진행자로 한국방송대상 사회상과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 사회상을 수상했다. 특히 이웃돕기 프로그램인‘거룩한 만남’의 진행자로 달동네를 직접 뛰며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헌신적으로 돕기도 했다. 90년대 중반 모든 일을 접고 침묵과 수행에 전념하던 중 현대적인 의식개발프로그램인 아봐타(Avatar)를 만나 마스터와 위저드 과정을 마쳤다. 현재는 마음고요선방에서 종교를 초월해 사람들의 의식을 일깨우는 일과 아픈 어린이를 돕는 작은사랑운동을 펼치고 있다. 최근에 서간집 『마음고요』를 학고재에서 펴냈으며, 정목 스님이 들려주는 법구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와 정목 스님과 함께 듣는 『부모은중경』을 CD에 담았다.

 E-mail:maumgoy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