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밥과 마음의 평화

건강교실

2007-10-04     관리자

먹는다는 것이 단지 내가 먹고 싶은 것, 입에 맞는 것을 골라 먹는 것처럼 단순하지 않다. 한 사람이 음식을 먹는 행위는 엄청난 사회적·문화적·정치적 배경과 개인의 생리적 원인을 인간의 심신 깊은 곳에 새겨두면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평생 쌀 서 말을 먹지 못했다고 한다. 그만큼 우리 나라의 쌀 농사라고 하는 것은 어렵고 쌀의 수확은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상들은 기상조건이 좋지 않아도 상당한 수확이 가능하고 흉년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구황작물들을 심어 왔다.
이런 작물들은 장마나 가뭄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고 땅이 썩 좋지 않아도 일정한 수확을 기대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조상들은 항상 기근을 대비하는 차원에서 생육기간이 짧은 조나 기장, 피, 수수, 고구마, 감자 등을 심었던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이런 작물들은 주식으로서 톡톡히 자기 역할을 해왔었다.
우리는 이런 음식들을 수천년 동안 먹어 왔던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이런 거친 곡식들조차도 흔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왕과 양반들, 돈이 많은 사람들은 흰 쌀밥과 고기로써 그들의 권력을 자랑하게 되었다.
이렇게 먹거리들은 권력 있는 사람들에게 집중되는 것이었고, 많은 사람들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본능적 욕구 이외에 음식을 통해 계층의 상승을 이루어 내고 싶은 또 다른 욕구들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었다.
전통적 사회가 붕괴된 이후에 사람들은 돈을 벌어 더 좋은 쌀과 더 많은 고기를 사기 위해 노력했다.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해 박정희 정권은 밀가루 대통령이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밀가루의 권장을 부르짖었다. 또한 다수확 품종인 통일벼를 들여와 화학농법을 불사하면서까지 쌀 생산량의 확보에 주력하게 되었다.
한편 농가의 조정을 통해 축산업을 장려하고 더 많은 고기와 더 많은 우유 생산에 돌입하게 되었다. 그런 결과 우리의 식탁은 아주 부드럽게 도정되고 정제된 흰 쌀밥을 마냥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한쪽에서는 넘칠 대로 넘치고 흔할 대로 흔해서 먹기 싫은 밥이 되어 버렸고, 온통 수입 밀가루로 만든 빵과 과자, 라면, 밀가루 음식들의 천국이 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
인류가 농경 사회로 접어들던 시기였던 만여 년 전부터 일관되게 먹어왔던 가장 주된 식량은 거친 곡식들이었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 100여 년을 갓 넘은 역사 속에 곡식의 도정, 정제 기술이 극도로 발달하면서 곡식을 더 하얗고 부드럽고 먹기 편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우리 나라의 경우 근 20년 동안 곡식의 도정율은 10분도를 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수천 년 동안 먹어왔던 음식과는 아주 다른 것을 먹고 있는 셈이다.
조나 기장과 같은 곡식은 아무리 도정을 하려고 해도 2,3분도를 넘지 못하고, 보리는 도정을 해도 가운데 옴팍하게 파진 선으로 섬유질 성분을 남기게 된다. 분명 학교 다닐 때 수업시간에는 쌀눈 떨어진다고 쌀 빡빡 씻지 말라고 배웠고, 수용성 비타민을 비롯한 영양이 녹아난 쌀 뜬물은 항상 된장국과 찌개 등에 재활용했었지만 이런 진솔한 이야기들은 차츰 사라져 아득한 추억이 되어 버렸다.
사람이 먹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성격과 인품, 미래를 알 수 있다고 했다. 서양에는 “우리는 곧 우리가 먹는 것이다.”라는 이야기도 있다. 이렇게 음식을 통해 우리의 삶은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
하지만 현대인의 식생활은 너무나 갑작스런 변화와 충격 속에 빠지게 되었다. 거친 음식에 적응되어 왔던 우리 몸은 빠르게 소화, 흡수된 정제한 음식들로 인해 대혼란을 맞고 있는 셈이다.
우리 몸의 진화 속도는 그렇게 빠르지 않다. 수천, 수만년의 세월에 비해 지금 현대인이 겪고 있는 식생활의 변화라고 하는 것은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나는 일들인 것이다. 우리는 억겁의 세월과 생명의 윤회 속에 살면서도 지금 이 순간만이 존재하고 영원할 것이며 나로 인해 비롯된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는 것만큼 몸과 음식, 마음과 음식, 음식과 사회, 사회와 자연이라는 일련의 관계들과 이치에 대한 무지들을 확산하며 음식을 먹어 왔던 것이다.
아이들은 배가 고프면 신경질을 낸다. 어른도 일정 시간이 되면 배고픔을 느끼고 어떤 사람들은 허기짐을 견디기 어려워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 자신도 모르게 신경질과 짜증도 늘고 왠지 불안하고 초조해지는 것을 경험하기도 한다.
이런 정신적 변화는 온통 개인적이고 심리적인 원인에 국한된 것이 아닌 음식과 영양에 의한 생리적 현상이기도 하다. 마음, 정신의 변화라고 하는 것은 강력한 물질 작용으로 우리가 어떤 음식을 얼마나,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오묘한 섭리이다.
밥을 먹는다는 것은 밥의 탄수화물이 포도당의 형태로 분해되어 흡수되고 혈액 중에 일정한 농도를 유지하여 지속적인 힘의 원천, 에너지를 만드는 원료로 사용되는 것을 말한다.
우리의 몸은 일정한 혈당 수준을 유지해야만 지치지 않고 육체적인 활동도, 정신 작용도 할 수 있다. 혈당은 혈액 중에 80mg/dl ~110mg/dl의 농도로 존재하게 된다. 밥을 먹으면 사람들의 혈당은 대체로 140mg/dl 까지는 올라가지만 이내 정상적인 수준으로 회복되고 다시 혈당은 일정하게 유지된다.
하지만 흰 쌀밥, 흰 밀가루, 흰 설탕과 같이 정제되어 빨리 소화되어 빠르게 흡수되는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나 끼니를 굶었다 폭식을 하는 사람들은 혈당이 너무 많이 올라 갔다가 너무 많이 내려가면서 춤을 추기 시작한다.
이때 혈당은 140mg/dl 이상으로 치솟게 되고 혈액은 설탕물과 같이 점도가 진해져 혈액의 흐름이 느려지는데, 신체는 이런 갑작스런 혈당의 상승을 비상 사태로 선포하게 되어 빠르게 오른 혈당을 떨어뜨리게 된다.
이 과정에서 췌장은 인슐린의 생성을 증가하여 혈당을 세포 안으로 들어가게 하고 혈당을 조절하려고 하지만 몸은 필요한 만큼의 적정한 양의 인슐린만을 생성하지 못하고, 다량으로 생성된 인슐린은 혈당을 급격하게 적정한 수준 이하로 떨어뜨리게 한다.
일반적인 라이프 스타일을 가지고 있는 건강한 사람의 혈당이라면 혈당은 80mg/dl 이하로 잘 떨어지지 않지만 인슐린이 다량으로 생산되는 사람의 혈당은 그 이하로 떨어지게 되는데 이것 또한 신체는 커다란 스트레스로 받아들이게 된다.
인간의 뇌는 하루 열량 소모량의 20%나 사용하고 있다. 그만큼 뇌는 인체를 조절하는 메인 컴퓨터와 같은 역할을 하며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는 셈이다. 또한 뇌는 단백질도, 지방질도 아닌 포도당만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고 저장 세포 또한 없기 때문에 뇌가 쓰고 있는 포도당은 혈액 속의 일정한 당분을 통해 지속적으로 공급되어야 한다.
이렇게 혈당이 떨어진다는 것은 뇌와 신경세포의 원활한 기능을 방해하게 되는데 미국에서 정신 분열증의 환자의 70%가 이런 저혈당증을 경유한다고 보고된 것이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의 일이다.
혈당이 떨어지게 되면 신경질과 짜증이 늘고 불안하고 초조해지고 기억력과 집중력은 저하되어 정신이 자주 혼미해진다. 혈당이 떨어졌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 회복하는 능력이 있어 배가 고프다가도 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고 참을 수 있을 정도가 되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혈당이 자신이 먹은 밥의 종류와 잘못된 식사 습관 때문에 수시로 떨어지는 사람들은 스스로 회복하는 비상시의 능력을 시도 때도 없이 써버린 결과 나중에는 혈당이 회복되지 않아 안절부절하게 되고 어쩔 줄을 모르게 되며 심지어는 밥을 먹지 않으면 견디기 어렵고 손발이 떨리기까지 한다.
이런 저혈당증은 마음의 안정을 잃게 하고 모든 상황이 부정적으로만 이해되어 공격적인 성향의 사람으로 변해가는데 많은 사람들과의 싸움도 잦아진다.
혈당을 유지하는 능력을 잃었다는 것은 원인을 파악하기 어려운 온갖 정신, 육체 증상을 야기하는 너무나도 불행한 일이다. 곧 마음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잃게 된다는 것이고 스트레스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비상시의 능력을 모두 써버린다는 것이다.
잘못된 식사 습관으로 인해 혈당의 오르내림이 심하게 되면 될수록 더욱더 안 좋은 음식에 탐닉하게 될 뿐만 아니라 영양 대사와 호르몬 분비의 교란을 시작으로 면역 기능이 저하되어 모든 질병의 시작을 선포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도정하고 정제하지 않은 현미와 조, 수수, 율무, 보리, 기장, 콩과 같이 거친 통곡식을 먹는다는 것은 우리 몸이 그것을 원하고 있고, 그런 음식에 적응되어 살아온 것을 의미한다. 또한 천천히 소화되고 내 몸이 처리할 수 있는 속도로 천천히 흡수되어 몸이 무리하지 않게 해주며 정신의 작용도 원활히 일어나고 마음도 일정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됨을 말한다.
급변하는 사회를 살고 있는 현대인의 마음에는 항상 끝없는 욕구와 동요가 일어나고 쉽게 조절되지 않아 정신적·육체적 질병을 얻곤 한다. 그런데 더더구나 내가 먹은 밥 때문에 내 마음이 평화로울 수 없다면 이것 또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거친 밥을 규칙적으로 먹어야 혈당이 일정하게 유지되어 폭식의 욕구가 사라지고, 달고 기름진 음식, 고기에 대한 집착을 줄여갈 수 있다. 우리가 더 달고 부드러운 음식, 더 많은 고기, 커피와 담배를 찾게 되는 것 또한 그 시작은 혈당을 올리기 위한 수단에서 출발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최상의 건강을 회복하기 위한 것이든, 계층 상승의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이든 맛있고 좋은 음식에 대한 끝없는 집착과 욕망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흰 쌀밥을 현미 잡곡밥으로 바꾸는 일, 흰 설탕과 흰 밀가루 음식부터 줄이며 규칙적인 식사 습관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거친 밥 속에는 삶의 만족과 깊은 행복감에 이르는 평화로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