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자재, 깃털처럼 살기

특집 /가볍게 사는 법

2007-10-04     관리자

새해 첫 날 아침 공원으로 운동을 나갔다. 누워서 하늘을 보았다. 어제 밤 늦게 보았던 그 하늘엔 별이 꽤 많았었는데 몇 시간 사이에 하늘은 온통 하얀 뭉게구름이 뒤덮여 있었다. 새삼 “마지막으로 별을 쳐다 본 것이 언제였고, 마지막으로 하늘을 올려다 본 것이 언제였던가!” 하고 자문했다.
매년 그래 왔었다. 아등바등 살다가 허둥지둥 또 새 달력을 선물 받았다. 굳이 년, 월, 일이라는 숫자에 얽매이진 않았지만 눈가에 접히는 나이테 때문에 이미 지나간 시간의 파편을 붙들고 ‘과연 잘 살았나’를 점검해 보았다.
나에게 2002년의 시작의 발걸음은 가벼웠으나 새해를 앞둔 마음은 무거웠다. 되돌아 보니 모든 계획이 2002년에서 2003년으로 연기된 것들 투성이다. 그러나 굵직하게 이룬 것은 없어도 2003년을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난 어느 해부터인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는 절대로 하지 않는다. 새해가 올 때마다 곰곰이 생각한 결과 내린 태도였다.
올해는 “복 많이 지으세요.”로 인사를 대신하였다. 복은 아무에게나 굴러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그 복이 재복이든, 자식복이든, 복은 자신이 복을 지은 만큼 받게 되어 있는 것이지 공짜로 받은 무료 서비스는 아니다. 소원성취가 마음 먹기에 달린 만큼, 복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도 ‘마음’ 하나에 달렸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복을 받으려면 첫째 마음이 가벼운 상태여야 한다. 마음이 천근만근이면 복이 접근을 못하고, 들어오려는 복이 오다가도 도망가고 만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마음의 무게를 줄여야 마음이 가벼워지는 건 당연한 이치다. 비우면 가볍다. 우선 가벼워지려면 마음을 비워야 한다. 너무나 잘난 대한민국의 정치인이 툭하면 내뱉는 말이 “마음을 비웠습니다.”였기에 이 말은 귀에 익숙해졌다. 그러나 말로만 잘 하고 실제로 실천 못하는 것이 바로 마음 비우기가 아닌가!
언제부터인가 “그래 다 비우자!” 했건만 마음은 계속 무겁기만 했었다. 그 무거운 마음이 아파올 때는 몸이 아픈 것보다 더욱 통증이 심했다. 아마도 마음은 쉽게 가벼워지지 않고, 아무리 아파도 끄떡도 하지 않는 특성을 파악할 수 있었다. 정말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마음이었다. 한 욕심과 싸우고 나면 또 다른 욕심이 고개를 들었다.
삼사 년 전부터 한 동안 간첩도 아닌데 불안에 떨며 시간에 쫓기고 스트레스에 짓눌렸었다. 그 후 “부자 되세요.”라는 신년축하 인사 때문에 부자가 되고 싶어 했다. 돈 냄새만 나면 그 곳으로 쫓아가다 보니 마음은 지치고 몸은 점차 마음을 따라 무겁고 찌뿌둥하기만 했다.
몸보다도 마음의 다이어트가 필요했다. 무거운 어깨에 짓눌린 마음이 불쌍하기도 했지만 내 정신력으로도 감당이 안 되는 마음이 정말 얄미웠다. 보는 것, 듣는 것, 냄새 맡는 것, 만지는 것마다 모두 마음에 점 찍고, 담고, 채워 넣으려 하니 언제 마음이 비워질 수 있었겠는가!
그 당시 밖으로만 치닫는 마음의 성질에 맞서 싸울 무기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눈 감고 귀 막고 살 수는 없겠지만 눈으로 듣고 귀로 보는 연습을 필요로 했다.
단순해지고 무덤덤해지는 만큼 마음의 무게는 가벼워 져 갔다. 지식 쌓기에만 몰두하던 무거운 머리 속에도 한 동안 책을 멀리하고 휴식을 주었다.
그리고 몇 가지 구체적으로 경제적인 헐떡거림을 멈추기 위해서라도 행동으로 옮겨 실천한 것들이 있었다. 신용카드는 한 장 이상 쓰지 않고 통장의 숫자를 줄이는 것으로 시작했다. 월말마다 수북이 쌓이는 청구서가 줄어들도록 최소한으로 살았다. 또한 이미 만들어진 인연은 어쩔 수 없다 하여도 자발적으로 더 이상의 ‘인연 만들기’는 피해 왔다. 얽히고설키는 인연들이 시간이 지나며 줄어들었다.
여기저기 모임을 줄이고 보니 굳이 만나지 않아도 될 사람들도 많았다. 난 그 시간을 운동과 글쓰기 연습으로 돌렸다. 이런 다이어트를 하고 보니 몸도 마음도 훨훨 날아갈 것처럼 한결 가볍게 살 수 있었다.
나의 책상 위에 붙어 있는 생활 규칙이 있다. 써 왔던 글에서 옮긴 ‘자유자재, 깃털처럼 살기’이다. 그리고 매일 그 가운데 열 가지만이라도 한다. 처음 시작은 ‘억지로’였지만 지금은 하고 나면 기분이 상쾌해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몸과 마음이 동시에 가볍고, 자유롭고, 느긋하고, 넓어지는 처방전이기도 하다.

마음의 기지개 펴기-“자주 혼자 있는 시간을 만드세요.”

눈 감아 보기-“바깥 것들로부터의 유혹을 잠시 떨치기 위해서라도.”

호흡 길게 하기-“조금 침착해지며 살아 숨쉬는 사실 확인하기.”

심장 박동소리 듣기-“생전에 들어 보지 못한 소리가 나네. 아 내가 살아 있구나. 심장아! 고생한다. 움직여 줘서 고맙다.”

물 한 모금 먹고 하늘 한번 쳐다 보기-“진달래 먹고 물장구 치고, 그런 노래가 떠오르네요. 하루에 하늘을 한 번씩만 쳐다봐도 마음이 시원해 져요.”

잠시 멍하니 있기-“요동치는 마음을 진정시켜 줘요. 마음만 평화로워진다면 모든 일이 잘 풀려요.”

벽 마주하고 앉기-“내 마음이 다 거기에 반사되어서 보여요.”

그냥 웃어 보기-“좋았던 일을 떠올려 비실비실 웃어 보자구요.”

뒤로 걸어 보기-“안 하던 짓 한 번 해보는 것도 좋지요. 시계바퀴를 뒤로 돌리듯이.”

아이들 재잘대는 소리 들어보기-“하나도 시끄럽지 않아요. 바로 이게 사는 거구나 할 거예요.”

아랫목에서 게을러 보기-“방콕, 어떻게 되든 한번 뒹굴어 보자구요.”

조금 느리게 움직이기-“시간이 좀먹지 않아요. 여유가 생기지요.”

좋아하는 단어 떠올리기-겸허, 기도, 참회, 성찰, 평안, 고요, 적막, 백조, 호수, 실개천, 하얀 솜털, 날개, 껴안기, 푸른 하늘, 아카시아 향기, 어린아이의 미소, 엄마 손, 잠든 아기 모습, 휘파람, 연못, ‘호호호’ 하는 여자 웃음소리, ‘하하하’ 하는 남자 너털웃음소리, 또 뭐가 있을까?

가장 따듯한 풍경 떠올리기-솜사탕, 목화솜, 엄마 젖무덤, 소 울음소리, 졸졸 흐르는 시냇물 ….

마음 덜 쓰기-“지금 마음이 힘들어해요. 잠깐 걱정을 놓으세요.”

잠시 침묵하기-“말은 필요 없어요. 그러면 내가 내 안으로 집중하게 되요.”

잠깐 보지 않고 듣지 않기-“마음이 집중하면 마음만으로도 보이고 들리고 해요.”

뭐든지 잠시 수용하기-“반사작용, 즉각적인 반응, 판단을 잠시 보류하세요.”

조금 체념하고 망각하는 연습하기-“다 그런 거야. 그리곤 까먹으세요.”

관념 쪼개기-“머리 속의 저장된 파일을 모두 삭제해 버리세요. 그리고 밖으로부터 입력되는 것을 잠깐 차단하세요.”

자그마한 것에도 감사하기-“기도가 저절로 나오네. 난 복 받은 인생이야.”

여유 만끽하기-“한 번에 하루만 살고 하루에 한 가지만 하자. 시간아! 너 먼저 가려마. 난 천천히 가련다.”

순간순간 경험해 보기-“사는 건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뿐, 뭘 하든 마음이 깨어 있으면 순간이 행복해요.”
독자 분들의 신년계획에도 위에 있는 몇 가지를 추가해 보면 어떨까요? 밑져야 본전인데 한 번 파격을 시도해 보면 세상이 달라 보이겠지요. 조금 느리게, 조금 가볍게 올해는 잠깐 쉬어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