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寺의 향기] 고양군 흥국사

古寺의 향기

2007-10-02     관리자

 [1]위치와 창건연기 

  신라 문무왕 1년(661) 원효대사의 창건으로 전해지는 흥국사(興國寺)는 창건 당시의 이름은 흥서암(興瑞庵)이라 하였다. 
  행정구역이 경기도 고양군 신도읍 지축리 한미산(漢美山)에 위치한 이 사찰은 긴 역사와는 달리 일반에게는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은 사찰이다. 
  서울 구파발에서 국립공원인 북한산(北漢山)쪽으로 지방국도를 따라 약 2km를 가면 왼편에「흥국사 입구」라는 표지판이 나온다. 북한산 계곡에서 흘러 나오는 물이 모여 창릉천(昌陵川)을 이루고 이 창릉천은 이 사찰의 입구를 가로질러 흐른다. 이 내를 건너 도보로 약 1km 정도 올라가면 천년 고찰의 흥국사는 조용히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 역사 깊은 고찰을 생각한다면 높은 산, 깊은 골짜기, 이름 있는 산에 위치하고 가람(伽藍)도 매우 큰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이러한 곳은 현대에 와서는 국민 관광지 내지 유흥지로 개발되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으로 알려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본래 사찰 고유의 수행처로서의 환경이 퇴색해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흥국사는 주변에 북한산을 가까이 하고 있으면서도 창릉천을 경계로 하여 나즈막한 산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고, 수령을 알 수 없는 고목들, 우거진 숲, 사찰 정면에서 멀리 바라보이는 북한한 봉우리의 기암들이 철따라 바뀌는 등 주위의 경관이 매우 아름다우면서도 고요하고 한적하다. 
  그래서 일찍이 원효대사는 신라가 한창 삼국통일의 위업을 진행하고 있을 때 국운의 상서로운 기운이 일어나라는 뜻에서 이곳에 흥서암(興瑞庵)을 개창하였으리라. 또한 앞에 우뚝 솟은 웅장한 바위산을 바라보며 상서가 끝없이 발현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수행터를 삼았는지도 모른다. 

  [2]사찰의 중건, 중수 

  오랜 세월의 흐름에서 긴 역사를 이어오면서 수차의 중건 중수가 있었으리라 짐작되지만 이 사찰의 역사는 구전(口傳)에 의할 뿐, 기록은 안개 속에 묻혀 버렸다. 
  조선조 제21대 영조(英祖,1724~1776)대에 들어서면서 왕실과의 깊은 인연으로 오늘의 흥국사 기본 당우가 이루어졌으리라 생각된다. 
  이곳 고양군 일대는 주위의 경관이 아름다워 폭군으로 알려진 연산군은 고을의 이름(고양현)을 폐하고 유행처로 삼은 곳이기도 하다. 현재 사적 제198호인 조선왕조의 릉(陵)인 서오능(西五陵: 昌陵, 明陵, 翼陵, 敬陵, 弘陵)중에서 홍릉은 영조의 원비(元妃) 정성왕후(貞聖王后) 서씨(徐氏)릉이다. 
  오늘의 흥국사가 있기 까지는 이 릉과 깊은 관계가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다. 그것은 현재 흥국사 주법당의 약사전(藥師殿) 현판은 영조의 친필로서 정성왕후의 왕생극락과 왕실의 평안, 국운의 융성을 기원하는 뜻에서 사찰을 중건하였고 사찰 이름을 흥국사로 개칭한 것으로 보아지기 때문이다. 

  [3]근세의 흥국사 

  영조 이후 왕실의 원찰(願刹)로서, 왕가(王家)의 기도처로서 또는 참선 수행터로서 조선조 말까지 계속된다. 
  격동기의 조선조 말, 고종(高宗)의 셋째 아들 이은(李垠)이 귀비(貴妃) 엄씨(嚴氏)의 소생으로 1897년 10월 출생하였다. 이 분이 비운(悲運)의 황태자(皇太子)로 알려진 영친왕(英親王)이다. 
  왕실에서는 황태자의 출생을 기뻐하고 황태자의 안녕(安寧)을 기원하는 뜻에서 흥국사에서 만일(萬日)기도를 시작하였다. 1929년(己已年) 봄 당시 흥국사 주지 회송(晦松)스님이 만일간의 기도를 마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비(碑)를 세웠는데 이 비석이 흥국사의 일주문을 들어서면서 왼쪽에 있어 찾는 이의 눈길을 끈다. 
  흥국사는 이러한 여러 가지 상황으로 미루어 보아 출가자의 수행 터라기보다는 왕실과의 밀접한 관계로 왕실의 기도처로서 참선 수행처로서 왕가의 원찰이었음이 분명하다. 

  [4]오늘의 흥국사 

  오늘날 흥국사는 시대의 변천에 따라 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포교의 발판을 마련하고자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수년전 부임한 주지 명해(明海)스님의 원력으로 그동안 퇴락한 도량을 일신하고 이 지역 포교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흥국사를 중심으로 인근의 사찰과 협력하여 어머니합창단을 조직하고 정기법회를 개설하여 부처님 가르침을 전하고 있고, 현재 가사불사가 한창 진행 중인데 오는 음력 8월 8일 회향을 목표로 많은 불자들이 동참하고 있다. 가사불사 회향 시에는 전 관응(全觀應) 큰 스님을 모시고 대대적인 법회를 열은 후 계속해서 이 지역 불법 홍포에 활성화를 기하고 재가불자의 수행도량으로 면모를 일신하다는 것이 주지스님의 설명이다. 
  1천 3백여 년 전, 원효 대사는 이 자리에 이르러서 우뚝 솟은 북한산의 웅자를 앞에 하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이윽고 이 자리에 석장(錫杖)을 꽂았다. 아마도 원효 대사 가슴에는 북한산과 같이 이 땅에 우뚝 솟아 대지에 진좌(鎭座)하고 뭇 중생을 섭수하는 불법의 웅자가 우뚝했으리라. 그로부터 시작된 흥국사는 천년을 이어오며 불법의 물줄기를 중생바다에 이어왔다. 
  오늘, 흥국사는 영겁으로 흐를 감로의 물줄기를 이어 오늘에 이르고 다시 이 땅에 불멸의 광휘로서 진좌하리라. 개산조 원효 대사의 가슴에 그려진 웅장한 뜻은 길이 이 땅 불자들의 가슴에 머무를 것이다. 
  국토를 빛낼 거룩한 성사가 함께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