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불교미술] 중국편 23.키질 14굴

중국편 23. 토끼본생과 운마왕(雲馬王)본생 -키질석굴 제14굴의 벽화-

2007-10-02     이기선

  이번에 소개하는 그림 역시「잡보장경(雜寶藏經)」제 2권에 있는「토끼가 제 몸을 구워 큰 선인에게 공양한 인연」과「육도집경(六度集經)」제 6권 정진도무극장(精進度無極章)에 있는 본생담을 각각 소재로 한 본생도이다.

토끼가 제 몸을 구워 큰 선인에게 공양한 인연

  옛날에 어떤 선인(仙人)이 숲 속에 살고 있었다. 그 때에 세상에는 큰 가뭄이 들어 산중의 과실들은 뿌리와 줄기 그리고 잎사귀 등 모두가 말라버렸다.
  그 선인은 어떤 토끼와 친하게 지내고 있었는데 하루는 토끼에게 말하였다.
 『나는 굶주려 지금 마을에 내려가 걸식하고자 한다.』
  이에 토끼가 말하였다.
 『가지 마십시오. 제가 당신에게 먹을 것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는 섶을 모아 놓고 다시 선인에게 말하였다.
 『제 몸의 밥을 받으시면 반드시 비가 내려 사흘만 지내면 꽃과 열매가 도로 살아나 캐어 먹을 수 있을 것이니, 인간 세상에는 가지 마십시오.』
  말을 마치자 곧 불을 섶에 질러 놓고 그 속에 뛰어 들었다.
  선인은 이것을 보고 생각하였다.
 『이 토끼는 인자하여 나의 좋은 벗이다. 내 먹을 것을 위해 능히 스스로 제 목숨을 버렸으니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선인은 몹시 괴로워하면서 구워진 토끼를 먹었다.
  토끼의 이러한 어려운 행과 괴로운 행 때문에 석제환인의 궁전이 진동하였다. 이에 석제환인은 토끼의 보시행을 살펴 알고 감동하여 곧 비를 내렸다.
  그리하여 선인은 계속 산 속에 머물며 과실을 따먹으면서 부지런히 정진 수행하여 마침내 다섯 가지 신통을 얻었다. <잡보장경> 제 2권

  그림을 보자. 굶주린 선인이 왼편에 앉아서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 뛰어든 토끼를 애통하는 모습으로 쳐다보고 있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보주형의 형태 속에 나타내고 그 아래에 토끼가 네 발을 가지런히 모아 태연한 자세로 불길 속에 앉아 있는 장면을 그림은 보여주고 있다. 비장한 장면을 화사(畵師)는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운마왕(雲馬王)의 본생

  예전에 보살이 말의 왕이 되니 이름은 구야(駈耶)였다.
  항상 바닷가에 있으면서 표류하는 사람을 건네어 주었다.
  그 때 바다 건너 저편 언덕에 음탕한 여귀(女鬼)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그 여귀들은 바다를 건너는 상인(商人)을 보면 곧 성곽(城廓)을 거짓으로 꾸미고 그곳에 아름다운 집과 맛있는 음식 그리고 노랫소리가 들리게 요술을 부리고는 자기들도 아리따운 여인으로 변하여 상인을 홀리었다. 이에 상인들이 여귀의 꾐에 빠져 술과 음악으로 즐기면서 여귀와 더불어 짝을 이루면서 머물게 되었다.
  이렇게 1년을 지내다가 음귀들은 싫증이 나면 홀린 사람들을 쇠 창으로 목을 찔러 그 피를 마시고 살을 뜯어 먹고 골수를 빨았다.
  운마왕(雲馬王)이 멀리서 이 처참한 광경을 보고는 그 사람들을 위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날아서 저편 언덕에 닿았다. 그리고는 큰 소리로 외쳤다.
 『누가 저 바다를 건너가고자 원하는가?』
  이렇게 세 번을 외치니 마침내 상인들이 듣고 기뻐서 말하였다.
 『항상 신마(神馬)가 있어서 위급한 난을 건네어 준다고 들었더니 이제 그 신마가 왔구나.』
  하고, 기쁘게 달려나가서「우리를 불쌍히 여기어 건네어 주시요.」하였다.
  말의 왕이 다짐의 말을 일렀다.
 『그대들이 떠나려 하면 여귀가 반드시 자식을 쳐들어 보이면서 그대들을 부르고 쫓아올 것이다. 만약 돌아보고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는 자는 내가 간 뒤에 반드시 귀신이 쇠 창으로써 목을 찌르고 피를 마시며 살을 먹을 것이니, 마음을 바르게 하고 착한 데 두어야 가히 목숨을 보전할 수 있으리라.
  무릇 돌아가고자 하는 자는 내 등에 타거나 갈기나 꼬리를 잡거나 머리나 목을 붙들거나 자유롭게 모두 서로 달려라. 그러면 반드시 살아 돌아가서 어버이를 볼 수 있으리라.』
  상인들 가운데 그 말을 믿은 자는 다 목숨을 보전하여 돌아가 그리운 육친을 만나 보았으나, 음란하고 미혹한 무리는 요귀를 믿다가 잡아먹히지 않은 자가 없었다.

  역시 그림을 보자. 말의 왕이 상인들을 구하여 바다를 건너고 있는 장면을 압축하여 묘사하고 있다. 능형(菱形)의 장식이 이 그림에서는 마치 이 언덕과 저편 언덕을 상징하고 있는 효과를 보여주며, 두 사람이 타고 있는 말의 발굽아래에 배치된 녹색의 바탕은 표현된 물결무늬로 미루어 보아 바다를 나타내고 있다고 하겠다. 요귀들이 상인을 홀리거나 또는 잡아먹는 장면은 묘사하지 않고 백마가 사람들을 태우고 훨훨 바다 위를 날아 그리운 고향으로 찾아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비약이 심하지만, 불모(不毛)의 사막을 건너 생명을 걸고 재화(財貨)를 구해 비단길을 오고 간 대상(隊商)들이 자신들의 모습, 또 돌아가고픈 고향 땅을 그리며 이곳 키질의 석굴 속에 이 그림을 그렸는지도 모르겠다. 청(靑)•백(白)•녹(綠)색이 멋지게 어울리면서 신비감을 더해주는데 특히 백마의 흰색이 주는 이미지가 그림의 내용을 한층 돋보이게 하고 있다.
  훨훨 거침없이 공간을 날아 이 언덕에서 자유와 평화와 안식이 있는 저 언덕에 이르는 길, 그것은「정진도무극장」의 인연설화가 보여주는 것처럼 끊임없는 정진의 끝에 얻어지는 것이지 결코 땀 흘리지 않고 거저 얻어질 수는 없는 것이다.

법구경 방일품을 보면……
게으르지 않음은
영원한 삶의 집이요,
게으름은 죽음의 집이다.
게으름을 모르는 사람은
죽음도 모를 것이고,
게으른 사람은 이미 죽음에
이른 거나 마찬가지다.
이 같은 생각을 환히 알아서
마침내 게으르지 않는 사람은
그 속에서 기쁨을 맛보고
성자(聖者)의 지혜를 즐기리라.

戒爲甘露道    放逸爲死徑
不貪則不死    失道爲自喪
慧知守道勝    終不爲放逸
不貪致觀喜    從是得道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