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현행자의 목소리] 봉정암 다녀와서

2007-10-02     실상원

수년 전부터 별러온 인연의 자락을 잡은 행운일까. 그토록 바라던 봉정암행을 하기로 하곤 잠도 설치며 아침 6시에 출발.
신심 깊은 불자님들과의 동행이라 한결 마음 놓이면서 초행의 발걸음이 혹시 누가 되지 않을까 염려를 한구석에 접어 놓고는 설레임으로 강따라… 산따라….
빗줄기가 일행을 반기는데 산행을 할 수 있으려는지. 황태 해장국으로 마음 녹이고 우의까지 채비를 하고 “자… 이제 시작입니다.”
백담사까지의 길을 걸으며 어느새 가을 한 가운데를 지나고 있음을.
어느 색 좋은 물감으로 뿌린들 저리 고울까…
흐르는 물 언저리부터 하늘 맞닿은 산 꼭대기까지 온갖 정성으로 단장한 자태에 걸음 멈추고 눈길 거둘 수 없어 자꾸 감탄의 큰 숨만 쉬어본다.
호우주의보와 다리 유실… 작은 산사태 때문에 계속 산행은 할 수 없다는데 어느 누구의 부름인가. 다시 이어지는 발걸음. 이제 오를 수밖에 없는 이유 하나로. 어디메가 봉정암인가. 저 하늘 끝 어디에 사리탑이 있단 말인가.
산허리마다 피어오르는 구름을 마주잡으면 덜 힘들까. 오르는 길마다 물 소리 더욱 거세지고 급기야는 이어지는 폭포로 걸음 멈추어 지친 다리 쉬게 하니 이것도 부처님의 뜻이던가.
그 아름다움의 자연이 있기에 몸 힘들어도 마음으로 가는 게 아닌지. 마지막 깔딱 고개라는 난행에 부딪혀도 반가운 건 그 고개만 넘으면 도착할 수 있다는 반가움이 앞서는 때문이겠지.
올라가 주위 둘러 보니 어느새 내가 구름 속에 있음을 일행 말고는 또 누가 알까.
여섯 시간 너머의 발걸음을 마흔 다섯 해가 되도록 해 보기나 했던가. 구름 속에 서 있는 경험을 해 보기나 했던가. 그것도 농익은 가을 한 가운데의 설악에서 하늘 마주잡은 땅끝을 밟고.
법당에 들어가 삼배로 찾아 뵈옴의 인사 올리고 산신각에 들어가 머리 조아리고 캄캄한 주위에 아랑곳없이 돌계단을 올라 사리탑에 경외심을….
저녁예불시간의 뜨거움은 드디어 해 냈다는 성취감 때문일까. 아니면 무언가 벅차오르는 설움 때문일까. 나오려는 눈물 참고 한 배, 두 배… 백팔 배.
어려운 여건 속에서 무한한 이기심으로 올라 왔다는 스님 법문에 입술 한번 꾹 다물고 고개 숙이며 외적인 불빛이 아닌 내적인 빛을 발하도록 하라는 말씀에 나도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설사 작은 빛이라도 나왔다 한들 스스로 꺼뜨리지는 않을까. 그리하여 그림자는 커녕 암흑인 건 아닌가. 이러한 의심조차 내 욕심이겠지.
버리라는데, 버리라는데….
네 시의 새벽 예불이 엊저녁보다 뜨거움이 없는 건 무엇 때문일까. 밤 사이 또 다른 오만이 숨어 들어온 건 아닌가. 참회로 백팔 배 마치고 다시금 감사의 기도 올릴 수 있음에 안도.
짧은 만남의 시간이 더 소중할 수밖에 없음은 가야 할 길이 또 있기 때문이겠지. 오를 때부터 무거웠던 발이 내리막에선 발걸음 떼기가 점점 힘들고. 다 버리지 못했기에 그리 무거움을 끌고 내려온 건 아닌지.
언제나 비울 수 있을까.
그래도 욕심에 곱게 물든 단풍잎 하나 주울까? 마음에, 눈에 이불 개듯 차곡차곡 개어 가서 나중에 펴 봐야지. 실비로 나뭇가지에 달린 빗방울이 보석 같은데. 저것도 넣어 가야지. 깨지지 않게 잘 넣어 가야지.
산허리 구름은 어쩌나. 내 마음 작아 다 담을 수도 없는데. 다음에 오면 내 반가운 만큼 또 반기어 줄까. 인연의 자락을 또 잡을 수 있을까.
고마운 불자님들의 마음을 감사의 인삿말로 대신하기엔 너무 작지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