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면

함께 사는 세상 이렇게 일굽시다

2007-10-02     관리자

세월은 항상 무심하게 흐르는 듯 올해도 어김없이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지마는 지난 여름 태풍 루사가 할퀴고 지나간 상처가 너무나 커서인지 풍성한 수확의 기쁨을 누려야 할 가을에서 답답함과 허탈감이 묻어 나오는 듯하다.
사상 최대라는 이번 태풍으로 인한 5조가 넘는 피해액은 단순집계일 뿐이고 사망 또는 실종 등 인명 피해만도 이백여 명에 달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산사태로 흔적마저도 찾기 힘든 조상 묘 앞에서 허탈해 하는 자손들, 1년의 농사 결실을 눈앞에 두고 고스란히 물 속에 잠긴 논과 밭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보는 농민들, 그리고 피붙이처럼 정 들여 키운 가축들을 손 쓸 겨를도 없이 떠내려보내고 그나마 남아있는 몇 마리조차 병들어 시름에 잠긴 축산 농가들의 슬픔 속에서 이 가을은 더 이상 풍성한 수확의 계절이 아닌 듯하다. 급기야 국가에서 극심한 수해지역을 국가 재난 지역으로 선포했다. 하지만 창졸간에 사랑하는 가족이나 삶의 터전을 잃은 수재민들에게 보다 더 많은 관심과 배려가 필요한 때이다.
눈을 돌려 도심을 바라보자. 서울역 부근 또는 공원에서 신문을 얼굴에 덮거나 혹은 깔고 빈 벤치에 잔뜩 구부린 채 누워 잠든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조금만 주의 깊게 살펴보면 이들의 주 거주지가 이곳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점심 때 쯤 파고다 공원 옆길이나 대학로 또는 청량리, 서울역 광장을 지나노라면 길게 늘어서 장사진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대부분 노숙자나 인생의 황혼기에 접한 사람들이 점심 한 끼를 배급받기 위해 서있는 줄이다.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사람들에게 여름은 그나마 지내기가 수월했다. 이제 날이 차츰 쌀쌀해지면서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 나라에서 겨울을 한데서 지내기는 어려운 일 아닌가. 그렇다고 여름에 동가식 서가숙하며 지낸 이들에게 겨울이라고 따뜻한 보금자리가 생긴다는 보장이 없다. 실로 이들에 대한 배려는 이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주어진 숙제일 수 밖에 없다.
1987년 WTO에 가입하면서 우리 나라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1차로 농수산물 시장의 개방으로 신토불이 운동에도 불구하고 이제 우리들의 먹거리의 7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한다고 한다. 공산품의 개방은 국적을 불문하고 어떤 제품이든지 국내에서 손쉽게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금융, 유통 부문의 개방은 월마트, 까르프 등 대형마트들의 진출로 인해 동네 구멍가게까지 침몰하는 등 모든 부문에서 전 세계를 상대로 한 무한 경쟁의 시대로 진입하게 되었다.
그 와중에 닥친 1997년의 I.M.F는 우리 사회에 중산층이 붕괴되면서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같은 시대를 살면서 한 쪽에서는 넘쳐나서 흥청거리는데 또 다른 한편에서는 끼니 하나 해결하기 어려워 때만 되면 곳곳에 줄을 서야 하는 지경인 것이다.
하물며 그들 가운데 비단 노숙자뿐만 아니라 노인들도 적잖게 있고 보니 효와 예를 중시하던 우리 나라의 현주소가 여기인가 싶어 마음이 더욱 무거워진다.
물론 국가적인 차원에서 기업의 경쟁력을 제고하고 고용을 창출하여 많은 실업자들을 구제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복지예산을 강화하여 소외된 계층에 대한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
하지만 우선 그 이전에 보리고개를 넘기던 시절에도 우리네 어머니들이 쌀 한 숟가락씩을 아껴 바로 내 이웃을 도와주던 시절의 나눔의 정신, 역지사지의 정신을 돌이켜볼 때라는 생각이 든다.
다들 아는 이야기이지만 불교는 자비의 종교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비의 실천이 곧 보살도이다. 보살도란 경전 속의 거대한 담론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나눔과 역지사지의 정신을 실천하는 일일 것이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면 상생의 길이 보인다. 더불어 같이 사는 일이야말로 자리이타의 보살행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나’로부터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이다. 조금만 관심을‘나’로부터‘사회’로 돌려본다면 우리가 상생을 위해 실천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는 쉽게 알 수 있다.
지금처럼 나라 전체가 수해복구로 땀 흘릴 땐 각자가 형편에 따라 보살도를 실천하자. 물질을 가진 자는 물질로, 시간을 가진 자는 시간으로. 나눔으로써 더불어 살 수 있다.
나눔은 곧 보살행이다. 역지사지의 정신 역시 멀리 있는 일이 아니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노약자를 위해 젊은 사람이 자리를 양보하는 일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누구나 다 나이가 들고 나이가 들면 기력이 쇠해지기 마련 아닌가. 운전 중 만나게 되는 구급차를 위해 누군가에게 닥쳐있는 위급한 순간을 길 위의 모두가 함께 도와준다는 마음으로 찻길을 내주는 것 역시 역지사지의 정신일 게다.
그리고 일정한 공간에서 주차 시에도 남을 배려하는 마음은 필요하다. 특히 우리 나라처럼 주차공간이 협소한 주차장에서는 상대방 차의 운전석 문을 열 수 없도록 너무 딱 붙여 세우진 않았는가. 두 대 주차할 공간에 차를 엇비스듬히 세워 한 대밖에 주차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닌지 살피는 일 역시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크고 작은 수 없이 많은 분쟁 속에서 하루도 잠잠한 날이 없다. 그러나 이렇듯 입장 바꿔서 생각해보고 약자의 처지를 배려해 주는 마음을 가진다면 우리 사회는 보다 더 따뜻하고 맑고 향기로운 사회가 될 것이다.
조금 덜 쓰고, 조금 덜 편하고, 조금만 덜 갖는 그 지분을 다시금 사회로 환원한다면 적어도 지금보다 고통받는 사람들이 훨씬 줄어들 것이다. 그 작은 변화를 지금 여기에서 나와 우리로부터 시작해보는 것이다. 불국토란 누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