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경(恭敬)과 하심(下心)

2005-05-03     관리자

[공경(恭敬)과 하심(下心)]



사람은 누구나 잘 나고 싶고, 상대의 잘남을 본능적으로 용인하지 않습니다.
사람 사이에 갈등과 불화가 그치지 않는 것도 이런 본능도 한 몫할 것입니다.


이 반면, 잘나고 싶은 자기 마음을 항복 받고
자신을 낮추는 것을 불교에서는 하심(下心)이라 하며,
대단히 강조하는 삶의 덕목입니다.


"수행자는 모름지기 하심을 배워야 한다"는 말은
절에 가면 언제든 쉽게 들을 수 있는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불자들은 하심을 하기 위해 대단한 노력을 합니다.


수천, 수만 배의 절을 하는 것도 굴심(屈心)하여 하심하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하심이 잘 되지 않아 많은 분들이 고민하곤 합니다.
하심이 되지 않는 이유는 많겠지만,
제가 보기에 주된 이유는
하심이 우리의 밝은 본성과 맞지 않는 방향이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사람이 겸허해 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상대방을 공경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을 낮추는 방법은 우선 문제 중심이 '나(我)'에 있습니다.
그 반면 공경은 '남(他)'을 먼저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하심은 하면 할수록 관심이 '나'에게 향하며,
공경은 하면 할수록 관심이 '타인'을 향하게 합니다.
"오늘 내가 하심했던가?"가 아니라,
"오늘 남을 공경했던가"가 되는 것입니다.


또 하심은 지향하는 방향이 작아지고 낮아지는 것입니다.
그 반면 공경은 지향하는 방향이 더 커지고 더 높아지는 쪽입니다.


하심은 얼굴을 밑으로 내리고 길을 걷는 것이지만,
공경은 얼굴을 더 높은 곳으로 향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심은 자신을 부정하고 좁은 울타리에 가두는 것이지만,
공경은 더 큰 세계로 나를 향하게 하는 것입니다.


비유하면 돈을 벌 때 자기 중심적으로 극도의 내핍을 향하는 것이 하심이라면,
나의 세계를 벗어나 더 큰 투자로 나아가 돈을 버는 것이 공경이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하심은 소극적, 수동적, 소아(小我) 지향적인 가르침인 반면,
공경은 적극적, 능동적, 대아(大我) 지향적 가르침입니다.


보현행원에서는 하심을 가르치지 않고 대신 공경을 가르칩니다.
그것은 행원이 생명을 살리는 더 넓은 세계, 더 밝은 곳, 대 긍정의 세계로
언제나 우리를 이끌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행원은 그 어떤 경우도
우리의 밝은 생명을 제한하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예경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을 공경하라!
그러면 하심은 저절로 될 뿐 아니라 너도 성장하고 상대도 성장한다!
이것이 행원이 가르치는, 소위 win-win game 입니다.


공경이 더 쉬운 또 하나의 이유는,
우주의 흐름이 '나의 성장, 나의 확대'이기 때문입니다.
태양이 수없이 은하를 도는 이유도,
낮과 밤이 수없이 뜨고 지는 이유도,
모두 생명의 성장, 생명의 확대로 이 우주가 나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죽이고 나를 부정하는 하심보다,
나를 긍정하고 나를 더 큰 세계로 나아가게 하는 공경이 더 쉬운 것입니다.



하심이 되지 않아 오늘도 힘들어 하는 분들께,
저는 보현행원의 '공경의 가르침'을 공양올리고 싶습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시아본사아미타불


普賢合掌


*하심이란 결국 [내 잘난 것]이 있기에 나오는 소리지요.
잘난것 하나도 없는 분은 [하심]할 필요가 없지요.
그러므로 [하심]을 강조할땐 필연적으로 [내 잘난 맛(아상)]을 동반하는것입니다.
그러니 밝은 마음이 아니지요.
밝은 마음이 아니니 수행자체가 어두워질수밖에..


그반면 공경은, [내 잘남]이 설사있더라도 아무상관없습니다.
하심은 내 잘남과 공존할수없지만,
공경은 내 잘남과 공존할수있습니다.


공경속의 내 잘남은 빛이 모이는것과 같이 더 밝은 세상이 창조됩니다.
진실로 공부잘한 수행자들은 하심하지 않습니다.
서로 사모하고 공경합니다.
그야말로 공경은, 윈-윈하는 법이지요...*^*^*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