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문화 산책] - 산신도(山神圖)

불교문화 산책- 산의 수호신

2007-10-01     관리자


Ⅰ. 머리말
산은 생명의 시작이자, 인생의 종착지이다. 보통 사내를 ‘사나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산에서 온 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산[生] 사람은 산에서 사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삼신할미가 점지하여 산신의 보살핌 아래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산신신앙은 단군신화로부터 시작된다. 삼위태백(三危太伯)이니 단군왕검(檀君王儉)이 그것인데 태백산에서 제단을 모시는 군주라는 의미이다. 고구려의 주몽, 신라의 박혁거세, 백제의 견훤, 고려의 왕건, 조선의 이성계 등은 모두 건국영웅으로 모두 산신과 연관되어 있음이 『삼국유사』, 『고려사』, 『세종실록』, 『동국여지승람』 등에 기록되어 있다.
원시종교로 출발한 산신신앙은 불교에 흡수되는데, 상위문화에 하위문화가 흡수되는 것이 아닌 우리 문화의 특수성에 기인하는 것이다. 뿌리깊은 토착신앙에 의해 한국적인 불교로 발전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유교, 기독교가 토착화되어 한국적인 형태로 재해석되는 실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Ⅱ. 봉안장소
사찰 내에 있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두 가지 경우가 있다. 산신은 지역수호신으로서 산뿐만 아니라 주변의 지역을 관장하는 신으로 여겨졌다. 산신은 일반적으로 신성한 노인으로 그려지는데, 산신신앙이 신선사상과도 관련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사찰의 산신각은 고유신앙의 수용 차원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민간의 신앙이 두터운 칠성(七星)도 함께 모셔졌다. 명칭은 산신각·칠성각(七星閣)·삼성각(三聖閣) 등 일정하지 않다. 현재 불교에서는 산신을 가람수호신과 산 속 생활의 평온을 지켜주는 외호신(外護神)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 대부분의 사찰에는 산신각이 있으며, 자식과 재물을 기원하는 산신기도가 많이 행해지고 있다. 산신각은 불교 밖에서 유입된 신을 모시는 건물이기 때문에 전(殿)이라 하지 않고 반드시 각(閣)이라고 한다.

Ⅲ. 우리나라 산신도의 역사와 특징
산신도는 불화의 한 종류로 호랑이와 신선을 그린 그림을 통칭한다. 산신은 산을 지키고 담당하는 신으로 그를 받들어 제사지내는 일을 산신제 또는 산제(山祭)라 한다.
『구당서(舊唐書)』에 보이는 백제의 산신신앙을 비롯하여 『삼국유사』에 보이는 신라의 오악삼산신(五岳三山神), 그리고 조선시대에는 사악신(四岳神)과 산처닌(山川神) 등을 매우 중요하게 여겨 국가에서 제사를 관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산신신앙은 모든 자연물에는 정령이 있고 그것에 의하여 생성이 가능하다고 믿는 원시신앙인 정령신앙에서 비롯된 것이다.
도상은 백발수염의 신선과 호랑이가 아주 친근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으며, 특히 맹수인 호랑이가 해학적으로 묘사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공양물을 두 손에 받쳐들고 노인을 봉양하는 동자가 등장하는 경우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은 노인과 호랑이만을 그리고 있다. 산신도는 원색과 단선이 기본이 되어 사실적 묘사에 치중하면서도 일종의 초현실적인 환상이 깃들어 있다.
산신도가 지니고 있는 또 하나의 특징은 ‘산신’주변에 늘 소나무가 그려지는데, 분위기가 유사한 독성도(獨聖圖)에 소나무가 등장하지 않는 것과 비교된다. 독성은 불도(佛道)를 스스로 깨우쳐 높은 경지에 도달한 도인을 지칭하는 것으로, 사찰의 독성각에 단독으로 모셔지거나 삼성각(三聖閣)에 산신도와 함께 봉안되기도 한다.
독성도를 보면 독성이 깊고 그윽한 산골짜기를 배경으로 혼자 앉아 있다. 분위기는 산신도와 비슷하지만, 소나무가 없다. 이것은 산신도의 소나무가 특별한 의미 상징물로 그려진 것임을 알려준다. 산신도의 소나무는 우주목의 성격을 지닌 신수다. 네팔에서는 9월에 인드라 축제라는 것이 있다. 첫날에 카트만두 ‘다르바르’ 광장에 큰 소나무 기둥을 세우는데 소나무를 세우는 의미는 축제의 시작을 뜻한다. 이 소나무 기둥을 ‘인드라 도즈’라고 부르며, 축제 기간(1주일)동안 소나무 기둥을 카트만두 광장에 세워 둔다. 네팔인들은 소나무에 신령함이 깃들어 있다고 믿고 있으며, 이러한 사고는 산신도에 등장하는 소나무와 뜻을 같이하는 것이다.

Ⅳ. 맺음말
현존하는 산신도의 화기를 분석해 보면 대부분 화승(畵僧)들이 주도적으로 제작에 참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산신은 우리 민족 정서에 누누이 이어져 내려온 민족신앙이며, 스님들에게도 거부감 없이 그릴 수 있는 신앙의 대상이었기에 화승에 의한 제작이 가능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