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無)에서 시작하는 불교만화

불교와 21세기

2007-10-01     관리자

바야흐로 만화의 시대가 왔다. 만화는 영화, 서적, 잡지, 이벤트 사업, 캐릭터 사업, 인터넷 등 모든 분야와 결합하여 새로운 사업 또는 예술로 승화하여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에게 절대적인 카리스마를 갖는 매체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이는 만화분야의 참혹한 옥고를 치른 대가라 할 수 있다. 과거 어두운 시절, 구석에서 몰래 보는 만화는 저질의 불량스러운 마구니 같은 존재로 치부되어 왔고 만화가들은 굶어가며 처절한 싸움을 해야 했다. 이러한 시각에서 본다면 이 같은 오늘날의 결과는 우리 만화계에 있어서 눈물겨운 것이라 할 수 있다.
불교만화계 역시 예외는 아니다. 아니 손에 겨우 짚을 정도이니 불교계에서 만화란 존재하지 않는 분야이며 그 결과물 또한 전무하다고 평가하고 싶다.
가장 먼저 필자가 접했던 불교만화는 1986년에 나온 『Zen Co-mics』라는 책으로 ‘스님들이 보는 만화책’이라는 부제가 붙은 요안나 살라잔의 작품이었다.
선(禪)에 관련된 컷만화로 그림이 상당히 초보적이긴 하지만 담백하고 간략한 대사로 선의 주제를 잘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었다. 처음 불교에 입문하면서 선물 받은 책이라 더욱 인상적이었다.
1989년 이후 간경도감이나 불교만화사에서 불교만화책이 출판되기 시작하였다. 『불타 석가모니』 『진묵대사』 『자장율사』 등 큰스님 이야기나 『화엄경』 『만화 백유경』 『만화 반야심경』 등 경전 만화가 주류였다. 일반 만화계도 어려운 시기에 이런 불교만화책을 발행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선구적인 발자취라고 생각된다.
최근에는 『지장경』이라는 전면 칼라의 고급 만화책이 출간되었다. 잡지사와 신문사에서도 만화 지면을 늘리기 시작하였고 연재된 만화를 묶어 책으로 출판하였다.
불교 애니메이션 부분에서 가장 히트작으로 손꼽히는 것이 KBS에서 방영되었던 ‘날아라 슈퍼보드’라 할 수 있다.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그 후 1999년 2월에 ‘철인 사천왕’이라는 불교만화영화가 개봉되었다. 내용은 삼장법사의 유훈을 받들어 지구를 수호하는 4인의 변신 로봇 ‘사천왕’의 이야기이다.
총 15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되었고 한국 최초 100% 디지털 애니매이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큰 호응을 얻지는 못하였다. 현재 마무리 작업에 들어간 마고 21의 ‘오세암’이라는 작품은 오랜만에 제작되는 불교만화영화라 기대가 크다.
이렇듯 불교와 인연있는 만화가나 만화계의 관계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불교만화에 대해 깊이 고려해 보게 된다. 물론 사업적인 성공은 염두에 두지 않는 순수한 마음이 그 시작이다.
불자이며 만화가인 필자 역시 예외는 아니다. 불교만화 관련 전문 기관이 없음을 알고 구체적인 계획이나 재원 마련없이 아이디어만으로 2000년 10월 교계 최초라고 할 수 있는 영남불교대학 불교만화연구소를 개소하였다.
불교만화책 출판, 캐릭터 티셔츠 개발, 불교만화영화상영회, 대구 지하철역에서의 불교만화전시회, 전국불교만화공모전 등 1년 반 동안 머리 속에 있는 일부분의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겼다.
이는 어린이를 위한 실험적인 순수 포교행사들로 사업적인 부분은 철저히 외면되었다. 생각보다 훨씬 외로운 싸움이긴 했지만, 언론의 호응도 좋았고 젊은 불자들은 상당히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었다.
불교만화영화상영회는 400여 명의 어린이·청소년들이 찾았고, 전국불교만화공모전 행사에는 600여 편의 작품이 응모되었으며 시상식에는 500여 명의 어린이·청소년들이 참여하였다.
이는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불교만화 행사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지하철에서의 불교만화전시회 역시 신선한 행사로서 다른 지하철역에서 개최 요청이 들어올 정도였다.
어린이·청소년 법회의 저조한 참여도로 본다면 이 같은 불교만화 행사는 좋은 포교사례가 되리라 생각한다. 처음 찾은 사찰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어린이들에게 불교에 대한 좋은 인상을 심어주는 것이고 이런 기억은 불자로 성장할 가능성을 심어준다.
불교만화계의 가장 현실적인 문제로 불교만화에 대한 어른들의 경직된 관념을 들고 싶다. 불교만화에는 사찰이나 스님이 등장해야 하고, 경전 이야기가 나오며 교육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개념 앞에서의 불교만화는 제한적이 될 수밖에 없다.
두 번째 문제점으로는 대상의 부재이다. 어린이·청소년들에게 있어 불교만화는 모든 오락에서 제외되어 있다는 점이다. 또 법회 참석하는 소수의 어린이들도 일반 만화와 같은 수준의 불교만화를 기대하기 때문에 그림체가 유치하거나 재미없거나 하면 가차없이 던져버린다. 이 점에 대해 기획자들은 심사숙고해야 한다.
세 번째 문제로는 불교만화를 불사의 하나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불교만화를 필수적이라기보다는 선택적인 분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종단이나 사찰, 단체, 개인 등 모두 그저 여유가 있을 때 고려되는 최후의 분야로 인식되고 있으며 미래 불자들에 대한 고려는 미래의 일일 뿐이다.
네 번째는 불교만화를 이끌어가는 직접적인 관계자들의 기획력과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한때 많은 불교만화책을 발행하고자 노력했던 우리 선배들의 노력이 결국에는 큰 빛을 보지 못하고, 불교만화가 오히려 손실을 보는 힘든 포교사업으로 인식되어 있는 점도 신심만으로는 이겨낼 수 없는 이러한 전반적인 현실 때문일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