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연히 떠날 수 있다면

특집/ 무소유

2007-10-01     관리자

아미타 호스피스회 정토마을새벽이 열리니 태양이 떠오른다. 파아란 숲 생명의 날개를 퍼덕이며 오월을 즐기는 새들의 지저귐 속에 아카시아 향기가 허공에 가득하다.
하루아침에도 몇 번이고 모여졌다 흩어지는 저 구름…. 하루 한낮 절에도 수없이 오고 가는 생명의 울음소리…. 제법 이 공허함을 뻐꾸기가 노래한다.
바람 속의 등불 같은 이 목숨. 오랏줄로 착각하여 두 손으로 움켜잡고 천년만년 살 것처럼 탐욕의 노예가 되어 버둥대는 밥통 큰 사람들….
잘 사는 법도 잘 죽는 법도 모르는 채 불을 좇아 날아드는 불나방처럼 물질을 좇아 허둥대다 죽음 앞에서 절규하면서 찬란한 물질 문명의 불빛 아래 쓰러져 가는 수많은 생명들의 탄식.
깊은 밤 큰 병원 병실마다 밝혀진 환한 불빛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찢어지는 육체의 고통과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너무나 두려워 두 눈을 크게 뜨고 온 밤을 꼬박 지새는 사람들이 차마 끄지 못한 불빛인 것을….
지난 겨울 하얀 눈이 온 산을 덮고 눈꽃이 만산에 피어 정토마을이 눈 속에 묻혀 버린 날 앙상하게 말라버린 몸과 가격을 따질 수 없는 수십 가지의 약, 등산화, 등산복, 등을 싣고 정토마을 가족으로 오셨던 거사님. 어떻게 알고 오셨느냐는 질문에 거사님은 “인터넷 보고 살려고 왔습니다. 저는 꼭 살아나야 하니까요.”라고 한다.
휑한 눈빛에는 광기가 흘렀다. 이제 갓 50세, 서울 강남에서 자수성가하신 중소기업 사장님이신 거사님은 사업체를 친인척들에게 맡겨 놓으신 채 투병 중이셨다.
3개월 전 속이 더부룩하여 중앙병원에 갔더니 위암 말기이며 전신으로 전이가 되어 아무런 치료를 할 수 없다고 진단을 받으셨다. 3 개월이 지난 지금은 복수가 차고 먹지 못하여 그 모습이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눈 감고 누우면 영영 깨어나지 못할 것 같다고 하시며 온갖 것들을 옆구리에 끼고 깔고 앉아 밤낮 없이 몇 날 며칠 밤을 꼬박 세우시며 계속 토하시다 며칠 후 증상조절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를 붙잡으시고, “스님 사는 데 너무 바빠서 눈이 이렇게 아름다운지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하였습니다. 스님 저 좀 살려주세요. 병원 의사들은 나를 못 살린다고 하니 부처님의 은덕으로 살 수가 없을까요. 옛날 우리 어머니가 절에 열심히 다녔는데…. 제가 나아서 일어나면 스님께서 하고 계시는 일 열심히 돕겠습니다. 내가 죽으면 우리 회사는 금방 부도가 날 것이고 우리 가족들은 거지꼴이 되고 말 것입니다. 죽을 수 없습니다. 왜 하필이면 제가 죽어야 합니까.”라고 한다.
거사님은 한 가닥 남은 힘을 다하여 분노하였다.
“어려운 시절 다 넘기고 이제 살만한데 죽어야 한다구요. 내가 벌어놓은 돈 한 푼도 제대로 써 보지도 못하고 집, 빌딩, 회사 어느 것 한 가지도 정리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죽습니까?”
이불을 움켜쥐고 오열하시던 거사님, 3개월 동안 계속 토하시고 물 한 모금 제대로 못 드시던 분께서 정토마을에 오신 이후에 미음과 과일즙, 떡 등을 조금씩 씹어 드시면서 행복해 하시며, “스님 음식을 목구멍으로 삼킬 수 있다는 사실이 이처럼 큰 행복이고 기쁨인지 몰랐습니다.”라며 감격해 한다.
계속 음식에 집착하시면서 실낱같은 목숨을 쇠줄인 줄 알고 매달리는 거사님의 가엾고 서글픈 모습에서, 그리고 임종 과정을 지켜보면서 물질의 허망함이 뼛속 깊이 스며들었다.

죽음!!!
죽음을 동반한 삶
풀잎에 맺힌 이슬처럼
바람 앞에 떨고 있는 낙엽처럼
그렇게 머물다 그렇게 가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인 것을
알아차리는 이 몇이나 될까.

텅 빈 허공 채우는 것이
사람들의 허욕을 채우는 것보다
나을 것 같으니
비고 비어 텅 빈 삶의 그릇 속에
새털처럼 가벼운
죽음이 담겨짐을….

정토마을에 오신 지 20일 만에 거사님은 임종을 하셨다. 임종을 지켜보시던 보살님이 이게 죽는 것이냐고 소리치며 울부짖는 소리가 귓전을 맴돈다.
“왜 돈으로 안 되는 것이 있단 말입니까. 왜 돈으로 안 된다는 것입니까. 돈이면 무엇이든 다 되는 세상이 아닌가요. 이렇게는 못 죽습니다.” 몸부림치는 가족들을 남겨 두신 채 임종을 하셨다. 뜨고 계신 눈을 차마 감지 못하시는 거사님. 싸늘히 식어 가는 무정한 육신….
땅을 깔고 누워 제법 무아의 노래를 우리에게 들려 주셨건만, 번개같이 빠른 세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죽음을 볼 때마다 늘 이 마음이 일어난다.

마음을 내면 낼수록 힘겨워지고
쌓으면 쌓을수록 무거워지는 삶
무소유의 삶으로 가볍게 머물다가
홀연히 떠나갈 수 있다면
충만한 기쁨의 삶이 아닐까.


무 상

가을 하늘 저 기러기
서산을 향하니
무상 노래 허공에 흩어지네

실낱 같은 여린 목숨
쇠줄인 줄 알았더니

속절없는 한 세월
숨 한번 몰아쉬니

산 세상
죽을 세상
모두가 허상일세.
무정한 죽음 앞에
사대는 허공에 꽃이 되고
외로운 혼만이 쓸쓸히 떠나네
인생무상 한 세월
한 닢 낙엽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