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정산 범어사 사찰환경의 보존

특별기고

2007-10-01     관리자

사찰은 과거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삼세(三世)의 도량이자 이 시대의 정토이다. 불교라는 종교로서뿐만 아니라 후손들에게 물려줄 유산으로서의 가치가 매우 크다. 종교적 자연적 문화적 유산을 간직한 이 시대의 보고(寶庫)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찰환경이 유산적 가치와 기능이 도외시된 채로 파괴되어 가고 있다.
지난 10여 년 동안 크고 작은 사찰환경문제가 발생된 것이 100여 건이 넘으며, 최근에도 경부고속철도 건설로 인한 자연의 훼손과 사찰환경의 파괴(천성산, 금정산 등), 북한산 관통도로 건설, 통영 미륵산 케이블카 건설 등 국가적, 지방적 규모의 크고 작은 사업으로 인하여 사찰환경이 중대한 위협에 처해 있다.
그러기에 1600여 년간 이 나라의 산과 자연을 지켜온 불교의 가르침과 생활양식을 드러내어 지금의 이 시점에서 지키고, 후대에 온전히 물려줄 본분사가 이 시대의 화두로서 대두되고 있다.
불교가 우리 나라에 전래된 이후 산을 지키고, 가꾸어온 한국불교계의 입장에서 보면 최근 진행되고 있는 개발사업 중에서 사찰환경에 막심한 위협을 야기시키고 있는 중요한 현안 중의 하나가 경부고속철도로 인한 사찰환경의 파괴문제이다.
경부고속철도는 그 동안 가장 말 많은 국책사업으로서 정치적 결정에 의해 그 내용이 많이 바뀌어 왔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주요한 결정이 변경되어 왔으며, 특히 문화재보호와 관련된 경주우회노선의 변경은 특기할 만하다.
고속철도 전체 412km의 구간 중 46%인 189km가 산을 뚫고 지나는 터널구간임에도 그 동안 불교계에서는 침묵해 왔다. 그런 중에 지난 95년 금정산 관통노선에 대한 범어사의 문제제기와 작년부터 천성산 내원사, 그리고 북한산 관통도로문제로 인한 회룡사 등의 사찰 등에 의해서 사찰의 수행환경과 산지킴이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고 본다.
그런 시점에서 이번에 다시 추진되고 있는 금정산 고속철도통과문제는 범어사의 산문(山門)에 쓰인 ‘금정산 범어사’라는 금정산과 범어사의 정기를 끊는다는 정서적 측면의 중요성이 있다. 그러나 보다 근원적인 입장에서 볼 때 1300여 년의 호국도량으로서 산을 지켜온 한국불교의 본산인 종교적 성지를 파괴하는 행위라고 판단된다.
그 동안 금정산 범어사는 부산시민뿐만 아니라 한국불교의 정신적 고향으로서 충실한 역할을 담당하여 왔다. 불자들뿐만 아니라 일반시민들도 따뜻한 자연의 품안과 종교적 향기를 느끼고 살아왔다. 이런 과정에서도 지난 몇십 년 동안에 이미 크고 작은 개발로 인하여 산중의 사찰환경이 직간접적으로 많이 훼손되어 왔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경부고속철도의 금정산 통과로 인한 환경영향은 크게 소음·진동 문제, 경관 파괴 문제, 지하수 문제, 지질 문제 등이 제기될 수 있다. 기존의 고속철도건설공단과 학계에서도 그러한 관점에서 환경영향에 관한 연구와 조사를 수행하고 있다.
그런 입장에서 금정산 터널과 범어사 경내 계곡의 통과 문제는 온천장에 미치는 지하수맥의 영향과 지질적 안정성, 그리고, 소음·진동과 경관 훼손 등의 문제에 대해 허용한도 내에서 만족한다면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종교적·자연적·문화적 복합 유산을 간직한 전통사찰의 경우에는 해당사찰의 특수성을 고려한 환경영향과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판단된다. 그런 의미에서 금정산 범어사라는 이름에 걸맞는 사찰환경에 대한 평가를 수행하고자 한다면 종합적인 관점에서 종교적 성지로서뿐만 아니라 복합유산(複合遺産)을 간직하고 있는 특수성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러한 고려사항은 전혀 반영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찰이라는 종교적 특수성과 환경, 그리고 복합유산적 가치를 인정해준다면, 감히 종교적 성지인 경내지를 훼손한다거나, 수용하는 일은 이루어질 수가 없다.
그렇지 않아도 범어사의 경우에는 고찰로서의 사찰의 품격을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금정산 중턱까지 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경동아파트와 산복도로를 끼고 우후죽순식으로 들어선 요식업소들로 인해 이미 온전한 사찰의 분위기를 유지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문제시되었던 경동아파트 인근의 경내지가 수용되고, 다시 개발행위가 진행된다는 것은 천년고찰로서의 품격과 사찰의 온전한 수행환경을 위해서 전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고속철도건설공단의 말대로 사찰에서 1.5km 떨어져 있고, 소음·진동과 경관 등의 문제점만을 해결하는 보완책을 마련하면 문제없다고 하는 것은 일반지역에서의 환경대책일지는 몰라도 산중(山中)에 위치하고 있는 천년고찰(千年古刹)의 품격과 가치를 도외시한 개발논리라고밖에 볼 수가 없다.
단순히 정량적인 소음·진동의 수치가 사람이 크게 영향받지 않을 정도라고 하고, 나무를 심고, 꽃밭을 조성하여 경관을 유지한다고 해도 이미 버려진 자연과 종교적 성지로서의 가치의 손상은 다시 회복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입장에서 금정산 범어사는 금정산이라는 산주(山主)로서의 책임과 천년고찰로서의 사찰환경의 종합적인 보존을 위한 중요한 기로에 있다고 판단된다.
여러 사부대중의 관심과 노력에 의해서 금정산 범어사가 1300여 년 전 의상 대사가 창건하여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어져 왔듯이 앞으로도 수천년간 한국불교의 상징적인 고찰(古刹)로서 이어져가기를 고대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