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의 세계] 57. 화엄경, 대승불교의 꽃 1

경전의 세계[57]· 華嚴經의 世界 1

2007-09-30     관리자

 불교란 무엇인가? 부처님께서 6 년간의 고행끝에 체득하셨다는 그 깨달음의 내용은 무엇이며, 우리들의 실생활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또 오늘날과 같이 기계문명이 발달한 고도의 산업사회, 무관심의 사회,에고이즘의 사회 속에 사는 현대인들은 어렵고 복잡한 것에는 도통 관심을 가지려고 하지 않는다는데 양적으로 심히 방대하고 내용적으로 깊고 복잡한 불타의 교실을 어떻게 현대인들에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 이 문제는 대단히 중요하고 어려운 과제다. 누구나가 읽어서 쉽게 그리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현대적인 언어로 표현되어지지 않으면 안되는데 이것이 우리 불자들이 해야 할 중요한 과제라 생각된다.

 대승불교의 꽃 이라고 할 수 있는 화엄경은 분량이나 내용이나 그 웅대한 문학성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전이다. 그런데 여기에 펼쳐지는 세계관, 우주관, 연기관을 비롯해서 보살도의 사상 수행의 계위등을 현대적인 언어로 알기 쉽게 표현한다고 하는 것은 그리쉬운 작업이 아니다.

 부처님의 45년간의 교설은 사람들의 근기에 맞추어 설하신 대기설법(對機說法)이었다고 하는 데 이 화엄경만은 중생들의 근기를 생각치 않고 깨치신 바 진리를 그대로 설하셨기 때문에 부처님의 상수(上首)제자들도 귀먹은 벙어리마냥 한마디도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화엄경은 다시 말해 해인삼매정중(海印三昧定中)이 설법이며 자내증(自內証)의 세계를 그대로 나타낸 것이다.

  1 이 경의 제목

 화엄경(華嚴經)이란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의 약칭인데 대방광(大方廣)이란 부처님을 형용하는 말로서 광대무변함을 뜻한디. 즉 부처님의 가지가지 행<萬行>과 가지가지 덕<萬德>이 한없이 크고 넓음을 뜻한다.

 불화엄(佛華嚴)이란 잡화(雜華)를 가지고 부처님을 장엄한다는 뜻이다. 가지가지 아름다운 꽃으로 장엄한 부처님의 세계를 비유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가지가지 꽃이란 정열적인 장미나 탐스러운 수국, 청초한 수란 등과 같이 아름다운 꽃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보아주는 이도 없이 길가에 밟혀가며 핀 패랭이 꽃이나 심심산골에 이름도 없이 피어 있는 꽃들까지도 포함되리라 ……

 이들 가지가지 꽃들이 모여 조화를 이루는 세계가 화장장엄의 세계며 깨달음의 경계에서 본 부처님의 세계리라. 이 걸림이 없이 질서 정연한 조화의 세계에서는 이(理)와 사(事)의 관계는 물론 사(事)의 관계까지도 전연 걸림이 없다. 말하자면  이것이 사사무애(事事無礙)의 세계다.

 반복해서 말하면 대방광이란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가 한없이 크고 넓음을 뜻하며 불(佛)이란 이 대방광의 진리를 체득하신 분을 말한다. 화엄의 화(華)란 부처님의 만행(萬行)과 만덕(萬德)을 꽃에 비유해 나타낸 것이고 이 꽃으로 장엄하는 것이 화엄이다.

 깨달은 경계에서 본 부처님의 세계는 가지가지 꽃으로 장엄된 화장 장엄의 세계와 같이 아름다운 것이라 할 수 있다.

  2 이 경을 설할 때<說時>

 이 경이 언제 어디서 설해졌느냐고 하는 것은 참으로 궁금하기도 하고 또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이 소식을 알려주는 자료가 세친(世親)이 쓴 십지경론(十地經論)에 인용된 십지경(十地經) 등이다.

 여기에는 성도 후 2 · 7일에 설했다고 되어 있고 보요경(普曜經) 관수품(觀樹品)에는 주야로 7일간 도량수(道場樹)를 관하시고 깨닫게 된 인연의 은혜에 보답하셨다 했고 대보적경(大普積經)에는 주야로 7일동안 모든 법락(法樂)을 간직하시고 도수(道樹)를 관하고 계셔도 싫증이 나거나 눈에 전연 피로함을 느끼지 않으셨다고 서술되어 있다.

 이상의 문구를 통해서 보면 성도 하신후 2 · 7일에 설하셨음이 틀림없는 것 같다.

 또 법화경 방편품에 보면 도량에 앉아 나무를 관(觀)하기도 하시고 이리저리 보행도 하시며 3 · 7일을 사유하시고 『내가 얻은 지혜는 미묘하기 한량없는데 중생의 근기가 둔하고 세상락에 집착하고 어리석어 눈이 어두우니 어떻게 해야 저들을 제도 할 수 있을까.』하고 심려 하셨다고 한다.

 이상으로 보면 부처님께서 성도하신후 2 · 7일 혹은 3 · 7일에 화엄경을 설하신 것으로 생각된다.

  3 이 경을 설한 장소<說處>

 이 경의 설치는 제1회 적멸도량회(寂滅道場會)와 제 2, 제7회의 보광법당회와 제8 중각강당회(重閣講堂會)는 지상으로 되어 있고 그 이외는 모두 천상으로 되어 있다.

 이 설처를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 보면 제 1 회의 장소는 마갈제국(摩竭提國)의 적멸도량이었으며 제2회도 역시 마갈제국의 적멸도량 내에 있는 보광법당에서 이루어졌다. <名号品> 그런데 이 적멸도량에 있는 보리수 아래와 보광법당은 법장(法藏)의 말대로 다소 떨어져 있기는 해도 그리 먼 거리가 아니었으며 보광법당은 적멸도량내에 있었던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제 3 회 이후 제 6 회 까지의 설처가 문제가 되는데 그 이유는 이 때의 설법은 천상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상이라고 해도 제 2 회에서 제 3 회인 도리천(忉利天)으로 자리를 옮길 때를 보면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그대로 수미산에 올라 제석천으로 향했다.」<불승수미정품>라고 되어 있으므로 제 2 회의 설치인 보광법당의 자리를 떠난 것이 아니다.

 제 5 회로 설처가 바뀔 때도 보리수 아래의 자리를 떠나지 않고 도솔천궁으로 향했다 라고 되어 있다. 그러므로 제 3 회에서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라고 한 것은 즉 보리수 아래를 말하는 것이며 보광법당은 별다른 뜻이 없다. 왜냐하면 보광법당은 적멸도량 속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제 3 회 이후 제 6 회 까지는 실지는 설처가 적멸도량인데도 천상으로 표현되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는데 이것은 아마도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후 근본정각이 심적상태를 나타내는 것 같다. 즉 선정의 상승과 하강을 이야기 해주는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으며 또 하나는 화엄경 구성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보살도 사상의 계정(階程)으로 연결시켜 볼 수도 있다.

 그 다음 이 경을 설한 장소로서 주의를 상기시켜 주는 것은 최후의 설법처인 중각강당회다. 이 중각강당회의 설치는 지금까지와는 장소를 전연 달리해서 사위국기수급고독원(舍衛國祈樹給孤獨園)의 대장엄중각강당이 된다. 이곳은 파사익왕의 태자 기다(祈多)의 소유인 동산을 수달장사(須達長者)가 구입해서 부처님께 기증한 기원정사(祈園精舍)의 강당이다.

 그러면 제 8 회인 입법계품만이 이렇게 설처를 달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이 입법계품이 화엄경의 다른 부분과는 달리 훨씬 후에 독립된 경전으로서 성립되었음을 말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독립경전이었던 입법계품을 후에 화엄경을 구성할 때 그 최후 부분으로 삽입시킨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경의 설처는 제 1  회부터 제 7 회 까지는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적멸도량의 보리수나무 아래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고 최후회인 중각강당회는 기수급고독원에 있던 기원정사의 강당으로 봐서 무방할 것이다.

 4 이 경의 출현

 고래로 용수 이전에 화엄경이 있었다고 하는 기록이 몇 곳에 보이고 있는데 그것들은 과연 사실일까 ? 사실이 아니라면 부처님께서 성도 후 2 · 7 일에 설하셨다는 화엄경이 언제 어떻게 해서 이 세상에 출현하게 되었을까 하는 점은 대단히 궁금한 문제다.

 용수전(龍樹傳)에 보면 용수보살은 설산의 탑 속에서 한 노비구(老比丘)를 만나 대승경전을 전해받고 대룡보살(大龍普薩)에 인도되어 용궁에 들어가 여러가지 심오한 경전을 받은 후 남천축에 돌아와서 우바제사(優婆提舍) 10만계(十萬偈), 장엄불도론(莊嚴佛道論) 5천계, 중론(中論) 5 백계 등을 지었다고 하는데 이는 다른 곳의 기록, 예를 들면 법장인연전(法藏因緣傳)의 기록과도 일치는 하고 있으나 화엄에 관한 얘기는 별로 없다. 그런데 법장스님은 진제삼장의 말을 인용해서 용수는 용궁에 가서 화엄대사의해탈경(華嚴大不思議解脫經) 상 · 중 · 하 3 권을 보고 그중에서 하권10만계 48품을 가져왔다고 했으며 또 파라파밀다(婆羅頗蜜多)의 기록을 인용해서 용수는 이 하권에 의해서 대부사의론(大不思議論) 10만송을 지었으며 십주비바사론은 그중의 일부라 전하고 있다.

 그러므로 용수보살에 의해 화엄경이 이 세상에 출현했다고 볼 수 있는데 단 그때의 화엄경은 오늘날과 같은 완전본이 아닌 십지경 혹은 대부사의 해탈경이었음은 틀림없는 것 같다.

  5 화엄경의 종류와 그 해설서 

 화엄경에는 3 가지 종류가 있다. 그 첫번째가 60화엄인데 이는 불타발타라(佛馱跋陀羅) 즉 각현(覺賢) 삼장이 418~420 사이에 번역한 것이며, 34품 60권으로 되어 있기때문에 보통 60화엄이라 부른다.

 불타발타라는 구마라습보다는 15세 정도 연하로서 장안에서 라습과 만났는데 라습과 달리 왕실을 멀리하다 라습 문하로부터 배척을 당해 노산의 혜원(慧遠)을 찾아가 번역 사업에 종사했다고 한다.

 그 후 현수대사법장(643~712)스님이 중천축국에서 일조(日照)삼장이 가져온 범본(梵本)과 대조해서 입법계품(入法界品) 중 빠진 부분을 보충 교정해서 정리하니 이것이 60권본 화엄경이다. 이것을 진경(晉經) 혹은 신역(新譯)에 대해 구역(舊譯)이라 한다. 옛날 부터 이 60화엄이 화엄종의 소의(所依)로 되어 왔다.

 둘째 80화엄이 있는데 이것은 당나라 때 실차난타(實叉難陀) 즉 희학(喜學) 삼장이 번역한 것이다. 당의 즉천무후(則天武后)는 여자로서 왕권을 담당했던 뛰어난 인물이었는데 대승불교에 깊게 귀의해서 불법의 홍포에 진력한 사람이다.

 구는 구역화엄경의 회(會)와 처(處)가 아직 불비함을 알고 이를 보완하려고 고심하고 있던 중 마침 우전국(于전國)에 범어본이 있다는 말을 듣고 사람을 보내 구해오게 하고 이를 번역할 수 있는 사람도 모셔오게 했던 바 그번역을 담당하게 된 사람이 실차난타였다.

 실차난타가 화엄경 범어본<梵本> 4만 5천송 39품을 가지고 와서 번역하니(695~699) 이것이 80화엄이며 현수법장도 그때 번역에 참가했다고 한다. 이것을 당역(唐譯) 또는 신역(新譯)이라 한다. 60화엄이 7처 8회 34품으로 되어 있는데 비해 이 80화엄은 7처 9회 39품으로 되어 있다.

 세째 40화엄이란게 있는데 이것은 80화엄이 번역된 후 100여년쯤 후인 당(唐)의 덕종(德宗) 때 반야(般若) 삼장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반야는 별본(別本)에 의해 입법계품(入法界品)을 번역헤서 40권으로 만드니 이를 40화엄이라 부른다. 이 40권 화엄에는 앞의 진경 당경에는 없는 다른 내용의 일부가 첨가되어 있으니 이것이 보현보살의 10가지 큰원을 설한 대방광불화엄경 보현행원품(大方廣佛華嚴經 普賢行願品)이다.

 이 번역에는 화엄종 제 4조 청량(淸凉) 대사도 참가했었으며 정원 14년(795)에 이루어졌다고 해서 이를 정원경(貞元經)이라 한다.

 다음은 화엄경에 대한 주석서 즉 해설서에 관해 간단히 설펴보고자 한다. 여기서는 부분품에 대한 해설서는 생락하고 화엄경 전체에 대한 해설서중 중요한 것만을 소개하기로 한다.

 60화엄에 대한 주석(註釋)으로서 가장 오래된 것은 삼론종의 대성자 길장(吉藏)이 쓴 유의(遊意) 1권을 들 수 있다. 이는 대정(大正) 장경 35권에 들어 있으며 다음 화엄종의 제 2조 지엄(智儼)은 수현기(搜玄記)10권을 지었다.

 

 이것은 화엄경의 수문해석(隨文解釋)으로서는 현존하는 것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지엄이 27세 때 지었다고 하며 정영사 혜원(慧遠)의 영향을 깊게 받고 있다. 다음 법장(法藏)의 탐현기(探玄記) 20권이 있는데 이것은 화엄경 연구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으로 일컬어지고 있으며 화엄경 이해를 위한 필독의 서(書)라 할수 있다.

 화엄경의 이해 뿐만 아니라 제 1권에 서술되어 있는 교판(敎判) 교의(敎義) 등은 5교장(五敎章)과 함께 법장사상을 이해하는데는 절대 필요한 책이다. 그는 또 화엄경지귀(華嚴經旨歸)를 쓴 일이 있는데 고려 균여(均如, 923~973) 스님은 이에 대해 지귀장원통초(旨歸章圓通초) 2권을 지었다,

 80화엄경의 최초의 주석서로서는 법장스님이 쓰신 화엄경관맥의기(華嚴經關脈義記)가 있다. 80화엄경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역시 화엄종 제 4조 증관(澄觀)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증관은 화엄경소(華嚴經疏) 60권과 이를 좀더 자세히 해설한 화엄경수소연의초(華嚴經隨疏演義鈔) 80권을 지었다. 또 80화엄 주석의 강요서라고 할 수 있는 증관의 사상을 이해하는데 아주 편리한 책이다.

 이밖에도 이통현의 화엄경론 40권이 있는데 그의 사상은 아주 실천적인 경향이 강했다. 그는 또 화엄경의 요지를 해설한 화엄경대의(華嚴經大意) 1권, 실천법을 설한 화엄경결의론(華嚴經決疑論) 4 권이 있으며 고려의 지눌(知訥) 스님은 화엄론절요(華嚴論節要)를 지었다.

 우리나라에서 쓰여진 화엄경의 해설서로서는 신라시대 원효스님께서 쓰신 화엄경소 10권이 있었다고 하나 현존하지 않으니 가슴아픈 일이다. 그 밖에 신라 표원(表員)이 쓴 화엄경문의요결문답(華嚴經文義要決問答) 4권,묵암(默庵)의 화엄경품목(華嚴經品目) 1권, 연담(連潭)의 유망기(遺忘記) 40권, 또 화엄경사기(華嚴經私記) 5 권, 체원(體元)의 관음품별행소(觀音品別行疏) 2권 등이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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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道業   ·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  · 동국대 정각원 원장  · 금수선원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