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깎고 찍는 행복

특집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

2007-09-30     관리자

우리는 세계문화 유산인 『팔만대장경』(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제643호)과 세계 최고의 목판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지니고 있으며 양과 질적인 면에서도 어느 미술 못지 않은 높은 수준과 풍성한 목판화 유산을 지녔다는 자긍심이 있다.
우리 나라의 목판화의 시작은 삼국시대로 불경의 내용을 시각적으로 대중에게 전달하기 위하여 시작되었으며 서양에서는 성서를 시각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시작되었다고 한다.
내가 목판화에 매력을 느끼는 것은 결코 화려하지 않으며, 소박하고 질박하면서, 자연스러운 인간미가 흐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깎고, 찍고 하는 과정에서 아무리 서둘러도 이 세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작품 완성에 이르지 못하는 절대적인 시간을 필요로 한다. 작업과정마다 항상 정성이 따라야 하며 어디 한 군데라도 소홀하면 여지없이 결과물에 나타나는 한 치의 거짓을 용서치 않는 비정함이 있다.
창작을 지향하는 사람들은 항상 호기심을 갖고 산다. 실험과 도전을 하며 방황과 실패에도 항상 새로운 발견을 위하여 움직인다. 하나의 힘든 발견은 기쁨으로 보상되기도 한다.
나는 목판화를 늦은 나이에 시작했으면서도 오래된 친근감을 느끼고 있다. 석판, 동판, 실크스크린 등 모두 경험을 가졌지만 역시 나에게는 목판이 제일인 것이다. 전생에 언젠가 한번 각공(刻工)으로 불사에 참여하지 않았을까 하는 망상도 하였다.
요사이 작업도 다색판화에서 흑백판화로 점점 매료되고 있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불경 쪽으로 빠져들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종교와 예술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불교를 목판화로 창작하는 불교판화 작가로 이름 또한 강 행복(幸福)으로 ‘날마다 좋은날’ 이라는 화두의 이미지를 느끼게 하며, ‘행복, 불교, 판화’라는 세 단어로 설명되기도 한다.
나는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였다. 중·고등학교 때는 조각을 하였고, 대학에서는 시각디자인을 전공하였다. 한때는 시각디자이너로 직장 생활을 하였고, 서울 충무로에서 디자인 사무실을 하다가 크게 부도가 났었다. 그 때가 1987년으로 36살이었다. 상황이 복잡해지자 식구들과 함께 전라도 광주로 잠시 쉬러 내려왔다.
그 때에 잠시의 인연이 14년째 살게 된 엄청난 인연처로 나는 이 곳 광주에서 불교를 만나게 되었고〔열반경의 맹구우목(盲龜遇木)으로 비유〕 불교판화를 시작하게 된 곳으로 나에게는 성지 같은 곳이 되었다.
나는 본래 경기도 김포 월곶 태생으로 30년 넘게 서울에서 살아 왔고 서울과 고향 외엔 한 달 이상 산 곳이 없던 터라 다른 지역에서 산다는 것은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다.
광주에서의 생활은 도피하는 몸으로서 마음이 항상 불안하였고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 당시 광주에서는 5·18에 대한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때라, 시내에서는 매일 데모가 일어났으며 투석과 체루탄이 난무하였다.
당시 나는 광주 원각사에서 불교에 입문하게 되었으며, 무등산에 자주 오르고, 올 적 갈 적 증심사, 약사사, 원효사, 규봉암 등에서 기도로 마음을 추스리며 지냈다. 무등산 정상에 홀로 앉아 하염없이 울었던 날도 기억된다.
잦은 산행과 기도로 마음은 조금씩 안정되었으며 불교와의 인연도 조금씩 깊어가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차츰 나를 천천히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 동안 부(富)만 추구하며 이기적으로 숨가쁘게 살아 왔던 어리석은 나를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곧 부의 성공이 나의 행복의 결론이라는 생각으로 물질만 좇아 가다가 그 물질(돈)이 되돌아서 달려오는 나를 때려 부숴 버렸던 것이다.
“행복의 비결은 필요한 것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에서 얼마나 자유로워져 있는가?”라고 법정 스님은 말씀하신다.
수행인은 소유와 애욕의 집착에서 벗어나야 행복해질 수 있다는 철저한 무소유 실천을 이야기한다. 절망에 빠졌던 그 때에 불교는 나에게 참으로 용기와 행복을 일깨워주기 시작하였다. 수행인은 못 되지만 수행인의 자세로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된다는 생각도 가지게 되었다.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에 올 때에는 이생에 꼭 이루어야 할 의무를 갖고 왔을 것이다. 그것을 본래 서원이라고 하던가.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보지도 못한 채 허겁지겁 한생을 마감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런데 이생에 나는 무엇하러 온 사람인가.
여기 나의 이름은 부모님이 주셨고, 그림은 하늘에서 주셨으며, 이제 맹구우목으로 불교를 만나게 되었으니 목판화는 자연스럽게 나에게 의무감이 되었다. 되돌아보면 그 동안 내가 추구했던 길은 나의 길이 아니며 잘못된 길을 가고 있었음을 나는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사업의 실패와 인생의 좌절로 인해 불법을 만나게 되었으며, 곧 그것은 나의 행복과의 만남이었다. 불법과의 인연은 판화로 이어지면서 지금까지 10년 넘게 가고 있는 불교판화 작가의 길이다. 이 길이 나의 길이며 이 세상에 사는 나의 의무라는 생각으로 오늘도 ‘그리고, 깎고, 찍고’로 정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