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완성의 길

|불광 초대석|/만년 선재 동자 이남덕 교수

2007-09-30     관리자

김남선 학문을 통해, 그리고 지금은 일체 세속의 인연을 접으신 수행자로서 여든이 넘은 연세에도 만년 선재동자로 구도자의 삶을 활짝 열어가시는 모습에 경의를 드립니다. 일제와 동족상잔이라고 하는 민족수난기에도 의연하게 학문의 길을 걸으시고 또 교단에서 평생을 우리말 어원에 대한 연구는 두고두고 우리 민족 역사에 남을 것입니다.
저는 역사를 전공하고 교단에 선 일선교사로서 제도권 교육의 한계를 느끼면서 여러 가지 대안들을 찾고 있는 중입니다. 최근 우리말에 관심을 갖고 보니 위기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특히 인터넷 공간에서 청소년들이 쓰는 언어를 보면 빠른 속도로 우리말이 변질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의 정신성을 담고 있는 우리 나라 말이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비록 역사 교사이지만 한글에 대해서 다시 공부하게 되더군요. 우리 글이 이렇게 소중한 의미를 담고 있는지 몰랐습니다. 대안학교를 시작하면 학생들과 같이 한글에 대한 공부를 제대로 해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남덕 그래요. 소리에도 감정이 섞여 있어요. 우리의 음성이라는 것이 단순히 소리만 표시하는 것이 아니지요. 소리에도 에너지와 색깔이 있어요. 그런데 요즈음 가만히 사람들이 하는 소리를 듣고 있다보면 된소리와 센소리화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쁘·뜨·끄’와 ‘프·트·크’, 그리고 ‘브·드·그’의 발음은 그 감정이 다르지요. 국문과도 국문과 하지 않고 국문꽈 하거든요. 근자에 와서 된소리가 강해지는 것도 알고 보면 탐진치 삼독과 관련이 있어요.

김남선 요즈음 아이들은 선생님도 선생님 하지 않고 ‘샌님, 샌님!’ 하다가 이제는 ‘쎈님, 쎈님!’ 하거든요. 된소리에 줄임말까지 등장하고 있는 실정이고 보면 언어의 변질에 따라 정신성도 변질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각자가 자신의 주인인 주인공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질 때 개인이 바로 설 수 있는 바와 같이 이 땅은 이 민족의 주인인 얼을 제대로 담아 그 얼을 아름답게 꽃피워나갈 때 우리 민족다움의 아름다움을 드러낼 수 있으리라는 신념으로 우리 민족 정체성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자연히 우리말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오늘 선생님을 뵙게 된 것 같습니다.

이남덕 줄임말이 성해지는 것 또한 조급해지는 우리의 현실과 멀지 않아요. 말에는 힘과 정신이 깃들기 마련입니다. 성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이 그대로 언어에 섞여 나오기 마련이지요.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 나라 국민의 품성을 읽을 수 있어요. 된소리와 기식음으로 깔딱깔딱 숨이 넘어갈 지경이에요.
말은 마음의 반영이기에 마음다스리는 일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하고 의도적으로나마 자신의 언어습관을 살피며 부드러운 말을 쓸 줄 알아야지요. 일상적인 말부터 제대로 쓰는 습관이 중요합니다.

김남선 정보화 사회가 되면서 아날로그 방식으로는 디지털 사고를 가진 청소년들과의 만남이 수월치 않습니다. 지금의 청소년들은 정보화시대라는 혁명의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에 기성세대와는 사고 방식과 삶의 방식이 사뭇 다릅니다. 기존의 교육방식으로는 더 이상 아이들에게 영향력을 미치기 힘들다는 고민이 늘고 있습니다. 어떤 내용을 가지고 어떻게 아이들과 만나야 하는지 심각한 질문이 제기되는 상황입니다.
상즉상생(相卽相生)하는 삶의 가치를 깨닫게 하고 그렇게 살도록 돕고자 마음 쓰다 보니 오래 전부터의 민족 정신인 홍익인간(弘益人間), 제세이화(濟世利化)라는 이념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이 이념은 바로 우리 나라의 보살 정신이기도 하겠지요.

이남덕 큰 우주적인 비전 속에 등장한 우리 민족은 원천적으로 밝은 마음을 향하고 있어요. 태양, 밝음을 사랑하는 배달민족, 광명의 나라로서의 정체성을 갖는 것, 모든 이들이 주인공으로서 정체성을 갖는 것은 참으로 소중한 일입니다.
우리의 단군신화에 보면 곰이 사람되기를 발원하며 “사람되게 하여지이다.” 합니다. 원(願), 즉 구도심을 가진 동물이 사람이 되기 위해 100일 중 3·7일 만에 인간이 됩니다. 곰녜가 사람몸으로 탈바꿈된 것은 3·7일 만에 이루어집니다. 인간 존재란 태어날 때부터 백일에서 스무하루를 뺀 79일은 더 닦아야 할 시련기간을 처음부터 숙제로 안고 나온 운명적 존재입니다. 100일을 채워야 참사람이 완성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사는 목적은 무시무종의 영원한 삶을 살면서 무한한 의식의 성장을 계속하는 데 있습니다. 3·7일 기도 정성 덕에 인간몸을 받았지만 나머지 79일은 정성껏 살아야만 참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구도심이 있습니다. 구도심이 청정본심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부터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 또 세세생생 영적 성숙을 계속해 나가는 것이 인간이 살아나가는 참모습입니다.
저는 요즈음 동물의 세계를 열심히 봅니다만 80이 넘어서야 생명에 대한 신비를 절감하게 됩니다. 사람으로 태어난 것에 감사하지요. 단점을 빨리 알아차리고 육도윤회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기에 성불도 가능한 것이지요. 그런데 요즈음 사람들은 원함, 서원, 삶의 목표가 없는 것 같아요. 원이 없으면 사람이라고 할 수 없지요.

김남선 수행력에 있어서 지력, 체력, 기력, 심력, 관계력, 원력을 드는데 이 중에서도 가장 중심적인 추진력은 바로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원력이라고 하더군요. 원함이 우리를 진화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평생을 교육자로 계시면서 네 분의 자녀를 훌륭하게 키우신 어머니이시기도 하신데 자녀들을 어떻게 키우셨는지요.

이남덕 교사라고 해서 지도자 냄새 풍기면 안 돼요. 아이들을 키운다는 표현보다는 아이들은 큰다라고 하는 표현이 맞을 것입니다. 부처님의 힘(천지자연의 힘)으로 아이들은 저절로 크는 것이지요. 우리가 무슨 힘으로 아이들을 키웁니까. 키운다는 말은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해요.

김남선 참으로 공감합니다. 우리 부모나 교사들은 아이들이 올 때부터 가지고 온 사명을 잘 알도록 안내하고 사명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자기다움을 잘 살려갈 수 있도록 자기의 씨알인 불성을 성불로 피워 낼 수 있도록 오래 참으면서 기다리고 인내하고 또는 도와주도록 하면 되겠지요.

이남덕 우리의 아이들이 진짜 자존심(悉有佛性)을 깨달아 겸손해질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해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누구나 불성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알려주어야지요. 국어사전에서 밝힐 수 없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교사이고 부모이지요.
유교의 가르침에 사불범정(私不犯正)이라는 말이 있어요. 삿된 것이 정당한 것을 범할 수 없다는 말이지요. 정의로움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유아독존(唯我獨尊)이고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인 것입니다. 증거없이 마음만 내세워서는 안 될 것입니다.
과학주의 합리적인 사고로 인해 종교기피증에 걸려가고 있으나 교육도 확대하면 종교에 뿌리를 두고 있어요. 인간의 근본적인 교육이 강조되는 이 마당에 종교문제는 덮어두거나 기피한다면 뿌리 없는 나무 이야기에 그치게 될 것입니다.

김남선 교수님의 수상집을 보면 평화통일 기원이 삶의 한 주제처럼 느껴지더군요. 통일 후 우리 민족이 더불어 마음을 모아 같이 동의할 수 있는 정신이 무엇일까요. 어떤 특정 종교가 민족을 지도하기는 어려울 것인데 말입니다.

이남덕 진리는 하나라는 신념만 있으면 될 것 같습니다. 부처님이다 하나님이다 알라신이다 하는 말에 구애하지 말아야지요.

김남선 인간이 자신의 존재 기반을 모르고 분별심을 내고 무리를 짓고 상생(相生)의 기반인 상대를 무시하고 짓밟고 하는 현재의 인류문명은 위기인 듯합니다. 특히 미국이라는 존재가 지구문명에 끼치는 화근을 다스려야 하는 문제는 인류의 숙제인 것 같습니다.
한 민족을 저들의 무기 실험 도구로 사용하는 듯한 무자비 앞에서, 다음 타게트로 한반도를 입에 올리는 상황에서 우리들 남북한끼리라도 서로가 서로에게 어버이 되어 서로를 살려가야 하리라 봅니다. 네가 살아야 내가 살고 우리 모두가 산다는 쓰리 라이프(Three Life) 정신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이남덕 일제의 압박과 동족상잔의 전쟁을 몸으로 겪은 세대입니다만 제가 역사를 통해 겪은 바에 의하면 평화지향적으로 가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분쟁이나 중동전쟁, 미국의 패권주의를 볼 때도 역시 동양문명권, 특히 대승불교문명권, 여성의 힘(보살의 힘)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빛이고 생명이라고 하는 자기 정체성을 찾아주고 나는 곧 모두라고 하는 인식 전환이 올 때 평화는 기본적으로 찾아올 것입니다. 모성의 원리가 곧 상즉상생의 원리가 되는 것이지요.
요즈음 원망을 푼다고 해서 해원(解怨)사상이 있는 모양인데 말이라고 다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원망도 풀 것 없이 그저 상생이면 되는 것입니다. 국제간 이웃간 종교간에도 다 마찬가지예요. 모든 것을 다 포용하는 것이 세계를 살리는 가르침이지요. 이분법에 빠지면 낙원을 잃게 됩니다. 이분법 이전의 완전한 자리, 중도실상(中道實相)의 자리, 불성(佛性)의 자리, 일체중생실유불성(一切衆生悉有佛性)의 자리를 회복해 나아가야지요.
불교는 모든 것을 감쌀 수 있는 사상이며, 극단론에 빠질 수 없게 합니다. 요즈음 미국 테러사건 이후 악의 축이니 뭐니 하는 발언이 나오고 있고 악은 때려부수고 선만 남게 한다고 하지만 그 또한 역작용이 얼마나 많아요. 끊임없는 전쟁과 테러가 이어지지요. 선악을 아우르는 중도의 가르침이 아니고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요. 선이다 악이다. 유신론이다 무신론이다 하는 이분법의 사고에서 벗어나야지요.

김남선 일생 동안 학문의 길을 걸으시다가 불교의 신념체계 속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를 발견하시고 정년 퇴임 후 구도의 길을 걸으시면서 갑사 내 대자암 선방에 든 지도 햇수로 꽤 여러 해가 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생활하시면서 나누고 싶으셨던 말씀을 이 기회에 들려주시지요.

이남덕 원효 대사 말씀에 노인불수 파거불행(老人不修 破車不行)이라고 했어요. 늙으면 닦지 못하고 망가진 수레는 가지 못하지요. 계룡산에 살다보니 각양각색의 수행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 분들을 보면서 느끼는 것입니다만 힘을 기르는 방법은 젊었을 때 해두어야 합니다. 정신적인 기량뿐만 아니라 몸의 기량도 중요합니다. 어떤 방법으로든지 힘을 기른 후에 앉아야 합니다.
모든 것이 수행과정일 뿐 일체 어떤 것도 버릴 것이 없어요. 우리 모두가 정한수 떠놓고 기도해서 나온 자손들 아닙니까. 모두가 도반들이지요.
제가 사는 계룡산에는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방법으로 수행을 하고 있는 젊은이들이 많아요. 힘을 얻는 과정은 다 다르다 할지라도 그 체계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불교를 빌지 않을 수 없어요. 서로 협력해서 인간완성을 위해 가야지요. 우리는 더불어 함께 살아가며, 더불어 향상 발전해가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