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불교 미술의 방향

불교와 21세기/21세기 불교미술을 보는 눈 3

2007-09-30     관리자

불자건 아니건 처음 거대한 석불을 보면서 ‘엄청나구먼 그래’ 하고 코를 킁킁거리던 사람도, 산허리를 도려내고 집채만한 바위를 깨어 쌓아올린 축대 위의 대웅전 앞에서 썰렁한 가슴을 쓸어 내린다. 그리고선 ‘이거야 불교의 르네상스 아닌가’라고 중얼거린다. 그렇게 불교의 도상과 상징이 불자거나 아니거나 머리를 조아리게 만드는 힘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렇게 오늘날의 불교는 엄청난 양적 팽창세를 보이고 있다. 불사라는 이름 아래 모든 사찰이 무서울 정도로 부지와 건물과 도상과 나아가 사이버공간을 확장하고 있다. 아예 불사를 하지 않으면 절이 아니요, 원력을 세우지 않으면 큰스님이 아니라는 말까지 나돌 만하다.
이 과정에서 불교미술은 전에 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불·보살의 조상이나 후불탱은 물론이요, 건물이나 단청, 탑파나 부도, 석등에 이르기까지 모든 조형물은 모두 불교미술이라는 이름으로 통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이 불사와 조성에서 빠진 것이 있다. 바로 불교미술이다. 막상 주체가 되어야 할 불교미술이 빠진 것이다. 엄밀히 말해서 우리 시대 우리의 불교미술이 없는 것이다.
오늘날 불교미술의 르네상스라 할 때 그것은 통일신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사찰이라면 시멘트로 조성하더라도 고루거각(高樓巨閣)의 장엄을 재현한다. 불상이라면 대웅전의 석가불이건 비로전의 비로자나불이건 무량수전의 아미타불이건 금빛 부처님이다. 협시보살은 선종사찰에서도 대승의 문수 보현이다. 그 배경에 통일신라의 불교와 불교미술이 있다. 그것은 마치 불교가 근본불교에서 대승교학, 선불교, 밀교로 나아갈 때마다 근본불교로, 다시 석존의 육성으로 회귀했던 궤적을 연상시킨다.
한국불교의 미술 역시 의례화한 고려불교와 선불교 및 산중불교의 조선불교를 지나면서도 통일신라의 원형을 유지해왔다. 그래서 오늘날도 한국의 불교미술에서는 통일신라에서 정형화된 8세기 당나라와 실크로드의 서역미술이 고려불화를 거쳐 화석화된 모습으로 오늘에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도 불교의 미술에서 불교미술이 빠졌다고 한다면 그것은 도상과 건물과 상징은 살아있되 ‘우리 시대 우리의 언어’라는 미술 본연의 정신과 사상이 빠졌다는 말이 된다. 한국불교로서는 당연히 원전이 될 만한 사상과 시대로서 통일신라를 고집하겠지만 불교의 미술, 나아가 종교의 미술, 그리고 미술이라 할 때는 이 시대정신이 빠진 미술품은 단순한 수공과 정형화된 숙련의 결과 만들어질 수 있는 대량생산의 공예품 정도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불교미술도 현대화하면 되지 않아요?” 하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불교미술의 시대성을 결정하는 것은 단순히 그것을 만드는 사람의 의식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불교미술을 오늘의 시각에서 조형화하는 작가들이 있다. 그들은 마애불이나 불상을 유화로 그리거나 바라춤이나 승무 등의 춤사위를 추상화하거나 삼존불을 해체하여 원형광배와 승형의 불상으로 환원하여 미니멀화하거나 만다라 등의 정신을 추상화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불교미술의 현대화가 진행되고 있쟎아요?” 하고 반문한다면 그것은 더욱 어리석은 질문이다. 전 재산을 동원하여 불사와 불상과 사경의 조성에 기울이는 단월은 그것이 기복불교건 신앙불교건 내세불교건 그 불사 조성 및 그 가피력에 목적을 두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불교미술품을 조성하는 불화가나 조각사, 단청화사 등은 단월의 관념화된 지극정성과 고승의 유권해석의 사이에서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면 된다.
물론 그 헌신과 공헌은 모두 현실적인 보답으로 이어진다. 거액의 불사에 정성은 금전적으로 등급이 매겨지며 심지어는 폴리에스터 수지도료로 만드는 부처님도 크기와 무게에 비례하여 금액이 매겨진다. 그러나 정작 불교미술을 오늘의 시대정신으로 해석하는 작품에 대해서는 금액이 매겨지지 않는다. 무게와 재료비와 정녕 무관히 아예 판매가 되지 않거나 판매가 되더라도 그 작품이 놓여져야 할 가장 바람직한 장소인 불단과 법당 벽과 사찰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승속의 오해와 관성에서 온다.
제주도에서 문수 보현을 조랑말에 태웠더니 불자들의 항의가 하도 거세어 다시 사자와 코끼리로 바꾸었다는 실화가 있다. 조각가가 본존 뒤의 천불을 조성하려는 논의에 동참했는데 아예 불법의 적실한 뜻을 드높인 현대조각가의 작품에 대한 발언조차 허용되지 않더라는 체험담도 있다. 그러한 세태와 인식을 바꾸는 일은 승단 지도자의 작은 배려에서 비롯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은 종교와의 화합차원에서 일어나는 작금의 대 역사에 비하여 지극히 작은 인식의 변환이나 화합의 제스츄어이어도 좋다.
2002년 어느 날 종정, 혹은 총무원장이 예술가들을 초청한다. “불교와 예술은 불이의 관계입니다. 다시 교단으로 돌아와 주십시오”라고 당부한다. 그리곤 다과를 들고, 담소한다. 마치 1964년 교황 바오로 6세가 시스티나 성당에서 예술가에게 그랬듯이….
다시 2002년 어느 날, 예술가들에 보내는 협조 서한이 공개된다. “예술가들이 종교와 함께 협력해야 합니다. 예술과 종교는 같은 자세로 매진해왔는데 예술가들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이제 함께 대사업을 이룹시다”라는 메시지이다. 마치 제26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2000년을 앞둔 예술가들에게 당부했듯이….
그런 시대적인 역사가 일어날 때도 되지 않았을까. 대화합과 불교중흥의 인터넷 시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