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문화학의 정립

특집 /생활 속의 화두

2007-09-30     관리자

역대 선사·선객이 화두를 들듯이, 일반 생활인에게도 그 나름의 화두가 있다. 무엇인가 뜻있는 목적을 세우고 이를 이룩하기 위하여 골몰함으로써, 가위 삼매의 경지까지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불교를 신앙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참선하는 데에서, 화두를 가지고 정진하는 경우가 많고, 나아가 생활인으로서도 자기 일에 몰두하여 이를 성취하려는 화두를 세우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여기서 화두를 드는 참선에는 전문선과 생활선이 있다고 하겠다. 이런 점에서 생활 속의 화두는 승·속간에 입체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기실 나는 신행하며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종교와 학문이 거의 일치하여 상당히 유익하고 행복한 편이다. 실제로 불교를 공부하면 전공에 도움이 되고, 전공을 공부하면 바로 불교수행에 보탬이 되기 때문이다.
그 동안 나는 불교문학을 전공하면서 그에 직결된 국어, 미술, 음악, 무용, 연극 내지 불교의례, 서지, 음식, 건강, 민속 등 불교문화에 대하여 부단히 관심을 가져 왔다. 그래서 나는 전문선보다는 생활선을 잠심해 왔다. 내사 전문선을 해 낼 자격, 자질도 없거니와 학문에 몰두한답시고 그만한 여가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활선을 택하여 나름대로 명분을 찾게 되었다. 재가 신도는 그 생활 속에서 자기 일에 몰두하여 삼매의 경지를 얻고 그 권능으로 성과를 극대화하는 것이 ‘생(生)’하고 ‘활(活)’하는 참된 선이라는 이야기다. 그래서 나는 생활선 안에서 화두를 갖게 되니, 그게 바로 ‘불교문화학의 정립’이다.
불교는 창도된 이래 다양한 방편을 타고 유통·전개되었다. 그것이 곧 위에 든 바 불교문화다. 그래서 불교문화는 포교, 권좌의 대방편이요, 대중불교 그 자체이기도 하다. 실제로 대승불교를 이은 대중불교는 모두가 불교문화의 실상과 위상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 불교문화는 불교만의 편협한 한계를 초월하여 근접문화를 포용, 융화함으로써 동방권문화 내지 그 각국 문화의 주류를 이루어 온 것이 그 진면목이다. 그래서 인도, 중국, 한국, 일본의 불교문화가 그 나라 문화사의 주축을 이룩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지금 새로운 문화세기에 호응하여 불교계에서도 새 물결이 일고 있다. 대승불교에 이어 대중불교 내지 민중불교를 거친 다음, 생활불교를 바탕으로 문화불교시대를 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화불교시대에 불교문화가 새롭게 조명되고 높이 평가되는 것은 필연적인 추세다. 그래서 앞으로 이 불교문화가 새로운 방향과 방법론에 의하여 종합적이고 유기적으로 연구 발전해야 될 단계가 왔다.
이 사명과 역할을 감당할 학문적 체계가 바로 ‘불교문화학’이다. 새로운 문화세기에 호응하여 문화학이 대두되고, 한국문화학이 정립될 단계에서 불교문화학이 성립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현상임에 틀림이 없다.
이 불교문화의 역사를 통하여, 그 실상과 위상의 독자적 근거와 영역을 재조명 확정하고, 이를 체계적 전문적으로 연구 발전시키는 일은 문화연구사 상의 의의가 크다.
그간에 분산 연구된 불교문화의 분야별 업적과 학자별 역량을 총화 집성하여 불교문화학의 체계로 정립시키고 출범하는 것은 불교문화 자체뿐만 아니라, 한국문화 내지 인문학의 획기적 발전에 크게 기여할 터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교문화학의 정립은 시대적 요청이요, 학계의 당면과업이라, 족히 나의 화두가 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화두가 성불을 위하여 존재하듯이, 내 생활 속의 화두도 실천 성취돼야 한다. 여기에는 동방권 정신문화사 그리고 한국문화사 내지 인문학사 등의 거시적인 전제 기반이 있어야 함은 당연한 것이고, 그 실천적인 방안이 구체적으로 모색, 적용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나는 대강 세 가지 방안을 내세우고 싶다.
첫째, 정부나 제도권 대학 내지 연구기관에서 불교문화학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고 전문학과나 전문강좌를 설치하여, 전문인력을 배출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가장 강력하고 실천적인 방안이다.
그런데 이에 관한 과거와 현재를 보면, 거의 절망적이다. 그 동안에 그들은 불교문화 내지 불교문화학을 축소 포기하는 방향으로 문화정책을 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대한 문화학은 상·하의 순환작용을 일으켜 왔다. 지금 밑바닥을 친 불교문화, 불교문화학은 운명적으로 상승궤도를 달리기 마련이다. 새로운 정부의 올바른 정책, 최소한 인문학의 중심대학, 종립대학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다.
둘째, 우리 학계와 불교계가 합심 제휴하여 불교문화의 전문교육기관을 설치 운영함으로써 사계 학자들의 역량을 결집하고 전문적 인재를 배양하자는 것이다.
이런 방안은 가장 실질적이고 실천 가능한 터다. 그 동안 경향의 대소 사찰이나 포교당에서 교양 차원의 불교대학을 많이 설립하여 불교지도자나 불교 교양인을 배출해 온 사실이 주목된다.
그래서 그 교과목에 불교문화 관계를 신설, 증보하면 되겠기 때문이다. 나아가 아예 그런 불교대학을 불교문화대학으로 개편하거나 신설하는 일이다. 벌써 서울이나 대전, 광주, 제주에서는 불교문화 과목을 삽입하는가 하면, 실제로 불교문화대학을 설치 경영하고 있는 실정이다. 나도 그런 취지에서 금년 초에 ‘백제불교문화대학’을 신설하는 데에 적극 동참하여 그 책임을 맡게 되었다.
조계종 포교원과 갑사 당국이 제휴하여 백제불교회관을 세우고 그 핵심사업으로 불교문화대학을 설치한 덕분이다. 이 문화대학에서는 교양과정(1년), 전문과정(2년), 연구과정(1년)을 두고 불교문화의 참신한 교과목을 설정하고 그 전공 교수가 강의를 맡음으로써, 불교문화학의 중심을 이루게 되었다.
셋째, 불교문화의 각 분야에서 연구한 업적과 전공학자의 연구역량을 총화 결집하여 ‘한국불교문화학회’를 조직 활동하자는 것이다. 위기에 처한 인문학을 학회활동으로 극복하려는 추세에 따라, 이러한 학회를 구성하여 학문활동을 적극 추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런 불교문화를 연구하는 학자 교수들이 주변으로 몰리고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실정에서, 이 학자들은 학회로써 단합 연찬해야만 값지고 보람찬 성과를 내면서 그 학문의 전통적 계승과 함께 활로를 족히 개척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최근에 그만한 불교문화학회를 결성하자는 긍정적 여론이 돌고 있는 것은 실로 고무적인 일이다.
며칠전에 몇몇 학자들의 합의로, 내가 그 학회의 발기취지문을 작성하게 되었다. 물론 내 단독 명의로 나가는 것은 아니지만, 실로 책임이 따르고 무척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이 과제는 내 생활 속의 화두가 되어 왔기에, 긍지와 사명감을 가지고 이 문장을 써 냈다. 그것도 중국 남부 곤명의 원통사를 순례하는 가운데 조용한 숙사에서 정성껏 지었으니 나로서는 잘 되리라는 확신과 함께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다.
이처럼 내 생활 속의 화두가 ‘불교문화학의 정립’이라고 공언하고 나니, 건방진 것 같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하다. 더구나 그 실천적 방안까지 제시하고 나니, 그 책무가 더욱 무거워진다.
참선의 화두가 성불의 요체이듯이 나의 이 화두는 그 성취를 위한 염원으로 다가온다. 서원이 깊으면 지성으로 실천하여 반드시 성취하리라 믿고 기원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