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스님]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 해주 스님

우리 삶 자체가 성불로 나아가는 과정입니다

2007-09-30     월간 불광

세상 만사 인연 아님이 없지만 살다 보면 남달리 깊은 인연으로 다가오는 사람이 있는데, 해주(海住: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 불교학 연구회장, 일반인들에게는 불교방송 ‘자비의 전화’, ‘경전공부’ 해주 스님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스님이 바로 그런 분이다. 월간 불광에 삼년(88년~91년) 반 동안 ‘알기 쉬운 교리강좌’를 연재했고, 불교교리강좌, 화엄경 초역, 지송한글화엄경 등을 불광출판부에서 펴낸 인연 때문만은 아닌데 어쨌든 언제부터인가 스님의 행보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 어쩌면 교계 안팎으로 여성의 지위가 열악한 현실에서 가시덤불을 헤쳐나가는 듯한 스님의 선구자적인 모습에 매료되어 수희 찬탄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특히 최근에는 불교학연구회(2000년도에 창립된 열린 학문마당, 전국적인 불교학공동체) 회장으로, 다가올 5월에 한국에서 처음으로 개최될 대규모 학술모임인‘한국불교학결집대회’의 조직위원장으로 그 실무를 담당하며 불교학 발전을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계시다는 소식은 새봄이 움트는 소리보다 더 화사하게 다가왔다.

발심한 순간 부처되어 살라

“화엄경에 보면, 부처님께서 수미산 꼭대기에서도 설법을 하십니다. 그 자리에서 십주법문을 하시는데 십주의 처음이 초발심주입니다. 중생이 처음 발심해서 보살이 되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초발심할 때 바로 정각을 이룬다고 해서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 正覺)하는 자리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초발심행자로 살고자 뜻을 같이하는 분들이 머무는 곳이라는 뜻에서 절이름을 수미정사라고 했지요.”

이름은 혼이라고 했던가. 현재 스님이 주석하고 있는 ‘수미정사(須彌精舍)’라는 절이름 속에 스님의 저력과 스님의 수행 이력이 다 들어있는 듯했다. 스님은 언제 어떤 인연으로 발심하였을까. “중학교 1학년 때 어떤 책을 읽으면서 굉장히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바람이 움직이는가, 깃발이 움직이는가’며 논쟁을 벌이는 두 스님에게 “움직이는 것은 깃발도 아니요, 바람도 아니다. 바로 그대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라는 『육조단경』 혜능 스님의 말씀에 열네 살 소녀의 마음이 흔들린 것이야말로 선근 인연일 듯싶다.

“그 때 ‘스님들은 우리와 다른 차원에서 사는 사람들인가 보다.’라는 생각을 했고, 그 뒤론 마음이라는 말을 매우 자주 사용하고 있는 제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무엇인가 깊이 생각해보곤 하였지요. 그래서 종종 도사 따라 가서 도 닦는(마음공부하는) 상상을 했습니다.”

신동이라고 불렸던 소녀, 밤하늘의 별자리를 살펴보며 퀴리 부인 같은 과학자를 꿈꾸던 소녀는 또 한편으로는 그 때부터 스님이 되어 다른 차원에서 살고 싶은 꿈을 키워갔다. 마음에 그리는 대로 이루어지는 법, 대학 3학년 때 시절인연이 도래하였다.

“이모가 병원에 입원하셨는데 같은 병동에 젊은 남자 환자가 들어왔어요. 연세가 많으신 이모는 더 오래 살게 해드리려고 치료에 매달리는데 건장한 젊은이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다 미수에 그친 모습을 보고 또 한번 충격이 왔습니다. 의학이나 과학은 사는 동안 사람을 잘 살게 해줄 수 있는 것이라면 죽고 사는 것 자체는 마음에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한 치의 미련도 없이 마음자리를 찾기 위해 출가, 당시 청도 운문사 도감이었던 성관 스님을 은사로 삭발 입산하였다.

교학을 통해서도 마음자리를 찾을 수 있다

“강원에서 경전을 배우면서도 늘 마음 찾으러 선방에 갈 궁리를 했지요. 화엄경을 배우면서 ‘일체유심조’라는 대목이 절절하게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학인이 강원에 왔으면 경이나 끝내놓고 가라’는 은사스님의 말씀과 아울러 무엇이든 시작한 것은 최선을 다해 마치는 성격인지라 강원과정을 끝까지 공부하던 중 화엄경을 보고 마음의 눈이 열린 것이다.
당시 동학사 강원의 호경 노스님(당대의 대강백으로 유식삼십송과 조선선교사 등을 번역하셨다)께서 전강을 내려주실 뜻을 은근히 밝히셨지만 경전 말씀을 더욱 깊이 있게 공부하기 위해 동국대학교에 입학, 자연스레 화엄을 전공하게 되었다.

“석사학위논문(‘화엄경의 발보리심에 대한 연구’)에서는 화엄경에 교설되어 있는 깨달으려는 마음을 일으켜 수행해야 함을 밝히면서 마음에 접근하려 하였고, 박사학위논문(‘신라 의상의 화엄교학연구 - 일승법계도의 성기(性起) 사상을 중심으로’)에서는 모든 것이 여래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난 존재임을 살펴보았습니다.

박사학위논문을 쓰면서 비로소 마음공부가 특별한 장소에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요, 팔만사천 방편문, 해탈문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화두 들고 참선하듯 불교학을 화두 삼아 용맹정진, 국내에서 석·박사 모든 과정을 마치고, 대학에 입학한 지 12년 만에 비구니스님으로서는 처음으로 대학교수가 되었다.

“내 평생의 과제는 마음입니다. 아마도 교학을 통해서도 해탈할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다면 학교에 남지 않았을 것입니다.”라는 스님 말씀에서 수행자로서의 진면목이 진하게 느껴졌다.

모두가 본래 부처인데…

한편 스님은 지난 96년도에 매우 곤혹스러운 일을 겪었다. 박사과정 4학기 때(86년도 발표) 쓴 논문(비구니교단의 성립에 대한 고찰 - 비구니 팔경계를 중심으로)이 10년 후에 문제가 된 것이다.

당시 인도사회의 엄격한 카스트 제도하에서 평등을 주창하셨고, 교단 내 평등을 실현하신 부처님께서 ‘과연 그토록 불평등한 비구니 팔경계를 제정하셨을까?’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현존자료를 통해 면밀히 검토한 결과 비구니 팔경계는 부파불교시대 말엽에 기술된 것임을 밝혔다가 스님은 된서리를 맞을 뻔했던 것이다.

“화엄경의 요체가 평등사상임은 물론이고 부처님께서는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모든 이의 이익과 안락을 위하여 진리를 설하신 분이십니다. 연기(緣起)된 존재는 무아(無我)이고 공(空)이니 너와 내가 둘이 아닐진대 남녀가 어디 따로 있겠습니까?”

스님이 대학에서 학문연찬과 아울러 후학을 양성하는 한편 대한불교 조계종 중앙종회 종회의원(비구니 직능대표 제11대·12대)으로서 지속적으로 비구니 스님 전체의 권익을 위해 힘쓰는 것은 수레의 양 바퀴와 같은 불교교단의 균형적인 발전을 위해서이리라. 아니 그것은 비단 불교교단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사적인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행보인 것이다.

인류의 과반수는 여성이다. 또한 외국의 석학들도 불교의 평등사상에 인류 미래의 희망이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요즈음 인도에서 불교도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부처님 평등 정신에 연유된 것이라고 한다. 불교의 미래를 위해서, 아니 인류 전체의 밝은 미래를 위해서 우리가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 자명하지 않은가.

정처공부보다 요처공부가 낫다

“도시에 살다보면 산사에서 수행한다면 없을 일도 생기기 마련이지요. ‘요처(鬧處)공부가 정처(靜處)공부보다 더 어렵다’는 옛 스님의 말씀이 가슴 깊이 다가온 적이 많습니다.”

개인적인 일이야 마음 먹기에 달렸다지만,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공업(共業)을 함께 짓고 살자니 어찌 갈등이 생기지 않겠는가.

하지만 삶 자체가 성불로 나아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부처님 제자로서의 본분사를 지키며 탄탄하게 연구하고, 불교정신에 입각하여 후학을 지도하면서 어려운 일을 도맡아 하다 보니 주변에 뜻을 같이하는 학자들이 모여들었다. 그러한 열기가 무르익어 지난 2000년 봄 ‘열린 학문마당’을 지향하는 불교학연구회가 창립되었고, 회장으로 추대되었다.

불교학연구회는 일년에 두 차례(5월, 11월) 정기학술발표회, 3·4월과 9·10월에 월례학술발표회, 여름방학, 겨울방학에는 각기 1박 2일의 워크샵을 갖고 불교학의 방향을 바로 제시해가며 한국불교의 미래를 열어가고 있다.

불교학연구회가 창립된 지 만 3년도 채 되지 않아 비판과 토론문화의 성숙 등 한국불교학계에 새바람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활발하게 운영될 수 있는 것 또한 스님 덕분이라고 관계자가 귀뜸해주었다.

그리하여 오는 5월 개최될 한국불교학결집대회(약 30여 단체가 연합하고 200여 명의 학자들이 발표하는 한국에서 처음 있는 대규모의 학술 모임, 대회장은 전 한국불교학회 회장을 역임한 목정배 동국대 교수)에서도 실무를 관장하는 조직위원장을 맡게 된 것도 자연스런 귀결 인듯싶다.

스스로 수행하며 실천해야 한다

스님은 이즈음 두 가지 원력을 세우고 있단다.

“기초선원이 있고 평생토록 참선할 수 있는 제방의 선원이 있듯이 비구니스님들이 평생 동안 전문적으로 경학을 공부하면서 수행하는 도량을 만들고 싶습니다.”

비구니 평생 강원에 대한 원력은 설사 스님이 못하게 되면 후학들에 의해서라도 그 원이 꼭 이루어지길 바란다고 한다. 스님께서 마음을 내고 원력을 세웠으니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이 시대에 맞는 화엄수행법을 개발하여 일반인들이 보다 쉽게 마음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돕고자 하는 것. 모든 존재가 본래 부처 아님이 없으나 개개인에게 있어서는 자신이 본래 부처임을 깨달아서 그렇게 살아야 하는 몫이 따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화엄경에서 보여주고 있는 연기관, 성기관, 삼불원융관 등의 관법도 차례대로 해보고 있는 중입니다.”
경전이 마음자리를 찾아가는 지도일진대 그 지도대로 수행해서 성불하는 길을 보다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수행하면서 화엄수행법을 확립해가고 있는 스님께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우리 마음이 본래 부처임을 알면서도 부처님처럼 살지 못하는 것은 수행으로 체득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순간순간 부처님 말씀대로 맑고 바르게 사는 것이라고 봅니다.”

어찌 보면 누구에게서나 들을 수 있는 평범한 말일진대 그토록 강한 메시지로 다가오는 것은 마음을 찾기 위해 발심 출가한 이후로 교학의 길을 가면서도 그 첫마음 놓지 않고 초지일관 부처되어 살기 위해 애쓴 스님의 남다른 수행 이력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