偶吟

선심시심

2007-09-29     관리자

벌레소리 찌르륵 찌르륵
배갯머리 달 밝은 가을
잎은 깊은 사원 속에 지고
바람은 묵은 시냇머리에 놀라다
蟲聲來 /枕榻月明秋
葉下深院裡/風驚古澗頭

생각 있으면 공연히 감동하나
무료하면은 오히려 수심을 더해
이렇듯 하루살이의 기탁 회고하면
역시 한 기운으로 수습해야 해.
有思空自感/無聊轉添愁
顧此 寄/亦當一氣收

경허(鏡虛, 1849∼1912): 근대 불교 선종의 중흥조.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9세 때 어머니를 따라서 경기도 광주의 청계사에 가서 계허(桂虛)에게 출가했다. 계허가 환속하므로 당시 교계의 태두였던 동학사의 만화(萬化)를 찾아가서 경학을 배우고 내외경전을 두루 섭렵하여 통달하지 않은 바가 없어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23세 때 대중들의 청으로 동학사에서 강의를 열자 학인들이 사방에서 운집했다. 31세 되던 해 여름 갑자기 계허 대사의 은의가 생각나서 찾아뵙고자 떠났다가 문둥병이 치성한 마을을 지나칠 때에 생사의 절박함을 깨닫고는 즉시 귀사하여 학인들을 돌려보낸 후, 3개월 동안 철저하게 정진하여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그 후 20여 년간 홍주의 천장암, 서산의 개심사, 영주의 부석사 등에서 때로는 참선으로 때로는 설교로 선풍을 크게 떨쳤다. 51세 때 합천 해인사로 옮겼는데 마침 국가에서 불경 간행과 수선사(修禪社)의 신설 사업을 명하매 대중이 법주로 추대하였다. 54세 때 범어사 금강암과 마하사의 개금불사가 있어 증명(證明)이 되었고, 56세 때 오대산과 금강산을 거쳐 안변의 석왕사에 이르러 5백나한 개금불사에 증명으로 참여했다가 자취를 감추었다. 그 후 장발을 한 채 속가의 옷으로 행세하며 스스로 난주(蘭州)라 호하고 인연 따라 교화에 바치다 64세에 함북 갑산에서 입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