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보살행

어둠을 밝히는 촛불처럼/부산시립의료원 법당 수인심 보살님

2007-09-29     관리자

해운대 가 집인 수인심(修仁心, 64세, 해운정사 신도) 보살님은 이른 새벽 집안 일을 마치고, 아침 7시 30분경이면 어김없이 연산동 로터리에 있는 부산시립의료원 법당에 도착한다. 여섯 평 남짓 법당은 행려환자들이 있는 병동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1997년 음력 4월 5일 바라밀포교원의 효종 스님 원력에 의해 마련된 이 법당에서 수인심 보살님이 봉사활동을 시작한 것도 5년째가 된다.
법당에 모셔진 지장보살님께 삼배를 올리고 1층에서 6층까지 병동을 돌며 불교 책자를 꽂는 일로부터 시작되는 하루일과. 저녁 6~7시경까지 잠시도 앉아있을 시간이 없다. 한 달에 이틀 정도를 쉬는 것 이외에는 매일 아침 일찍 법당에 출근하여 병동을 돌며 환자들의 손발이 되어주시고 계시다.
그 동안은 틈틈이 봉사활동을 해왔지만 막내아들이 대학에 들어가자 3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아들만 넷을 둔 데다가 현재 대학교 3학년인 늦둥이 막내아들이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많은 시간을 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부산시립병원은 주로 보호자가 없는 생활보호대상자와 행려병자들이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봉사자의 손길이 여느 병원보다 필요한 곳이기도 하다. 법당 옆 행려병동엔 오갈 데 없는 환자들만 해도 70여 명이 병상에 누워 있다. 주로 정신질환을 앓고 있거나 알콜중독 등으로 고생하며 거리를 떠돌다가 만신창이가 된 채 쓰러져 있는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실려오는 곳이 바로 이곳 시립의료원 행려병동이다.
병원 뒤켠 영안실 옆에 자리잡은 행려병동은 마치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의 수용시설처럼 느껴질 정도로 말이 아니다. 낡을 대로 낡은 좁은 병실마다 7~8개의 병상에는 신음하는 환자들로 가득하다.
어떻게 저런 모습으로 숨을 쉬고 있는 것일까. 살이라고는 전혀 없이 바싹 마른 몸에 배만 불룩 나온 사람. 욕창으로 만신창이가 된 사람. 산소호흡기를 달고 숨만 헐떡이는 사람…. 대소변을 제대로 가릴 수 있는 사람은 손으로 꼽을 정도다.
사람의 몰골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인데다가 몸에서 나는 악취로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 곳 행려병동 앞을 지날 때면 코를 막고 지나가야 할 정도였다. 그런데 3년 전 수인심 보살님이 이 곳 법당에 오시면서부터 그 냄새가 싹 사라졌다.
마음 하나 바꾸면 그만이 아닌가. 더러운 것 깨끗한 것, 남자 여자가 어디 따로 있던가. 수인심 보살님은 아무도 엄두조차 내지 않은 일을 먼저 시작했다. 손을 걷어붙이고 환자들의 목욕을 씻기고 머리를 감기고 세수시키는 일에 솔선수범했다. 행려병동엔 대다수가 남자 환자들이지만 별로 거리낌 없이 그 일을 척척 해냈다.
봉사할 마음을 일으키고 막상 병실에 들어왔지만 환자들을 외면한 채 겨우 바닥청소나 냉장고 청소를 하고 도망치듯 가서 며칠씩 구토증세를 일으키며 밥도 못 먹던 봉사자들도 한 사람 두 사람 팔을 걷어붙이고 수인심 보살님의 일을 돕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는 보살님만큼 능수능란하게 목욕을 시키고 머리를 감기고 세수며 양치질, 그리고 대소변을 받아내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이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게 된 것이다.
목과 코에 호스를 끼고 있는 환자들, 척추수술로 허리를 전혀 못 움직이는 환자들을 목욕시키고 머리 감기는 것도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침대에 누워있는 환자들의 머리를 감기고 세수를 시키는 것도 마찬가지다. 물 한 주전자와 양동이, 수건, 비닐 두 장이면 물 한 방울 떨어뜨리지 않고 머리를 감기고 얼굴까지 말끔하게 씻기게 된다.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월요일과 목요일에는 행려병동 환자들을 목욕시키고, 화요일에는 중환자실 환자들, 그리고 수요일에는 일반병동의 생활보호대상자들, 금요일엔 일반 내과병동의 누워서 못 일어나는 환자들의 목욕을 손수 시킨다. 토요일에는 부산 경남 지역의 조계종 포교사 모임인 니르바나팀이 함께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한 달에 몇 번 이렇게 봉사활동을 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에어컨도 나오지 않는 병실에서 환자들을 씻기고 대소변을 받아내는 것이 어디 쉽겠습니까. 사실 자꾸 게으른 마음도 생기고 하기 싫은 마음도 생깁니다. 그러나 수인심 보살님의 행을 보면 그런 마음이 싹 가셔요.
올 여름에 얼마나 더웠습니까. 푹푹 찌는 좁은 공간에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환자들을 따뜻한 물로 목욕시키고, 흐르는 땀으로 온 몸이 젖고 머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 채 나오시는 모습을 보고 ‘아, 저 분이 관세음보살이지 누가 관세음보살이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며 다시 팔을 걷어붙이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튼 수인심 보살님이 법당에 오시면서부터 특히 행려병동의 환자들이 확 달라졌어요. 오히려 가족이 있는 환자들보다 더 깨끗해졌지요. 환자들도 이제는 한 가족처럼 지내게 되었어요.”
필요한 환자들에게 뜸을 떠주신다는 묘관음(52세, 니르바나팀 총무) 보살님의 말씀이다.
현재 시립병원에서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불자들은 70명 정도로 연령층도 30대에서 70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수인심 보살님과 함께 환자들을 목욕시키는 일, 면도하는 일이며, 환자들의 손발이 되어 환자들을 돕는 일,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병원 내 안내 역할을 맡고 있기도 하다.
안내 역할은 병원에서 가까운 혜원정사 봉사모임인 마야회(회장 자재행)가 주로 맡고 있다. 올해 71세인 전복순 할머니는 연세가 연세인지라 환자들의 면도 도우미로 봉사활동을 하고 계시다. 명등 거사를 비롯하여 온 가족이 함께 나와 봉사하는 가족도 세 가족이나 된다. 아버지와 아들, 어머니와 딸이 2인 1조가 되어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환자들의 면도를 해주고 목욕을 시켜드리는 것이다. “어디 법당에 엎드려 하는 것만이 기도겠습니까. 여기 계신 분들은 가족들에게조차 버림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하지 않으면 이 일을 누가 합니까. 이 나이 되도록 특별한 병 없이 건강한 몸으로 이렇게나마 봉사할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늘 부처님께 감사하지요. 젊었을 때에는 열심히 일해 자식 키우고 남은 여생은 이렇게 봉사하며 살겠다고 늘 원을 세워 왔어요.
그런데 마침 신문을 보니 불교간병인교육을 한다고 하는 광고가 났더군요. 그것이 1996년이었어요. 육신을 움직일 수 있을 때 내 힘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도움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지 몰라요. 70까지는 이렇게 봉사하고, 한 3년 정도 선방에서 공부하다가 몸을 바꾸게 해달라고 매일 부처님 전에 기도합니다.”
하루종일 환자들의 손발이 되어 봉사하고 집에 갈 무렵이면 온 몸이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그러나 또 의료원에 와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보면 어디서 솟아나는지 전혀 다른 새로운 힘이 불끈 솟는 것이다.
“올 여름에만도 행려병동에서 열두 명이 죽었어요. 어떤 날에는 한 병동에서 세 명이 죽은 적도 있지요. 마지막으로 몸을 씻어주고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해주고 광명진언을 외워줍니다. 어디 이생이 마지막이겠습니까. 불법 인연의 씨앗을 심어주어야지요.”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병원을 나가면 또 어영부영 술이나 마시다가 또다시 실려 들어와서는 마침내 죽을 사람들을 위해 뭣하러 그렇게 정성을 쏟느냐고. 그러나 물을 주면 물은 다 빠져버리더라도 콩나물은 자라듯 자비로운 손길 속에 불심의 씨앗은 자라지 않겠는가.
병상에 홀로 누워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얘기를 들어주다 보면 사연 없는 사람이 없고, 선량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어찌 겉모양으로 그 사람을 한정지을 것인가. 모두가 부처님 생명을 그대로 받아지닌 사람들이 아닌가. 비록 약육강식의 경쟁사회에서 뒤처져 낙오자가 되었지만 할 일이 있고 정당한 보수만 주어지면 충분히 잘 살아갈 사람들이었다.
병상을 돌다 보면 어제 면도를 해서 수염이 길지도 않았는데 오늘 또 면도를 해달라는 환자도 있다. 그 분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따뜻한 관심과 사랑의 손길인 것이다.
환자들의 자상하고 따뜻한 어머니로 이 일 저 일을 챙기시며 그들의 손발이 되어 주시는 자비로운 수인심 보살님. 아! 어디에 달리 관세음보살님이 계시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