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닮아가기

우리스님/ 금강경 역해 저자 각묵(覺默) 스님

2007-09-29     관리자


얼마 전 평소 존경하는 분으로부터 선지식 감별법(겸허와 자비심)을 듣고, 짐짓 무례하다 할지라도 스승을 잘못 만나 헤매는 것에 비하면 그나마 선량한 분별심이 낫겠다는 생각에 그분의 말씀을 각인해두었다.
각묵 스님을 뵈면서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이 가슴 깊이 다가왔다. 발심 출가하여 국내 선방에서 치열하게 수행하였고,10여 년간 인도에서 수학, 그 첫 결실로 금강경 역해(부제: 금강경 산스끄리뜨 원전 분석 및 주해, 세계 최초로 산스끄리뜨어 원문과 구마라집 역본, 현장 역본, 우리 말 번역, 대역, 주해로 구성된 역작. 불광출판부 근간)를 출간하는 스님의 겸허한 모습에 먼저 고개 숙여졌다.

화두 참구 중에 드러난 길
“전생 인연 아니겠습니까?”
백일기도 끝에 태어난 귀한 아들, 종손으로 집안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초등학교 때 부산으로 유학을 왔던 스님이 삭발염의하게 된 인연의 단초는 중학교 3학년 때 맞이한 어머니의 죽음이었다.
“그 때부터 사는 게 뭔지 죽는 게 뭔지 고민했습니다.”
고등학교 때 철학책을 뒤적이다 불교를 만났다. 대학(부산대학교 수학교육과)에 입학해서 불교학생회에 가입, 열렬히 활동한 것은 자연스런 수순이었다. 날마다 수업 전에 예불을 올리고 천수경과 금강경을 독송하였다. 한편 당시 대학생불교연합회 부산지부 교화부장을 맡아 법회 때마다 목탁 치고, 회원들에게 교리공부 시키고, 법사스님을 초빙하는 것도 스님의 몫이었다.
“대학 2학년 때 삼묵 스님을 뵙는 순간 가슴에 전율이 일었습니다.”
첫눈에 아셨던 것일까. 삼묵 스님은 신심명, 증도가, 육조단경 등을 가르쳐주시면서 화두를 주셨다.
“화두가 끊인 적이 없었지요.”
여태까지 속아 산 것만 같아 대학 3학년 때 홀연히 화엄사 도광 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서울의 강남 봉은사에서 승복을 입고 군복무를 하게 된 것도 보통 인연은 아니다. 군복무 중에 불교학생회 지도법사를 하고, 인근의 휘문고, 무학여고 등 불교학생회를 이끌기도 했다.
제대 후 곧바로 송광사 구산 스님 회상에 가서 방부를 신청하였고, 출가한 이래로 7년 동안 15안거를 들면서 용맹정진도 수차례 하였다.
“87년도 여름 하동 칠불암 운상선원에서 한 철 나는데 반철 지나고 나니 외국에 나가야겠다는 망상이 계속 드는 겁니다. 아무리 큰 망상이라도 일주일이 지나면 없어지는데 그 생각이 떠나질 않더군요.”
삼매 상태에서 가야 할 길을 미리 안 것일까. 아니면 전생부터 지어놓은 인연이었던 것일까. 칠불암이 인도 아유다국에서 온 허황후의 일곱 왕자가 성불한 절이라는 것도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해제하고 도반인 함현 스님을 만났는데 ‘팔리경전이 우리 말로 번역되어 있느냐? 선방에서 정진도 잘 했으니 자네가 그 일을 하게.’라는 말이 결정적 계기가 되었지요.”
부처님 당시의 언어로 불교가 태동할 무렵의 주변사상을 배우는 것이야말로 부처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는 길이요, 수행의 주춧돌이기에 인도로 향했다.

비구는 윤회에서 두려움을 본다
“베다 언어는 초기 빨리어와 문법과 어문현상이 같아서 초기불교의 배경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기에 리그베다를 전공하였습니다.”
고향처럼 다가온 나라, 하지만 유학생활이 녹녹치는 않았다. 인도에 간 지 3년째 되던 어느 날 청정도론을 배우는 중에 붓다고샤가 “윤회에서 두려움을 본다고 해서 비구라 한다.”고 설한 대목을 보고 ‘윤회가 본래 없는 줄을 알아야지, 윤회에서 두려움을 보는 게 비구라고. 참으로 소승적인 견해로구나.’하며 실소했다. 그런데 그날 숙소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인도의 우기철은 거리가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지저분하다.
“돼지새끼가 오물범벅이 된 채 먹이를 찾기 위해 허우적대고 있는 것을 보는 순간 ‘저 돼지 꼴이 바로 내 꼴이 아닌가. 내가 아무리 수행자라 해도 윤회라는 진흙창 속에서 헤매는 저 돼지랑 다를 게 무엇인가’ 하는 반성과 아울러 붓다고샤의 말이 가슴 깊이 스며들었지요.”
그 귀중한 체험을 한 뒤 진정으로 하심할 수 있었고, 그 힘으로 10여 년 동안 인도에서의 수업을 마칠 수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처님의 메시지를 가장 잘 담고 있는 금강경
“조계종의 소의경전인 금강경은 지금까지 수십 종이 출판되어 왔는데, 대부분 구마라즙 번역본을 저본으로 삼다 보니 금강경의 말씀이 구마라즙의 안목으로 전달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5년 전 금강경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상(相)의 원어가 니밋따(nimit ta, 모양)가 아니라 산냐(sanna, 인식)임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산냐가 초기경전인 숫따니파따 4장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임을 알고 있었기에 궁금증은 배가 되었다. 그 때 금강경을 번역하리라 마음먹었다. 작년 네팔의 보드가야에서 기도하며 금강경을 번역하는 동안 내내 법열에 넘쳤다.
“전체 경의 분절(分節)은 양나라 소명태자가 나누었다고 전해오는 32분절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산스끄리뜨 원어의 어원 분석과 그 의미를 파악하는 데 중점을 두었지요. 특히 초기불교 언어인 빠알리어와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이제까지 산스끄리뜨 원문을 철저히 분석하고 산스끄리뜨 술어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설명한 책이 한 권도 없는 상황에서 ① 산스끄리뜨 원문, ② 구마라즙역본, ③ 현장역본, ④ 번역, ⑤ 대역, ⑥ 상세한 주해로 편집된 스님의 금강경 역해의 가치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스님 덕분에 이제 정말 우리의 안목으로 원전을 깊이 음미하면서 부처님의 말씀을 더욱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금강경의 말씀을 공(空, sunya)이라는 거창한 명제로 설명하는 대승불교의 관점은 너무나 이데올로기적인 해석입니다. 금강경은 초기불교에서 부처님께서 고구정녕히 설하신 ‘산냐를 극복하라(sannanam uparodhana)’는 말씀을 따르는 경입니다. 공관의 지혜를 설하기에 반야바라밀이 아니고 산냐를 뛰어넘는 참 지혜를 설하기에 반야바라밀인 것입니다.”
스님은 불교가 불교이고 부처님이 부처님인 것은 바로 이 산냐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이라고 역설한다.
“부처님께서 당대에 최고의 경지라고 인정되던 무소유처(無所有處) 와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까지 증득하시고도 이를 버리신 것은 이 경지가 산냐에 걸려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스스로 마음챙김(sati)을 확립하셔서 초선에서 4선까지 새로운 선(禪)을 체험하시고 제4선에서 우뻬카사띠빠리숫디(upekkha - sati - parisuddhi, 捨念淸淨, 평온과 마음챙김의 완전한 청정)가 되어서 이 힘으로 번뇌를 멸절하고 구경의 깨달음, 저 고귀한 해탈열반을 성취하신 것입니다.”
한편 산냐를 세우지 않고 모든 현상을 대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며, 깨달음마저도 어떤 경지를 세우면 그것은 곧 산냐에 빠진 것일 뿐 진정한 깨달음이라 할 수 없단다.
“모든 현상은 서로 서로 깊은 관계 속에서 매 순간 생겼다가는 사라지는 것을 거듭하면서[緣起] 천류(遷流)해가는 과정(process)입니다. 마음을 불변하는 실체로 상정하거나 아뜨만이니 진아니 대아니 하는 일체의 존재론적인 발상은 산냐일 뿐입니다. 이런 근본 입각처를 분명히 파악하지 못하면 부처님의 메시지를 결코 읽어내지 못할 것입니다.”
아(我)·인(人)·중생(衆生)·수자(壽者)라는 실재론적인 산냐는 다른 사상이나 종교에서는 매달리고 있는 것이지만 부처님께서는 법상(法相)까지도 경계하셨다. 만일 법이라 하여 실체시하면 법이라는 산냐에 떨어지고 만다는 것을 금강경에서 누누이 지적하시며 삶의 태도를 일깨워주시는 것이다.

우리가 가야 할 길 팔정도
“부처님처럼 수행하면서 번역해야 올바른 번역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고뇌가 많았지요.”
간화선을 하던 습이 남아 시도 때도 없이 화두가 들려 의식적으로 화두를 놓았다. 인도에서 공부한 지 7년쯤 되던 해 컴퓨터로 자료정리하고 번역을 하다보니 오른쪽 어깨에 근육통이 오고, 급기야 온몸이 마비되었다. 고통 속에 아픈 몸을 관하면서 ‘위빠싸나 고엔카 10일 수행’을 했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위빠싸나(남방에서 개발된 수행법)가 비록 부처님께서 직접 수행하신 것은 아닐지라도 그 나름대로 깊이가 있었습니다. 위빠싸나를 3일 하니 아픈 게 풀렸고, 7일이 지나니 완전히 치유되었지요. 수행의 목적이 몸 아픈 것을 고치는 것은 아니지만 구체적으로 체험을 하게 되면 더욱 정진할 수 있는 힘이 길러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웨다나(vedana, 느낌, 受)와 산냐(인식, 관념, 相)가 인간의 삶을 구성해가는 기본인데, 제 경험에 의하면 위빠싸나는 웨다나를 관찰하는 측면이 강하고, 간화선은 관념과 생각, 즉 끝없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산냐를 극복하는 방법입니다. 의심을 일으켜서 화두 일념이 되면 관념을 극복, 산냐에 속지 않을 것이라는 수행법이 바로 간화선인 것입니다.”
각묵 스님은 위빠싸나든 간화선이든 반드시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인 팔정도가 바탕이 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수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팔정도입니다. 부처님께서도 ‘다른 가르침에도 해탈과 열반이 있지만 팔정도는 없다’고 하셨습니다. 부처님의 생애는 한마디로 8정도의 실현이라고 생각합니다. 팔정도를 삶 속에서 찰나찰나 실현한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참 불자가 아니겠습니까?”
팔정도의 첫 번째 정견은 사성제를 연기법적으로 아는 것이다. 정견이 없으면 바른 수행을 할 수 없고, 정견을 갖추기 위해서는 먼저 경전을 읽고 사유해야 한다. 정견이 되면 정사유(慈悲喜捨의 마음을 가지는 것, 악의를 가지지 않는 것)가 되고, 정어·정업·정명 등이 맑아지고, 정진의 힘이 숙련되어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바퀴가 계속 굴러가 매 순간순간 우리 삶에서 팔정도가 실현될 때 부처님의 삶이 되어가는 것이다.
“인도, 미얀마, 스리랑카, 티벳,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일본, 중국 등 여러 나라를 다니다 보니 우리 나라에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남방의 스님들은 경전 해석에 있어서도 천편일률적으로 붓다고샤의 주석에만 의지하고 고뇌하지 않는지라 향상이 적어 보입니다. 우리 나라 스님들이 문제점도 많이 노출하고 있지만 긍정적인 면도 많습니다.”
그래도 이 땅은 수행전통이 남아 있고, 깨어있는 수행자들이 있어 희망적이라는 각묵 스님.
초기불교를 깊이 사유해서 부처님의 메시지를 바르게 찾아내고 실천할 수 있는 스님들과 재가불자들이 있기에 빨리 삼장 한글번역을 이생의 원으로 삼은 스님의 작업은 계속될 것이다. 장부, 중부경, 상응부 등의 번역을 위해 깊은 안거에 들듯 미얀마로 향하는 스님의 뒷모습에서 부처님의 향기를 본다. ==> 금강경 역해 구매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