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와 베짱이

지혜의 향기/일과 휴식

2007-09-29     관리자


내 몸에는 두 가지의 피가 흐르고 있다. 바로 개미의 피와 베짱이의 피다. 언젠가부터 피의 비율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하고 있다. 처음엔 5:5였다가 3:7, 이젠 2:8로 베짱이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난 이 변화가 좋고 행복하다. 보기만 해도 배부른 두 아들의 몸에서도 왠지 베짱이의 냄새가 난다. 피는 못 속인다는 말이 맞나 보다. 이런 세 부자(父子)를 보며, 아내는 말한다. ‘배짱 좋다!’ 난 그때마다 말한다. ‘배짱으로 살자! 베짱이로 살자!’
내가 개미처럼 일하는 이발소의 싸인불이 꺼질 무렵, 난 어딘가로 떠난다. 너무나 소중한 ‘저녁의 여유’를 위해서다. 낮엔 개미처럼 이발소에서 미래(두 아들에게 아파트 하나씩 주는 것)를 준비했고, 저녁엔 색소폰을 둘러메고 술과 친구, 사랑을 찾아 베짱이로 살았다. 너무나 오랜 베짱이 생활 이후 얻은 것은 당뇨병이었다. 혈당 450! 아내가 던진 재떨이에 맞은 상처가 자꾸만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즐겨 부르던 색소폰마저 베란다 구석에 고장난 채 처박혀 있었다. 아내는 더욱 개미 같은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열심히 일하라고, 입으로만 일하지 말고, 몸으로 일하라고.
아무리 생각해도 베짱이의 배짱은 정말 대단하다. 게으름의 화신, 음악에 대한 정열, 그러나 겨울이 되자 그의 배짱은 봄날 햇살에 눈녹듯 사라졌다. 개미와 베짱이의 이야기에서 나는 다른 가치를 발견한다. 개미와 베짱이의 인생을 생각했다. 누구의 인생이 옳고 그른 삶인지…. 나는 누구보다 베짱이로 살고 싶은 사람이다.
개미는 일을 한다. 베짱이는 개미가 일하는 옆에서 논다. 정확히 말하면 노는 것처럼 보이는 일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왜 일을 하고, 왜 휴식을 취하는 걸까? 더 나은 일을 위해, 더 나은 휴식을 위해 일과 휴식은 끊임없이 우리를 힘들게, 그리고 즐겁게 한다. 일이 좋아서 일하는 사람을 나는 ‘프로’라고 부른다. 일이 싫은데 돈 때문에 일하는 사람을 나는 ‘자본주의의 노예’라고 부른다.

잠시 내가 살아온 발자취를 더듬어 본다. 스무 살 시절부터 정말 부지런하게 열심히 일했다. 그 대가로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는 찾았지만, 아이들 얼굴 마주하기도 힘들었을 만큼 가족의 희생이 뒤따랐으며, 이와 더불어 내가 이루고자 했던 나의 꿈들도 서서히 사라져 갔다. 내 삶의 중심에 이미 나는 없었던 것이다. 난 두 아들에게 말한다. 베짱이처럼 살아도 보라고. 베짱이는 분명히 일(음악)을 하고 있었는데, 개미는 음악을 일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개미의 부지런함을 매우 긍정한다. 그러나 개미의 눈으로만 바라보는 세상, 이젠 물건너 갔다. 일을 즐기며 열심히 잘 사는 사람, 우리 아들만큼은 이렇게 자라주었으면 한다. 정말 하고 싶은 일, 본인이 간절히 원하는 것을 하기를 기원한다.